國花,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   일반상식 [一般常識]



.
신고

댓글을 달아 주세요

           

[緣] 皮千得   -   번역 [飜譯]/韓日飜譯 [한일번역]

              緣  
                            皮千得  
去る四月春川へ行こうとしたが適えなかった. 私は聖心女子大學へ行ってみたかったのだ.
その大学には、以前、毎週一回づつ秋の學期に出講したことがある.
骨の折れる出講だが引き受けたのは, シスタ―朱とシスタ―金が我が家を訪れたことに
対するお礼でもあったが、私なりの訳があったからだ.

數十年前の16歳になった春, 私は初めて東京へ行ったことがある.
ある人の紹介で、社會敎育家である三浦先生のお宅で滞在することになった.
芝区白金にあるその家には主人夫婦と幼い娘の三人が住んでいた.
下女も書生も無かった. 目がきれいで、いつも笑顔をしている朝子は最初から私を
兄のように懐いた.
朝生れたので朝子と名付けたと言ってくれた. その家の庭には大きな樹木があり、
一年草や花もたくさんあった.
私が到着した次の朝, 朝子は "スイートピー"を摘んで花甁に入れ、私が使うことになった
机の上に置いてくれた. "スイートピー"は朝子のように幼くて可愛い花だと思った.

聖心女學学院の小學校一年だった朝子と私は、ある土曜日の午後彼女の学校まで散歩した.
幼稚園から學部まである、カソリックの敎育機關として有名なこの女學院は、
市內にありながらも、牧場まで備えていた.
朝子は自分の靴箱を開け、敎室で穿く白い運動靴を見せてくれた.

私が東京を離れる日の朝, 朝子は私の首に手を回し、頬に口づけした後,
自分が使っていた小さなハンカチと指輪を別れのお土産だと渡すのだった.
側で見ていた先生の奥さんが笑いながら "十年ほど過ぎたら立派な相手になるでしょうね"
と言う. 私は顔が火照るのを感じた. 私は朝子にアンデルセンの童話本をあげた.

そのあと十年が過ぎ去った. その間私は小学校一年位の可愛い女の子を見る度に
朝子を思い出した.
私が二度目に東京を訪れたのも四月だった.
東京驛近くに旅館を決めると、さっそく三浦先生のお宅を訪れた.
朝子はいつの間に淸純で洗練された令嬢になっていた. そのお宅の庭に咲いた
木蓮のように. その時彼女は聖心女學院の英文科三年生だった.
私は少しぎこちなかったが, 朝子は私との再会を慶んでいるように見えた.
両親がたまに私のことを話していたので私の存在を記憶していたかも知れない.

その日も土曜日であった。夕食前に二人で散歩に出かけた。
そして気が付かなかったが、いつの間に足取りは聖心女學院の方へ向いていた。
キャンパスを隈無く歩き回り、帰り際に私は、朝子の靴箱は何処にあるかと聞いてみた。
彼女はきょとんとして私を見つめていたが, 敎室には靴を脱がずにそのまま入ると答える.
そして突然飛んでいってあの日うっかり教室に置き忘れた傘を持ってきた。

今も私は女傘を見る度に黄緑色のきれいなその傘を思い出す.
<シェルブルの雨傘>という映畵が大好きになのもきっと朝子の雨傘のためだろう.
朝子と私は夜遅くまで文學の話を交した後、軽く握手して別れた.
あたらしく出版されたバージニアウルフの小說 <歲月>に対しても話したっけ.

