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等考試(國家考試) (二)   -   번역 [飜譯]/韓日飜譯 [한일번역]

休戰になった後も私は最前線で軍隊生活を續けていた. そしてたびたび休暇を貰ってはソウルに戾り, 學校へ行って講義を聽いたり仲間と會ったりした.
そんなある日, 親友が校庭ですれちがった一人の學生に目をやりながら, 彼は3年在學中に高等考試の外交部に合格した秀才だ, と羨やましげに傳えるのだった. 私もその學生がすごく羨やましかった. 受驗準備など始めもせずにいたのが, 突然, 遲過ぎぬうちに私も高等考試を受かるべきでは, といった思いが負擔感として迫って來た.
休暇を終え部隊へ歸る際, 私は高等考試の試驗に必要な書籍を數冊求めて持ち歸った. それから親友に, 高等考試の告示がある次第, 速やかに知らせてくれることを賴んだ. 私は通譯將校として軍服務に當っていた爲, 前方部隊とは言え, 時間的に餘裕も有り, 勤務もさほど嚴しくなかった. そんなわけで, やる決心さえあれば受驗準備はいくらでも可能な立場であったが, 試驗日時が決まらない狀況で準備に勵むということは, 實に難しく, 第一集中ができない.

1954年の春, 第7回高等考試が晩秋に實施される旨の告示が發表されたとの連絡を貰った. 私はすぐにもソウルへおもむき, 應試書類を提出したかったが, そう度度休暇を貰う立場でもなかったので また親友に書類提出を賴むしかなかった.

試驗日時が迫って來るに從って私はあせりだした. 大學1年を修了すれば受驗資格が與えられるので應試は可能なわけだが, 學校でちゃんと講義を受けてない憲法, 國際法, 國際經濟等の專門科目を2∼3冊の參考書籍のみに賴らねばならず, それに, 互いに勵まし合いながら勉强する仲間もなく, 獨りでがんばるという事自體が, そう生易しいことではなかった.
そんな矢先に, 私を哀れむ神の惠みだろうか, 試驗日時が翌年の夏に延期されたとの連絡が親友から飛んで來た. 願ってもない朗報に大きく安堵の息をついた.
そして私は1955年の春, 3年目に軍服を脫いだ.

ソウルに戾った私は, 受驗日を3個月先にひかえ本格的な試驗準備に取りかかった. 家ではどうも思う通り集中が出來ない. 周りで氣を配り過ぎるのもかえって重荷になるので, 東和百貨店(今の新世界百貨店)內にあった古典音樂感想室へ出掛けて勉强をした.
朝10時頃に行くと感想室には2∼3名の客しか無く閑散としているので, どんな曲でも賴めば聽かせてくれる. 好きな曲を耳に入れながら本を讀むと, 頭にすいすい入り, 前への進み具合も早くなる感じだった.
中食は乙支路入口にあった有名な河東館で, ゴムタン(濃い牛肉の煮詰め汁)を取ることで榮養を補い, 再び感想室にもどり音樂と共に本を讀む. そして日課を終えた人人がどんどん集まり雰圍氣が落ち着かなくなる頃家に歸る.

當時高等考試は, 司法科と行政科に分れて實施され, 司法科試驗が先に行わられるのが常例だった.
私は前もってそれを知っていたので, 兩科に應試願書を出した. 司法科の受驗科目には民法, 刑法, 訴訟法等があり, 相當の準備がない限り應試は無謀なことであった. しかし私が司法科にも應試したのはなにも合格を目指したのではない. 司法科の應試科目に, 憲法, 國際經濟, 國史等,行政科と共通な科目があったので, その出題傾向を調べ, 答案作成の要領も得る一方, 時間配分に對する經驗もしておこうとの下心があったからだ. 則ち本考試の爲の豫行練習ってわけだ.
問題は, 高試科目を選別して應試するのは不可能で, 一つの科目でも拔かった場合は失格に處理される爲否應なく全科目を受けねばならないという事だ. 勉强もせず, 又これといった常識も備えてないまま民法や刑法など專門的な質問に關する答案の作成自體が話にならないナンセンスであり, 見方に依っては, 神聖なる司法高試本來の目的を冒瀆する行爲とも言えよう. 私の常識をはずれた答案を讀みながら採點官は, 啞然とし, 惑いは憤怒したであろう. しかし私は貴重な經驗を得たし, ある程度自信感も抱くことが出來た.

