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인과 다른 단 한사람의 자기 : 五木寬之   -   번역 [飜譯]/일한번역 [日韓飜譯]

헌데 말은 쉬워도 행동은 어렵다는 말처럼 가능한 한 의사의 폐를 끼치지 않도록 산다는 것은, 그건 그것으로 무척이나 귀찮은 일인 것이다. 여하튼 만병의 보금자리인 이 몸을 자신이 컨트롤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컨트롤한다는 것 보다, 케어한다고 할까, 밸런스를 유지하면서 화합해나가야 한다. 그것을 일상적인 삶 속에서 행할 필요가 있는 것인데 그건 생각하기 나름일 것이리라. 몸과 사귄다, 몸의 밸런스를 유지한다, 그 일을 자신의 취미로 해버리면 되는 것이다.

취미라고 하면 가볍게 들리나, 어쩌면 삶의 목적도 되고 삶의 보람이 될 가능성이 있는 세계다. 더 파고들면 자연이라거나 우주의 신비에 닿을듯한 경지에 까지 달할 수 있을는지 모른다. 종교라는 건, 책을 읽거나 이야기를 듣거나 하는 것뿐만 아니라 의외로 그런 식으로 자신의 몸 상태에 가만히 귀 기우리는 데서 만나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자신이라는 건 2중의 나선형 구조를 하고 있다, 라고 생각해 보자. 2중 나선 구조라는 건 물론 농담인데, 두 개의 존재가 교차하고 있는 곳에 자신이 있다, 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나는 인간 일반으로서의 자신. 보편적인 인간의 일원으로서의 자신은 확실히 있다. 따라서 인간 일반으로서의 상식이라거나 약속한 일은 당연히 적용된다. 병이나 건강에 관해서도 그렇다. 혈압이나 칼로리 계산이라거나 기타의 의학적 이론과 치료 방법은 싫어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자기에게는 또 하나의 자기라는 게 있다. 인간 일반의 큰 틀로 묶어버릴 수 없는, 유일무이의 자기가 그것이다. 이 넓은 세계에, 몇 십억의 인간들 가운데 아무개라는 자신이 단지 한사람의 존재이며, 다른 누구와도 다른 자신이라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부모와도 다른 자신. 그리고 모든 인류의 과거에서 현재까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절대적으로 일반적 인간이라는 개념에서는 다룰 수 없는 하나의 자신.

그런 일을 오랜 불설(佛說)에서는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는 언어를 빌려 이야기하고 있다. 이 언어를 나는 자기 한사람이 읽는 식으로, ‘전 우주에서 단 한사람, 누구와도 같아서는 안 되는 유일무이의 자기이기 때문에, 이 자신의 존재는 고귀한 것이다.’ 라는 식으로 받아들여 왔다. 이런 강인한 독서방식을 옛날에는 橫超라고 부르며, 무척이나 갖가지 사람들이 시도해보고 있는 일이었다.

나라는 자신이 둘 있다, 라는 건 그러한 일이다. 모든 인간과 공통되고 있는 자기와, 아무와도 다른 단지 하나의 자신, 그 두 가지 자신은, 때론 대립하고 때로는 동조한다.

예를 들어 368분의 열이 있다고 치자. 그것이 자신에게 있어 어떠한 열인가를 생각해 보자. 인간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상식적 입장에서는 평균적인 평열(平熱)이라는 기준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개인으로서의 평열은 다양하다. 나의 지인 중에는, 58부가 보통이라는 사람도 있고, 항상 7도 이상이 평열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어 절대로 일정하지는 않다.

마찬가지로 영양학에서는 칼로리 계산을 하는데, 개인으로서의 자신에게 있어 몇 칼로리가 필요한가는 사람마다 다양하다. 한없이 다양한 각각의 개인에게, 최적의 수치로 대응하는 일은 병원도 학교도 불가능할 것이다. 더욱이 시장원리(市場原理), 가능한 낱개를 무시하는 곳으로부터 성립하는 발상인 것이다. ( “大河一滴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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