*私の日記 その百三十三   -   잡문 [雜文]/日本語

 九月十七日  

 今年はさほどくないといながらごしていたら何時九月中旬! 

このエアコンんどつけず扇風機世話になっただけだったなあ今日

りがちで午前散歩がてら大学内一廻りしついでに薬屋って

必要薬品めてったっけついでにめてきたピザを昼食美味しく

居間のソファにそべってテレビの音楽プロをめていたら何時夕方! 

けっしのパソコンメールチェックとゲームをあれこれいてしむ

年寄りにしてはのない々とえよう^^。

 数日前時間本読みでたすので本棚んだばかりだと愚痴

こぼしたのをいたがパソコンで日本小説十卷注文したとってたが

ったとのメールがいたそうで今日からばしてってる自分れに

えてならないでも二人限らしで時間るほどだからきな

まってごすのが唯一しみであるのをどうしようだがこの頃悩みがえた

物忘れがくなったのはじていたが昨夜んだ内容全然浮かばないように

なったのだ以前あれ程好きだった推理小説もうめなくなるとは. 今度娘

オーダーしたんどが短篇小説うのでほっとした

今本いたしくて口元

津軽百年食堂: 森沢明夫      *: 吉田篤弘

ちいさな幸福: 角田光代      *月曜日水玉模様: 加納朋子

*南青山骨董通探偵社五十嵐貴久     *最後晩御飯:  ふし野道流 

*あつあつをがれ: 小川糸    *なみのひとなみのいとなみ: 宮田珠己

戰力外搜査官 :  似鳥鶏             

あなたに大切りの記憶はありますか?  阿川佐和子  石田衣良 角田光代  

          熊谷達也   小池真理子   重松清  朱川溱人 高樹の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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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비권 남용 : 河盛好藏의 ‘부모와 사귀는 법’ 중에서   -   번역 [飜譯]/일한번역 [日韓飜譯]

묵비권이라는 게 있다. 난 법률에는 어둡기 때문에 자세한 건 알지 못하는데, 경찰이나 법정에서, 자신에게 불이익인 공술(供述)을 강요당했을 경우, 그걸 거부하고, 침묵을 지킬 수 있는 권리라고 생각한다. 만일 상대가 여러 가지로 넘겨짚어 이쪽을 죄인으로 만들려고 기획한다면, 이쪽도 쓸데없는 걸 늘어놔 발목을 잡힌다거나, 타인에게 폐를 끼치거나 하는 것 보다, 잠자코 대답하지 않는 일보다 더 나은 건 없다.

그러나 조사하는 쪽에 있어서는, 무엇을 물어봐도 상대가 돌처럼 침묵하면서 대답하지 않는 건 필경 짜증나는 일일 게다. 잘못이 상대에게 있는 일이 확실할 경우는 더욱 그럴 것이다. 그 기분은 잘 안다. 그건, 요즘 아이는 가정 안에서 이 묵비권을 남용하고 있어 어쩔 수가 없기 때문이다.

밤에 가족이 모두 모여 즐겁게 식사를 하고 있는 가운데서 한사람만 아무 말 없이, 맛이 없는 듯 밥을 먹고 있는 아이가 있다. 어머니는 그게 마음 쓰여, 여러 가지로 말을 걸지만 대답도 하지 않는다. 아버지는 아까부터 짜증이 나 있으되, 여기서 소리를 지르거나 한다면 분위기가 깨져 모두의 식사가 맛없어질 거라 생각하여 참고 있다.

그러는 동안 그 아이가 홱 일어서서, 자기 방으로 들어가나 보다 생각하고 있었더니, 얼마 후 현관에서 부스럭대고 있다.

어디 가니?’ 라고 물어도, 물론 대답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대문을 홱 닫고는 어딘가로 나가버린다.

저 녀석, 무슨 일 있었나?’ 라고 부친이 묻자, 모친은, 실은 이런저런 일로 하면서 아들의 기분 나쁜 이유를 설명하는데, 그 대부분은 갖고 싶은 걸 사주지 않았다거나, 친구들과 산에 가는 걸 막았다던가, 말도 안 되는 일이 원인인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식의 이유를 알 수 있는 묵비권 사용은 간단한 이야기다. 그들의 요구를 얼마만큼 들어주기만 하면 이번에는 시끄러울 정도의 수다가 된다. 참으로 현실적인 일이다.

허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전혀 알 수가 없는데, 갑자기 입 다물고 말을 하지 않는 아이처럼 성가시고 짜증나는 건 없다. 그것도, 부모에게 털어놓을 수 없는 걱정이 있어 입을 다물고 있는 거라면, 기운 없고 침울한 모양이어서 금방 알 수 있기 때문에, 부모로서는 그 걱정을 끄집어내 대책을 강구해주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더욱이 요즘 부모들은 이해력이 좋으니까 그런 걱정을 해결해주는 일에 기쁨과 자랑을 느낄 것이다. 신문의 가정란에는 그러한 이유로 풍부한 인텔리 주부의 고심담(苦心談)이라던가 자랑꺼리가 자주 나오고 있다.

내가 문제로 삼고 싶은 건 그런 애처로운, 고민하는 아이들이 아닌 것이다. 요즈음, 마음의 상처를 참지 못하고, 입도 열지 못하게 되는 듯싶은 애처로운 아이가 있다고 하면, 오히려 진중하게 여겨야 할 것이다.