本考試の行政考試に臨みながら, なぜか私は心が和み, 無知や未知から來る恐怖とか戶惑いを覺えないのにほっとした. 一つの科目を終え次の科目が始まるまでの1時間の休憩にも, 私は靜かに本を讀む餘裕を持つことができた. 勿論分厚い本を全部讀めるわけはなく, 受驗準備の際重要と見て赤く線を引いて置いた部分だけに目を通す程だったが, 不思議なことに, 次の應試場に入り問題を受けて見ると外で直前に讀んだ部分と關聯のある問題が目に飛びこむ, といった具合で, 私はどうにか大したミス無しに試驗を終えた.
しかし, 正直言って合格を願うほどの慾は持たず, ひょっとすると...といった幸運を期待する程度の輕い心構えだった. おおよその受驗者が2, 3年間じっくり準備を整えた後, 1-2度の苦い失敗の經驗を經て, ようやく成功の喜びを抱くのに對し, 最初の受驗で, ろくに準備もせず大きな榮光を望むのは厚かましいと, 自分に言いきかせた.

待ち遠しい5個月が過ぎ, 年末が近付いた頃, やっと合格者の發表があった. 中央廳の揭示板に名單が揭げられて數時間が過ぎた後の日暮れ時, 私は獨りで默默と揭示板の處へ赴むいた. 周りには誰もいなかった.

私は見た. 有った! 確かに私の受驗番號と名前三字が載っているのだ. 私は叫びたかった. しかしぐっとこらえた. その代り天に向かい兩手を高く上げ大きく息を吐いた. 家に歸り母に合格を告げると, 母は喜びで淚ぐみ, 喉をつまらせた.
11歲の時父を亡くし, 豊かでない暮しの中で4人の子供を育てながら, どれほど苦しい思いをしたであろう. 私は誰の助けも受けず, 自分の努力一つでこの合格の榮光を握んだわけだが, 母の切實な祈りと, 地下で永眠しておられる父の恩寵が無かったらこの幸運は有り得なかったと思われ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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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yoohyun reply | del   2013.05.09 20:04 신고
    <호중>
    Your translation is much better than my original version.
    I hope many readers will enjoy the story that happened about half
    a century ago.
    In Japan, I know the national examination to become a diplomat is quite competitive,
    and they may think that the Korean examination may be much easier than in Japan to pass.
    In fact, that is not the case. Any way, I look forward to the forrthcoming translation
    with much expectation. I highly appreciate your toil and effort in doing the translation.
  2. yoohyun reply | del   2013.05.09 20:05 신고
    オリジナルより優れているなんてとんでもないことですが,
    著者からそう言われると, つい"やった-!"って...... (馬鹿は死ななきゃ治らない^^;;)
    とにかく一生懸命がんばるつもりですので, 間違った所など, どしどし指摘しつつ
    勵まして下さいm(._.)m
           

[매디슨카운티의 다리]를 읽고   -   잡문 [雜文]

의외로 여지껏 소설같은것 한번도 읽어본적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더욱이 나처럼 나이든 사람으로부터 그런 소릴 자주 듣는데, 그럴때면 난 그 사람의 지난 세월이 아깝고 송구스럽기까지 하다.  책에서 얻어지는 그 굉장한 것들은 차치하고라도, 비오는 날의 오후라던가 남편의 귀가를 기다리는 늦은 시각에 클래식 음악을 볼륨을 낮추어 틀어놓고 책을 펴들었을 때 온몸에 파고드는 행복감이란 진정 맛보지않은 사람은 상상도 하지 못할것이다.  

