國寶第37號 : 慶州九黃里三層石塔   -   민속문양 [民俗紋樣]

國寶第37號 : 慶州九黃里三層石塔
所在地 : 慶北慶州市九黃洞103  
時代 : 統一新羅

新羅神文王が死亡した後、その息子である孝昭王が父親の冥福を祈るために建てた塔で
'皇福寺址石塔'とも云われる. 高さ7.3メートル、基壇の幅4.2メートルから成り、
2段基壇の上に3層の塔身を立てた形で, 感恩寺址三層石塔(國寶第112號)や
高仙寺址三層石塔(國寶第38號)に比べ規模はやや小さい.

基壇樣式は二つの塔と似通っているが, 基壇各面に刻まれた柱が3個でなく2個になっている.
塔身部も数個の石で組み立てる代りに身石と屋石が一つの石で作られ, 変った石塔の樣式を
見せてくれる. 屋石は上面が平たく、四つ角が若干軽快に上を向いている。 底面には5段の
支えを置いた. 塔の頂上には頭裝飾の支石である露盤だけが残っている.

孝昭王1年(692)に建てた塔で, 以後孝昭王の後を継いだ聖德王が卽位して5年目の706年
舍利や佛像等を塔内に入れ、二王の冥福を拝み, 王室の繁榮と太平聖代を祈願した.
1943年塔を解體修理する際、2層屋石の中から金銅舍利函と金銅佛像2具を始め数多くの
遺物が發見された。舍利函の蓋の内側に塔を建立した謂れと發見された遺物の性格が
記されており、塔の建立年代と造成意圖を正確に知ることができた.

국보 제37호  
소재지  경상북도 경주시 구황동  
시대  통일신라시대  

국보 제37호.1962년 지정. 현재 높이 7.3m, 기단 너비 4.2m이며, 2층의 기단 위에
세운 신라의 전형적인 3층석탑이다. 하층의 기단은 맨 아래의 지대석(地臺石)과
그 위의 중석(中石), 이를 덮은 갑석(甲石) 등인데, 각각 8장의 돌로 이루어져 있다.
상층의 기단은 기단면이 8장, 그 위에 얹힌 갑석은 4장으로 짰고, 상·하층의 기단면에는
각각 탱주(撑柱)를 둘씩 세웠다.

탑신부는 옥개석과 옥신이 각각 1석(石)이며, 옥개 받침은 각 층이 5단이다.
상륜부(相輪部)는 노반(露盤)이 남아 있다. 이 석탑은 감은사지3층석탑이나
고선사지3층석탑보다 작은데, 이는 한국의 석탑 건축수법의 변화 과정을 보여주는
것으로 큰 의의가 있다. 즉, 하층 기단면의 탱주가 2개로 줄었고, 탑신부를
1석으로 짜 올려 작은 석재를 이용하는 수법에서 벗어나 괴체성(塊體性)을 보인다.

1942년 이 석탑을 수리하다가 제2층 옥개석에서 발견한 사리함 뚜껑 안쪽에 새겨진
조탑명문으로, 692년(효소왕 1)부터 706년(성덕왕 5) 사이에 건립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이 석탑의 북쪽에 건물터로 보이는 지역이 있고, 십이지신상이 양각된 석재가 군데군데
박혀 있다. 건립 유래가 분명하여, 연대를 추정할 수 있는 점에서 귀중한 문화재로
평가되고 있다.     <두산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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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요고호(余吳湖)의 하고로모(羽衣) 전설   -   잡문 [雜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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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일로 일본 滋賀県에 있는 余吳湖의 사진을 보게 되었는데
그 호수에 얽힌 전설이 우리의 ‘선녀와 나무꾼’하고 너무도 흡사하기에
사진과 함께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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