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에 나홀로   -   잡문 [雜文]

컴퓨터의 이-ㅇ 하는 소리가 한밤의 고요 속을 멤돌고 있다. 자판에 손을 올려 놓은채 그저 스크린을 응시하고만 있는게 언제부터였던가. 나도모르게 한숨이 입을 타고 흘러나온다. 이러다간 오늘도 날밤을 새야 할까보다. 글을 쓰는 일이라는게 뼈를 깎는 아픔이라는 것은 일찍부터 알고있는 터였지만, 남이 써 논 글을 번역하는 일이 그보다 수천배 힘든 작업이라는 것을 나는 오늘에야 진저리를 치면서 온몸으로 느끼고 있는 것이다.

내가 일본글을 번역하는 일을 맡은건 정말 우연한 계기에서였다. 형제들이 모인 자리에서 화제가 책으로 이어졌을 때, 외국작품은 제대로 번역이 안돼있는 것이 많아 읽기가 힘들다는 말을 내가 거침없이 내뱉은 것이 화근이었다. "그럼 네가 한번 해봐라" 라고 오빠가 지나가는 소리처럼 하기에 난 "못할것도 없지" 하고 내친김에 큰 소리를 치고말았는데, 내가 한 말에 책임을 지우기라도 하듯 오빠는 일감을 내게 떠맡겼다. 그것이 한달 전 일,그로부터 나의 각고의 나날은 시작된 것이다. 나의 자존심은 차치하고라도 오빠의 체면이 걸린 이 일을 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제대로 완성해야만 한다. 머리에서 떠나지않는 이 중압감은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나의 체중을 2킬로나 빼앗아갔다.

나의 작업은 주로 밤에 시작된다. 먼저 컴퓨터를 켜놓고 원고와 사전을 양 옆에 펴 놓는다. 스크린에 나타난 어제의 작업량이 너무나 적은 것에 혀를 차면서 마음을 다잡아보지만 자신이 없는건 어제나 오늘이나 다를바 없다. 원고를 읽으면서 그대로 키이를 두드릴수만 있다면.... 하지만 난 사전과 씨름을 하면서 애써 스크린에 올린 글을 지우는 일에 급급하다. 아아, 나의 무지함과 무력함. 나는 벌떡 일어나서 창문을 열었다. 달도 별도 없는 시커먼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문득 이 순간 나처럼 저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한 100명은 될까, 바보같은 생각을 해본다.

간간히 들리던 차 소리도 어느새 완전히 끊어져 버리고, 컴퓨터 소리만이 적막을 가르며 내게 겁을 준다. 엊그제 까지 밤은 내게 있어 그저 하루의 피로를 풀기위해 잠들도록 해 주는 어둠일뿐이었는데, 지금 난 그 밤을 그리워 하면서 녹슨 머리 속을 닦아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다. 컴퓨터 자판만 보이게 얕으막히 켜 놓은 스탠드 불빛 너머로 괴물같은 내 그림자가 흠칫 나를 놀라게 한다. 난 겁먹은 눈으로 사방을 둘러보다 얼른 시선을 스크린으로 옮겼다. 그래, 누가 이기나 끝까지 해 보자. 나도 오기가 있고 끈기도 남만큼은 있으니까. 오기도 끈기도 좋은데 두들겨 논 글에 왼 오자가 이렇게나 많담! 난 픽 웃으며 잘못 친 글자를 고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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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울 서울`   -   잡문 [雜文]

베고니아 화분이 놓인 우체국 계단
누군가에 엽서를 쓰던 그녀의 고운 손

조용필의 서울 찬가(讚歌)를 흥얼거리면 눈앞에 아름다운 서울 거리의 한 컷이 떠오른다.
빨간 베고니아가 활짝 피어있는 화분이 놓여있다면 아마도 초여름이겠지. 카키색 모자로 햇빛을
가린 소녀가 가지런히 모은 다리 위에 색(sack)을 받치고 엽서를 쓰는 모습...
서울에서 언어연수를 받고 있는 외국인이라도 좋고, 고향의 남자친구에게 이번 방학에는
공부 때문에 못 내려간다는 소식을 전하는 새내기 대학생이라도 좋다. 가끔씩 시선을 들어
먼 곳을 바라보면 빌딩 사이로 빼꼼히 고개를 내미는 남산....