나는 책에 미친 두 오빠 덕으로 어려서부터 책과 가까이 했다.  중학교 일학년 때 "뇌우"라는 중국소설을 멋모르고 읽다가 큰오빠에게 혼줄이 난적도 있었고 고등학생이 "걸리버여행기"를 빌려 본다고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다.  아무튼 난 잡독을 한다.  요즈음도 아이들이 사들이는 추리소설까지 빼놓지 않고 읽는데, 딸아이가 사온 이 책을 읽은것도 그저 눈앞에 이 책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딸아이의 출근 후 청소를 하려고 그 애 방에 들어갔다가 침대머리맡에 놓인 이 책을 발견하고 무심히 집어들었다. 첫 페이지를 훑어보면서 "이건 좀 색다른 심리추린가" 하는 지레짐작과 함께 약간의 호기심으로 페이지를 넘기면서 침대에 걸터앉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시장끼가 들어 정신을 차려보니 난 딸아이의 침대에 편안하게 누워 1960년대 빌리 와일더 감독의 미국 영화 한편을 보고있는듯한 착각에 빠져있었던 것이다....

-----극장의 불이 꺼지면 스크린 가득히 미국 서부 산악지대의 매혹적인 풍경이 펼쳐지고 한 낡은 픽엎트럭이 까마득히 먼곳에서 점점 앞으로 달려나온다.  음악과 함께 자막이 흐르고, 트럭이 스크린을 가득 메우면 운전석에서 카메라를 멘 중년 남자가 천천히 내린다.  주인공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해리슨 포드로 정했다.  주인공의 성격묘사를 하기 위해 여러장의 컷이 필요하겠지.  농구와 풋볼과 계집아이밖에 모르는 미국 사내아이들과는 다른, 영리하면서도 고독한, 예술성이 엿보이던 별난 구석이 있는 아이, 그리고 자라서 카메라맨이 되는 과정을 군대생활과 뉴욕 파리 등지를 클로즈업하면서 나타낸다.
드디어 트럭은 매디슨 카운티로 들어서고, 다리까지 가는 길을 묻기 위해 현관 앞에 앉아있는 한 여인 앞으로 다가간다.

갑자기 신이 바뀌어 67번째 생일을 맞이한 할머니가 쓸쓸히 비 내리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밖은 어둑어둑해지고, 그녀는 천천히 호두나무 책상 속에서 마닐라 봉투를 꺼낸다.  그 속에서 나온 두 장의 사진과 짤막한 글.
친애하는 프란체스카, (편지를 읽는 그녀의 연기에 얼마나 감정이 깃들여 있는가에 따라서 이 영화의 승패가 달려있겠지.)  
몸에 꼭 끼는 물 빠진 청바지에 하얀 티셔츠를 입은, 바람에 흩날리는 긴머리를 한 여인의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회상에 잠기는 여주인공-----