その後また十年余りが過ぎた. その間に第2次世界大戰が起こり、わが国が解放され、
また朝鮮戦争もあった.
私はたまに朝子のことを想った. 結婚はしただろうか, 戰爭中無事だったろうか,
もしや夫が戰死したのでは、などなど様々なことを考えた.
1954年、初めてアメリカへ渡る途中に、私は東京に寄り、三浦宅を訪れた.
意外にもその町はそっくりそのまま残っていた. 先生夫婦は興奮した顔で私を迎えた.
そして韓國の獨立を心から祝賀してくれた.
朝子は戦争が終った後、マッカーサー司令部で飜譯の仕事をしていたが、そこで
知り合った日本人二世と結婚し、二人で暮すという.
朝子が戰爭未亡人にならなかったのがなによりだった.
しかしながら二世と結婚したことが気にかかる.
逢いたいと云うと奥様が私を朝子の家へ案内した.
尖った屋根と尖った窓がある小さな家だった.
二十餘年前、私が朝子に渡した童話本表紙の家もこのような家だった.
"あら, きれいな家! 私たち後にこのような家で暮しましょ" 朝子の幼い声が
今も聞こえる.
十年ほど前に戰爭が終り、それ位早く韓國が獨立したら、朝子が話したように
私たちはおなじ家で暮せたかも知れない。尖った屋根と尖った窓がある小さな
家でなくとも、とはかない思いがよぎる.

その家に入ると、白百合のように萎えた朝子の顔が目に入った.
<歲月>という小說の話を交して十年が過ぎ去っている. しかし彼女はまだまだ
瑞瑞しさを保っているべき歳である.
夫は私が想像した通り, 日本人でも、アメリカ人でもない、進駐軍將校を
鼻にかけたがるような男に見えた.
朝子と私は数度お辞儀をし合い、握手もせずに別れた.

偲びながらも一度逢ったばかりで永久に逢えなくなることもあるし、一生
忘れられずにいながらも逢わないで過ごすこともある. 朝子と私は三度逢った.
三度目は逢わなければ良かったと思われる. 今度の週末には春川へ行って来よう.
昭陽江の秋景色がすばらしいだろう.

                               인연  
                                                 피천득
지난 사월 춘천에 가려고 하다가 못가고 말았다. 나는 성심여자대학에 가보고 싶었다.
그 학교에 어느 가을 학기, 매주 한 번씩 출강한 일이 있다.
힘드는 출강을 하게 된 것은, 주 수녀님과 김 수녀님이 내 집에 오신 것에 대한 예의도
있었지만 나에게는 사연이 있었다.

수십 년 전에 내가 열 일곱 되던 봄, 나는 처음 동경에 간 일이 있다.
어떤 분의 소개로 사회 교육가 미우라 선생댁에 유숙을 하게 되었다.
시바쿠 시로가 네에 있는 그 집에는 주인 내외와 어린 딸 세 식구가 살고 있었다.
하녀도 서생도 없었다. 눈이 예쁘고 웃는 얼굴을 하는 아사코는 처음부터 나를 오빠같이
따랐다.
아침에 낳았다고 아사코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고 하였다. 그 집 뜰에는 큰 나무들이
있었고, 일년초 꽃도 많았다.
내가 간 이튿날 이침, 아사 코는 "스위트피"를 따다가 화병에 담아 내가 쓰게 된 책상 위에
놓아주었다.  "스위트피"는 아사코같이 어리고 귀여운 꽃이라고 생각하였다.

성심여학원 소학교 일 학년인 아사코는 어느 토요일 오후 나와 같이 저희 학교까지
산보를 갔었다. 유치원부터 학부까지 있는 카톨릭 교육기관으로 유명한 이 여학원은
시내에 있으면서 큰 목장까지 가지고 있었다.
아사코는 자기 신발장을 열고 교실에서 신는 하얀 운동화를 보여주었다.

내가 동경을 떠나던 날 아침, 아사코는 내 목을 안고 내 뺨에 입을 맞추고,
제가 쓰던 작은 손수건과 제가 끼던 작은 반지를 이별의 선물로 주었다.
옆에 서 보고 있던 선생 부인은 웃으면서 " 한 십 년 지나면 좋은 상대가 될 거예요." 하였다.
나의 얼굴이 더워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아사코에게 안데르센의 동화책을 주었다.

그 후 십 년이 지났다. 그동안 나는 국민학교 일 학년 같은 예쁜 여자아이를 보면
아사코 생각을 하였다.
내가 두번째 동경에 갔던 것도 사월이었다.
동경 역 가까운 데 여관을 정하고 즉시 미우라 댁을 찾아갔다.
아사코는 어느덧 청 순하고 세련되어 보이는 영양(남의 딸에 대한 높임말)이 되어 있었다.
그 집 마당에 피어 있는 목련꽃 과도 같이. 그때 그는 성심여학원 영문과 삼학년이었다.
나는 좀 서먹서먹했으나, 아사코는 나와의 재회를 기뻐하는 것 같았다.
아버지 어머니가 가끔 내 말을 해서 나의 존재를 기억하고 있었나보다.

