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양에 대한 글을 올리면서... 模樣に對する文章を載せるに至り....   -   민속문양 [民俗紋樣]

몇해전에 딸아이가 한 출판사로부터 민속문양에 대한 책을  써보지않겠느냐는
제의를 받았답니다. 평소에 흥미를 느끼고있던 터라 쾌히 승낙하고,
반년동안을 자료 수집과 글 쓰는 일에 몰두했는데,그만 출판사가 문을 닫고 말았다네요. 
어미 마음에  그대로 썩히는 게 아깝다는 생각이 늘 들었기에 조금씩 여기에
올리고자 합니다. 잘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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數年前でしょうか, 娘がとある出版社より民俗紋樣に對する本を出す氣はないかとの
提案を受けたそうです. 普段から興味を持っていたので心よく承諾し,
半年程資料を集める傍ら, 文章を綴ることに取り組んでいたところ, 殘念ながら
出版社が看板を下してしまったというのです. 
わが子愛しさからでしょうか, そのまま仕舞って置くのがもったいないと常に思っていたので,
少しづつ私が飜譯して其處に載せてあげることにしました. どうぞよろしくお願いいたし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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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포로(札幌)   -   기행문 [紀行文]

하코다테에서 탄 삿포로행 기차는 토요일 오후인 탓일까 거의 빈자리가 없다.
의자를 돌려 셋이 마주 앉았는데, 발차 직전에 조르지오 아르마니풍의 바바리를 걸친
모던한 30대 청년이 내 옆 빈자리에 가벼운 목례를 하고 앉는다. 우리는 하던 이야기를
잠시 멈추고, 그가 책을 꺼내 읽기 시작하자 슬금슬금 그의 정체를 가늠하느라
아래위를 훔쳐본다.

삿포로역은 홋카이도의 심장답게 널찍했다. 많은 인파에 밀리다시피 밖으로 나와
택시를 잡는다. 역에서 곧장 마주 뚫린 오오도리 번화가는 온통 화려한 네온으로
뒤덮여 있었다. 다섯시가 조금 넘었는데 북국(北國)의 하늘은 벌써 칠흑이었다.
우리의 숙소는 후생연금회관(厚生年金會館)이란 호텔. 앞자리의 A가
'이거 어떻게 읽지? 코오세이넨킨.....' 고개를 뒤로 젖히며 말하자 기사 아저씨가
'에?'하는 기묘한 소리를 낸다. 할수없이 A가 스케줄표를 그의 코앞에 들이밀고
호텔이름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 코오세에넨킨카이칸! 오케이'
연금회관이라기에 우중충하고 조그마한 건물인줄 알았더니 현관부터 으리으리한
매머드 호텔이었다. 주말이라 결혼식이 있는 모양, 화려한 키모노를 입은
젊은 여인들과  턱시도 차림의 남성들이 로비 이곳저곳에 무리지어있다.

방에 짐만 내려놓고 다시 밖으로 나와 택시를 잡았다. 그동안 공짜 자가용만 타다가
돈 내고 차를 타려니까 몹시 아깝기도 하고 낭비를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오오도리 번화가에서 내려 백화점으로 들어갔다. 여자들은 왜 그렇게 백화점을 좋아
하는지, 꼭 사야 할 물건도 없으면서, 패션계에 종사하는 캐리어우먼도 아니면서,  
층마다 구석구석 샅샅이 훑으며 다리품을 판다.
지하 식품부는 폐점이 얼마 안남았다고 고함을 치면서 떨이 장사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각각 조금씩 필요한 것들을 사는데, 내가 굵게 말아 논 후토마키스시(太卷きすし) 앞에
서자 저녁 먹을텐데 그건 뭣하러 사느냐며 질색들을 한다. 못들은체 한 줄을 샀다.

역으로 통하는 길을 더듬어 식당가로 나왔다.
열명 들어가면 한사람은 밖으로 튕겨져 나올 것만 같은 조그만 집에 들어가 나름대로
먹고싶은 것을 시키는데, 내가 '고메(五目)우동' 하니까  '아, 고모쿠 우동'하면서
예쁜 아줌마가 생긋 웃는다.
이 나라는 뭣땜에 한문을 몇 가지로 읽어 멀쩡한 사람 병신 만드는지 모르겠다.

호텔로 돌아와 차례로 목욕을 한 뒤 일본차를 끓이고 비닐봉지에서 김초밥을 꺼내자,
내가 미처 개시도 하기 전에 저희가 먼저 집어먹고는 '참 맛있다, 얼른 차 따라라'.
기가막혀 말이 안 나왔다.  


9시에 친지가 마중을 왔다. 오후 비행기로 떠나야 하기에 짐을 모두 차에 싣고
시내관광을 나섰다. 어제 밤의 그 화려했던 오오도리가 별볼일 없는 그저 넓기만한
한산한 거리로 변해 있었다.
일요일이라 사람마저 뜸하다. 동계올림픽이 열렸던 점프대에 올라 삿포로시내를
내려다보기도 하고, 시계탑이 있는 박물관을 찾아 그들의 개척사를 훑어보기도 하고,
마차에 올라 기념촬영도 하는 동안 시간은 쉴새없이 달아난다.
근대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일본화전(日本畵展)을 관람한 것은 큰 수확이었다.

광활한 땅에 마음껏 설계한 홋카이도(北海道)대학 캠퍼스는 차를 타고 달리기
좋을만큼 넓고 시원했다. 대학건물이 낯익어 가만히 생각해 보니 동숭동에 있던
서울문리대건물과 아주 흡사하다.
미국에서 초빙한 클라크 초대 학장의 흉상 앞에서 증명촬영을 한 뒤,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아래서 소녀처럼 은행알을 줍는 낭만을 즐겨보기도 했다.

Sogo백화점 식당가의 일식당에서 생선초밥을 먹었는데, 본고장 스시맛은 과연
입에 착착 달라붙는다. 친구들이 마지막 쇼핑을 즐기는 동안 나는 친지와 책방을
기웃거린다.

친지는 千歲空港까지 우릴 데려다  주고, 비행기안에서 먹으라고 그 고장 명물인
요캉(羊羹)을 내 손에 쥐어 준다.
'서울에 오시면 꼭 전화 주세요.'  '그럼요, 하지만 몇 년은 더 여기에 머물러 있을 것
같은데요'.
이번에는 노보리베츠에서와는 달리 정감 어린 낮은 목소리로 이렇게 주고받았다.
그리고 우린 손을 흔들며 보세구역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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