서울 서울 서울 아름다운 이 거리
서울 서울 서울 그리움이 남는 곳

정녕 서울 거리는 그리움이 남는 아름다운 거리일까? 계단에 앉아 엽서를 쓸 수 있을 만큼
정돈되어 있는 상큼한 거리일까?

대로변 빌딩 벽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형형색색의 간판을 모두 뜯어낼 수만 있다면, 유리창마다
원색으로 박아놓은 상호나 선전문구를 깨끗이 닦아내어 햇살이 보석처럼 반사할 수 있게
만들 수만 있다면, 인도를 3분의 1 이상 점령한 점포의 물건들을 안으로 들여놓고 화분이라도
몇 개씩 늘어놓는다면,
길가에 버젓이 세워둔 오토바이나 자전거를 안 보이는 곳에 치우고 비질 뒤에 물이라도 뿌려
놓는다면, 노래 가사가 그대로 들어맞는 멋진 서울거리가 되고도 남으련만....  

얼마 전 차 안에서 우연히 밖을 내다보다 기절을 할 뻔했다. 숭인동에 있는 동묘 돌담에
넝마 같은 옷이 주렁주렁 매달려있는 게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우리의 자랑스런 문화유산을
갈고 닦지는 못할망정 이게 웬일인가! 한 블록만 건너면 청계천 고물시장이 어엿이 있는데도
굳이 이곳에 조잡한 물건들을 펼쳐놓는 사람들의 무신경에 울화가 치밀었다.
먹고살기 위해서라면 어디에 무엇을 펼쳐놓고 팔아도 상관없다는 이야기인가.
서울에는 시급하게 정리해야 할 게 있다. 하루가 다르게 불어나는 노점상들의 횡포를 더 이상
묵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인도를 절반이나 차지한 빨강파랑 야채 과일 소쿠리들을 할머니라고
해서 그대로 늘어놓게 할 수는 없다.  차도 쪽으로 내팽개쳐진 시퍼런 비닐보따리도 미관상
절대 방치해선 안되지만 무엇보다도 인도가 제구실을 못하고 있다는 점을 중시해야 할 것이다.

서울의 거리모습을 수준이하로 떨어뜨리고 있는 또 하나의 원흉이 조잡하면서 크기만한
간판의 홍수이다. 유럽의 어느 도시에서는 간판에 정해진 2가지 색 이외는 절대로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저 유명한 맥도널드 햄버거의 빨간색도 점포 앞의 작은 입간판에만
겨우 사용되고 있다는데, 서울에서는 빨주노초파남보, 모든 색을 동원한 간판, 상호, 그리고
배너가 빌딩 전체를 뒤덮고 있는 게 현실이다.
물론 장사를 하려면 간판도 달고 선전문구를 써넣은 배너도 걸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서울을 사랑하는 마음이 한 조각이라도 있는 장사꾼이라면 옆집에 질세라
대문짝만한 간판을 내걸지는 않으리라. 시에서 지정해 놓은 규격과 색깔이 있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으나 최소한 눈에 피로를 주지 않을 정도의 색 배합은 고려해야 하지 않겠는가.
한국 특유의 색깔과 멋을 지닌 세련된 간판들이 서로서로 조화를 이루면서 가로수의
푸르름과 어우러질 때 비로소 서울은 국제적인 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춘 아름다운 도시라고
불릴 수 있을 것이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강렬한 원색 간판으로 뒤덮인 건물들을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계속 바라보면 가벼운 현기증을 느낀다는 사람이 내 주위에 얼마든지 있다.
과격하고 성급해지는 서울사람들의 성격이 색깔에서 받는 압박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나의 지나친 망상일까?

예전에는 이따금씩 거리 단속을 하는 듯 하더니 이젠 그것도 없어진 것 같다. 하긴 단속만으로
서울거리를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서울을 아끼는 서울시민 모두가, 스스로 아름다운
서울이라는 이미지를 온 세계에 심어놓기 위해 팔을 걷어붙여야만 가능하다.
서울은 대한민국의 얼굴이 아닌가!

나는 갈망한다. 가로수 사이로 빗살처럼 쏟아지는 햇살을 받으며 여유로이 걸을 수 있는 거리,
눈을 들어 사방을 둘러보면 곱게 단장한 건물 위로 흰 구름이 지나가고, 눈이 시릴 정도는
못되어도 우리 나라만의 파아란 하늘이 머리 위에 있는, 그런 환상적인 서울로 거듭 나기를......

서울 서울 서울 추억으로 남으리
Never forget, oh my lover Seoul!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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