그 날도 토요일이었다. 저녁 먹기 전에 같이 산보를 나갔다.
그리고 계획하지 않은 발걸음은 성심 여학원쪽으로 옮겨져 갔다.
캠퍼스를 두루 거닐다가 돌아올 무렵 나는 아사코 신발장은 어디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는 무슨 말인가 하고 나를 쳐다보다가, 교실에는 구두를 벗지 않고 그냥 들어간다고
하였다. 그리고는 갑자기 뛰어가서 그 날 잊어버리고 교실에 두고 온 우산을 가지고 왔다.

지금도 나는 여자 우산을 볼 때면 연두색이 고왔던 그 우산을 연상한다.
<셀 부르의 우산>이라는 영화를 내가 그렇게 좋아한 것도 아사코의 우산 때문인가 한다.
아사코와 나는 밤늦게까지 문학 이야기를 하다가 가벼운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새로 출판된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세월>에 대해서도 이야기한 것 같다.

그 후 또 십여 년이 지났다. 그동안 제2차 세계대전이 있었고 우리나라가 해방이 되고
또 한국 전쟁이 있었다.
나는 어쩌다 아사코 생각을 하곤 했다. 결혼은 하였을 것이요, 전쟁 통에 어찌 되지나
않았나, 남편이 전사하지나 않았나 하고 별별 생각을 다하였다.
1954년 처음 미국 가던 길에 나는 동경에 들러 미우라 댁을 찾아갔다. 뜻밖에 그 동네가
고스란히 그대로 남아 있었다. 선생 내외분은 흥분된 얼굴로 나를 맞이 하였다.
그리고 한국이 독립이 돼서 무엇보다도 잘됐다고 치하를 하였다.
아사코는 전쟁이 끝난 후 맥아더 사령부 에서 번역 일을 하고 있다가,
거기서 만난 일본인 이세와 결혼을 하고 따로 나서 산다는 것이었다.
아사코가 전쟁 미망인이 되지 않은 것은 다행이었다.
그러나 2세와 결혼하였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만나고 싶다고 그랬더니 어머니가 아사코의 집으로 안내해주셨다.
뾰죽 지붕에 뾰죽 창문들이 있는 작은 집이었다.
이십여 년 전 내가 아사코에 게 준 동화책 겉장에 있는 집도 이런 집이었다.
"아, 이쁜 집! 우리 이담에 이런 집에서 같이 살아요." 아사코의 어린 목소리가 지금도
들린다. 십 년쯤 미리 전쟁이 나고 그만큼 일찍 한국이 독립이 되었더라면 아사코의
말대로 우리는 같은 집에서 살 수 있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뾰죽 지붕에 뾰죽 창문들이 있는 집이 아니라도, 이런 부질없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 집에 들어서자 마주친 것은 백합같이 시들어가는 아사코의 얼굴이었다.
<세월>이란 소설 이야기를 한지 십 년이 더 지났었다. 그러나 그는 아직 싱싱하여야
할 젊은 나이다.
남편은 내가 상상한 것과 같이, 일본사람도 아니고 미국 사람도 아닌 그리고 진주군
장교라는 것을 뽐내는것 같은 사나이였다.
아사코와 나는 절을 몇 번씩하고 악수도 없이 헤어졌다.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오는 주말에는 춘천에 갔다 오려 한다.
소양강 가을 경치가 아름다울 것이다
신고

'번역 [飜譯] > 韓日飜譯 [한일번역]' 카테고리의 다른 글

[essey] 月夜 - 尹五榮 (달밤 - 윤오영)  (0) 2009.10.08
[poem] 秋が來れば - 김용택  (0) 2009.09.28
[緣] 皮千得  (0) 2009.09.12
[poem] 九月が來れば - 安度眩  (0) 2009.08.27
[poem] 月と雲 - 李秀翼  (0) 2009.08.12
[poem] 雨 - 李星馥  (0) 2009.08.03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