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식을 가지고서야 아는 부모의 은혜   -   번역 [飜譯]/일한번역 [日韓飜譯]

* 遠藤周作勇氣ある言葉중에서


내가 알고 있는 초밥집의 젊은 주인은 돌아가신 그의 부친을 지금까지도 존경하고 있다.

죽은 육친의 일은 대부분의 경우 미화되는 것이 보통이므로 그의 부친 추억도 그런 게 

아닌가 하면서 듣고 있었는데, 얼마 안 있어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고교를 졸업하면서부터 그는 부친에게 초밥만들기, 밥짓기 등 초밥집이 하는 모든 것을 

배웠다.  부친은 그의 밥짓기가 서툴다면서 그것을 엎어버릴 만큼 엄격했으나, 뭐라고 

해도 솜씨의 차이가 있으니 불평을 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참다못해,

왜 내게만 심하게 굴어요?’ 하고 묻자.

내 자식이니까 심하게 구는 거다.’ 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부친이 죽고 제구실을 하게 되자, 그처럼 심하게 당했던 기술이 쓸모 있어, 과연 하면서 

그는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젊은 주인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부럽다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거기에는 

우리들이 어떤 면에서 이상으로 하는 부친과 자식의 관계가 보이기 때문이다. 자식은 

그 때 기술뿐만 아니라 부친의 사는 방식도 배워나간다. 자신이 만드는 초밥에 타협하지

않는 부친밥 짓기 하나에도 성의를 가지고 하는 부친의 사는 방식을 기술과 함께 배워

나간다그것이 본래 의 부친이라는 거다.

내가 이 젊은 주인을 부럽다고 생각한 건, 난 자신의 아들에게 그런 기술을 가르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소설가지만 아들은 다른 길로 나갈게 틀림없다. 내가 오늘날까지 

습득한 소설 쓰는 기술을 그에게 가르칠 수가 없다. 지금의 많은 부친도 나와 같은 

서글픔을 아이에게 가지고 있음이 틀림없다. 자신이 습득한 기술을 자식에게 가르칠 수 

없는 슬픔혹은 가르쳐야할 기술을 가지고있지 못한 슬픔이 마음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식에 있어서도 부친은 그를 따라 자기가 장래를 살아갈 지혜를 전해주는 스승이 

아니라그저 거북한 존재이거나, 친구와 같은 아빠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적어도 그렇다면, 아이에게 자신의 취미를 불어넣어 주자. 낚시를 좋아하는 부친이라면 

아이에게 낚시를, 레코드를 좋아하는 부친은 아이에게 클래식을, 장미 기르기를 좋아

하는 부친은 꽃 만드는 법을 아이에게 가르치자고 나는 생각할 때가 있는데.......

 

 

* 사람에게는 각각의 능력이 있다

배경이 되고 있는 사정을 잘 알수 없기 때문에 평생, 좀 걸리는 의문을 여기에 적습니다.

오래 전에 난 결핵에 걸린 적이 있다. 그 때, 어딘가의 요양원으로 들어가자 생각하고,

그런 시설의 내용을 쓴 책을 읽었다.

그 책에는 회복기가 된 환자가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작업 요법도 요양소에서는 

하고 있는 듯한 것이 쓰여 있었다. 그리고 그 작업요법이란 양계라던가, 꽃 재배라던가

간단한 밭일이었다.

그 때, 난 문득 의문으로 생각한 것이, 자신이 가령 양계라던가 꽃 키우기를 그곳에서 

매워도 그것이 사회 복귀의 계기도 자신이 될 수도 없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작업요법의 

과목이니 어쩔 수 없지만, 리허빌리테이션으로서 나와같은 자에게는 맞지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이 기억은 지금까지도 남아있어 때때로 되살아난다.

어떨때 되살아나는가 하면 취재라던가 기타 용건으로 다양한 요양소라던가 시설에 갈

때다.

예를 들어 한센병의 요양소를 찾아갔던 적이 있다. 주지하다 시피아니, 이는 세상이 

그다지 알지 못알는지도 모르나, 한 때 문둥병(癩病)이라고 일컬었던 한샌병은 특효약 

덕분에 지금은 전치된다. 전치된 환자들은 물론, 건강한 사람도 마찬가지로 누구에게도 

감염시키지 않고 위험은 전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한센병의 회복자는 사회에 나가서도 좀처럼 직장을 구할 수

없다는 고민을 요양소에서 들었던적이 있다. 이 병에 대한 긴세월의 공포와 현재의 치료

성적에 대한 세상의 무지가 합쳐서 사회에 복귀해도 좀처럼 채용이 되지 않는다는 얘기

였다.

그러나 그 때, 난 또 하나의 의문도 생각해보았다. 즉 한센병의 요양소에서 사회복귀를 

위한 어떠한 것을 회복 환자에게 가르치고 있는가 하는 문제다. 현재는 모르겠으나 내가 

그 곳에 갔을 때는 역시 결핵 요양소와 마찬가지로 밭일이나 양계, 혹은 자수 등이었다

하지만 모든 환자가 밭일이나 양계레 맞는다고는 할 수 없다. 자수 하나로 퇴원 후 

사회에서 생활 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것이 퇴원환자를 주눅 들게 하고

또 복귀해서도 채용될 능력을 잃고 있는 게 아닌가 하고 그때 생각한 것이다.

일본에는 다양한 병을 위한 요양소가 있다. 그리고 각기 요양소에서는 환자의 사회복귀를

위한 공부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공부가 왠지 1세기 전의 방식과 같은 느낌이 자꾸만

든다. 그것은 경제적 사정 때문일까, 아니면 그러한 일이 무리일까, 가르쳐주면 다행이겠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