누구나 경험이 있는 일인데, 우리들은 어느 연령에 도달하면 갑자기 양친을 경멸하고 싶어지는 거다. 부모를 세상의 어른들 안에 놓고 관찰하기 시작하는 시기로, 평소에 양친, 특히 부친으로부터의 압박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에 반항하고 싶은 기분이 강하게 작동하여, 될 수 있는 한 의니 나쁜 눈으로 양친, 특히 부친을 바라보려고 한다. 그 때문에 양친이 지닌 갖가지 결점, 단점이 한층 크게 보여진다.

세상의 어른이라면, 대부분의 인간이 지니고 있음직한 결점이라도, 아이에 있어서는 참을 수가 없다. 무슨 속악(俗惡)에 무슨 무교양(無敎養)인가 하고 부끄러워진다. 예를 들어,

아버지는 안보조약 개정을 어떻게 생각해라고 물어도,

뭐야, 그 안보라는 건하고 대답하는 게 일반적이다. ‘, 그건 절대로 반대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던가, ‘그건 개정하는 편이 좋다라던가, 울리는 목소리에 응하는 듯 대답해주는 부친은 그다지 없다.

일사만사(一事萬事)라고, 이런 일이 겹쳐 일어나면 아이는 그만 아버지를 완전히 경멸하고 만다. 그 경멸이 묵비권이 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바보 같아서 아버지랑은 말도 하기 싫다는 뜻이리라. 항상, 꾹 입을 다물고, 하지만 밥은 여전히 잘 먹고, 용돈 조르는 일은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 그저 이전에는 용돈 쓴 걸 밝히던 것이 요즘은 무엇에 썼다고도 말하지 않고, 또 외출할 때도 어디 가는지를 결코 말하지 않는다. 요컨대 무척 거만하게 구는 거다. 부모가 뭐라고 해도 전혀 대답하지 않는다. 완전한 묵살인 것이다. 말대답도 해주지 않는 것이다.

우리들의 아버지는, 무슨 일만 있으면 아이를 앞에 놓고 기나긴 설교를 했던 것이다. 전혀 이유를 모르는 일을 말할 때는 이쪽도 화가 나서 항변하는데, 그럴 땐 바로,

부모를 향해 말대꾸를 하느냐!’ 라고 말하면서 화를 버럭 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묵비권을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지금과는 반대인 것이다.

모친(母親)이라는 건 아이가 성장하는데 따라, 점점 아이에게 한 점 놓게 되는 것이다. 특히 사내아이에 대해서는 그렇다. 따라서 아이가 무슨 연유인지 모르되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있는걸 보면, 신경이 쓰여 어쩔 줄 모르는 것이다. 이제 자기는 이해할 수 없는, 자기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아이가 가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서글퍼진다. 츠르게네프의 아버지와 아들에는, 그러한 모친의 서글픔이 잘 그려 있었던 걸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아이 쪽에서는 그런 모친의 기분을 사실 전부 알고 있는 것이다. 모친이라는 건, 이쪽에서 응석을 부릴 때는 물론 충분히 응석을 받아주지만, 이제 어머니 따위에겐 응석부리지 않을래, 라고 하는 냉담한 태도를 취할 때에는, 모친이 불안해져서, 자신의 애정이 모자란 게 아닌가 하면서 마음을 쓴다는 걸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연령이 되면, 모친에게 어리광을 부리는 일을 창피하게 여기게 되는 걸 잘 알고 있다. 더욱이 연령이 되면, 모친에게 어리광부리는 일을 창피해하는 기분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모친에 대해서 말을 하지 않는다는 건, 실은 저의가 있는 교활한 수법인 것이다. 일종의 변죽울림인 것이다. 부친은 그런 것을 잘 알고 있다. 왜냐하면 그도 자식일 때에는 모친에 대해서 그런 수를 사용해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연령이 찬 아들이 자기와 같은 수를 쓰면서, 뭔가 의미 있듯 행동하는 걸 보면, 우스워 어쩔 수가 없다. , 시작 하는구나 라고 생각한다. 내 젊었을 때와 똑같지 않은가. 그렇기는 해도 인간이라는 건 전혀 진보하지 않는 거라고 생각한다.

난 확실하게 말하고 싶은데, 부친이라는 건 아무것도 모르는 듯이 보여도, 실은 무엇이건 알고 있는 것이다. ‘안보란 무엇이지라고 말하는 부친이 있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그 부친을 경멸하는 일은 할 수 없을 것이다. 사실은 잘 알고 있어도, 그런 일로 아이와 의논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능청을 떨고 있는지도 모르지 않은가.

그것, 그러한 태도가 좋지 않은 거다. 안보조약개정과 같은 국가의 운명에 관한 중대 문제에 대해서는, 아이와 함께 충분히 논의해야 마땅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있는 게 틀림없다. 그리고 나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세상의 부친에는 각각의 유의(流儀)가 있다. 우리집 부친이, 친구들의 부친처럼 인텔 리가 아니라는 이유로 이 무슨 무교양!’ 하고 경멸하는건 너무 빠르다. 더욱이, 묵비권을 사용하는 등은 논외(論外).

아무튼, 부모가 뭔가 말해도 묵묵히 대답하지 않는 것처럼 불쾌란 건 없다. 그런 일로 부모에게 기분을 상하게 하는 수는 실로 옛날일이다. 모친은 속아도 부친은 결코 속지 않는다.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있으면 당당히 정면으로 말대답을 하는 게 좋다. 그럴 때 부친은 어쩌면 감정을 앞세워 문답무용 태도로 나오기 쉬우나, 그걸 하지 않도록 부모를 훈련시키는 일이, 현대의 어린이들 의무가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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