이 두 남녀의 사랑은 우리에게 삶의 의미 같은것을 느끼게 해준다.  인간이라면, 더욱이 여자라면 누구나 이런 사랑을 갈망하고 있으리라.  자신이 겪었던 아주 엷은 사랑마저도 모두 이러한 사랑으로 승화시키고 싶을 것이다.  숙명적이랄 수밖에 없는 진지하고 격정적인 사랑, 그 사랑을 더욱 절실하게 만들어주는것이 지붕덮인 다리가 있는 작은 고을과, 닷새라는 제한된 시간인것이다.  처음 만남에서부터 끓어오르는 저 가슴밑바닥에 숨어있어 스스로도 까맣게 잊고 있던 사랑의 불길을 애써 이성으로 누르면서 의연하게 행동하는 프란체스카의 모습에서 성숙한 여인의 지적인 분위기를 맛본다.  
킨케이드가 떠나고 난 뒤 화장대 앞에 알몸으로 서서 자신의 외면과 내면을 한꺼번에 꽤뚫어보는 프란체스카, 이윽고 그녀는 쪽지에 편지를 적은 뒤 한밤중에 픽업차를 몰고 로즈먼 다리까지 달려가 입구에 그것을 붙여놓고 돌아오는데, 그러한 용기와 대담성에 탄복하면서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프란체스카는 단호하게 이성을 밀쳐내면서 사랑을 만들기 위한 준비를 시작한다.  와인을 사러 40마일을 달리고, 오로지 한사람을 위해 핑크 드레스를 사고, 그와의 만찬을 위한 요리를 만들면서 모처럼 들뜬 기분이 된다.  그리고 그날 밤 드디어 둘 사이에 불이 당겨지게 되는데, 이러한 중년남녀의 격렬하고도 그윽한 사랑이 여류작가 뺨칠 정도로 섬세하게 묘사되어, 읽는이로 하여금 글 속으로 빨려들어가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난 참으로 오랜만에 나이에 걸맞지 않는 황홀감을 만끽했다.
인간은 만나고 헤어지는 일에 길들여져 있다.  하찮은 만남에서부터 살을 깎는듯한 육친과의 별리까지 살아가는 동안 숱한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면서 때론 희열하고 때론 비통해한다.

드디어 그들에게도 그러한 순간이 오고야만다.  모든것을 내팽개치고 사랑하는 사람과 떠날 수만 있다면... 하지만 프란체스카는 자신의 현재 위치를 직시하고 사랑보다는 "의무"를 택한다.  한가닥 희망을 남겨논채 떠나는 킨케이드를 눈물로 보내면서, 그녀는 자신이 얼마나 큰것을 잃었는지 미쳐 깨닫지도 못한다.  그리고 그가 자신과의 사랑을 영원히 숭고하게 간직하리라는 것을 짐작도 하지 못한다.
남편이 죽고 킨케이드를 다시 찾고 하는 후반과 마무리는 좀 장황했다. 한권의 책을 만들기 위해 어쩔 수 없는 노릇이겠지만 아무튼 산뜻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끝까지 책을 내려놓지 않게 만드는 힘은 있었다.

나는 어느편인가 하면 간결한 문장을 좋아한다. 우리나라 여류작가 중엔 글을 수식하고 그 수식한 것을 다시 수식해서 골자가 무엇인지 아리송하게 만드는 이가 있는데, 난 그런 글은 딱 질색이다.  또 무턱대고 난해한 용어를 구사하고 한글대사전의 귀퉁이에서나 찾아낼 수 있음직한 괴상한 단어를 굳이 나열하여 그럴듯하게 보이려 애쓰는 작가도 있다.  글이든 그림이든 자기 만족을 위해 만드는 쪽 보다는 일반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그래서 그 안에서 무엇이든 얻을 수 있는 그런걸 창조하는 사람을 난 존경하고 또 좋아한다.  그런 면에서 이 작가는 내 마음에 들었다.

이 작품은 대단하지는 않다.  하지만 읽으면서 지루하지가 않았다.  어려운 글귀도 없었다.  내용도 주변에 흔히 있을 수 있는 성숙한 남녀의 사랑 이야기다.  그런데도 다 읽고 난 후 감미롭고 짜릿한 여운도 남겨준다.  마치 좋은 영화를 보고 난 뒤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자기 싫은것 처럼.

난 이 책을 소설이라는 걸 한번도 읽어보지 못한 사람에게 권하고 싶다.  틀림없이 그 사람은 다른 소설을 또 읽어보고 싶은 충동을 일으킬 것이니까.
                                                                                       지은이: 로버트 제임스 윌러

* 이 작품이 영화화되기 전의 어느 해 가을, 중앙일보에서 독후감 모집이 있어 이 작품으로 응모했더니, 어른대접해서인지 꼬바리상을 주더군요. 후에 영화화되어 기대를 안고 보았는데, 남녀주인공이 연기는 잘하는지 몰라도 너무 늙어 실망했어요. 해리슨 포드와 미셸 파이퍼가 했으면 훨씬 좋았을걸,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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