駐日二等書記官 (五)   -   번역 [飜譯]/韓日飜譯 [한일번역]

.韓日會談
初めて得た息子, 在植の生後百日祝いを終えて間もなく, 私は日本勤務の發令を受けた. 當時はまだ日本との國交が正常化しておらず, 我等の公館は大使館でなく代表部となっていた.
私は單身で赴任した. そして住み家を探し, 必要な家財道具を整え, 約一ヶ月後東京へ家族をまねいた.
日本の生活はソウル生活と別に變ったところも無かったので暮しに不便はなかった. 家內も日本生活を樂しむ樣子だった.

私は代表部の經濟課に配屬された.
その頃, 韓日間では國交正常化に關する會談が開かれていたが, どうもらちがあかなかった.
日本代表の久保田さんが, 日本は韓國統治の際鐵道を建設し下水道を造るなど, 韓國の發展に多く寄與したといった妄言を述べた事で, 長い間決裂狀態におかれていたが, 1964年10月に金東祚前外務次官が裵義換大使の後を次いで日本に赴任するや, 俄然活氣を帶び始めた.

ソウルより多岐にわたる代表らが來日し, 各分科委員會にわかれて會談に取り組んだ. 私も代表團の一員に任命され, 韓日間の基本關係を再定立する基本條約締結の交涉に參加した.
交涉は難航に難航を重ねていたが, 必ず國交正常化を成しとげてみせるといった兩國の强い意慾に基づき難題が一つ二つほぐれ始めた.
日本外務省で行われていた會談は, 夜更し交涉が頻繁になるや, 場所をヒルトンホテルに移した. 何よりもまず食事に不自由させない配慮からだった.
實務陣の間で高聲が飛び交い, 互いに張り合ったまま, 解決の絲口を探せぬほど深刻になると, 金大使と牛場外務審議官が調整に進み出て慰撫することもあった.
再び場所は箱根に移された. 靜かな雰圍氣が欲しかった爲だ.

獨島の領有權, わが國に對する日本側の賠償, 在日僑胞の法的地位等, いくつかの核心問題のみ未解決で殘された頃, 李東元外務長官が日本を訪問した. 當時, 日本內の左翼系及び朝總聯では韓日國交正常化を猛烈に反對していた狀況だったので, 宿所迎賓館までの道路は交通統制され, 沿道には50メ-トル間隔で警官が立ち竝ぶほどだった.
李長官は公式訪日の日程が終っても日本を離れようとしなかった.懸案問題の妥結を見るまで座を離れぬと, どっかり腰をすえたのである.
李長官は, 公式日程が終ったからには日本政府の好意に甘えられぬと, 迎賓館を出, ヒルトンホテルに宿を移った後, 日本の讓步を强要した.

.國交正常化
樣樣な迂餘曲折を經て漸く韓日會談は妥結に漕ぎ着いた. 基本條約を始めとする數多くの條約, 協定, 合意文書等の署名式は佐藤榮作日本首相のアイディアに從い首相官邸で行われた.
1965年6月22日, 署名式場に參席した私は實に感無量であった. 過ぎ去りし少年時代, 日本植民統治下での色んな屈辱的事がらが頭に浮んだ.
朝會時には東京の方面へ向かい宮城遙拜を强いられ, 續けて"皇國臣民の誓詞"を大聲で唱えさせた. 學校では日本語だけでしゃべればならず, 日本名に替える, いわば創氏改名を强要された.
そればかりか, 日本の慶祝日には天皇夫婦の寫眞を覆い被せた幕が上る間, 日本國歌を聽きつつ,ずっと頭をさげていなければならず, たれる鼻水をすするといって叱られもした.
戰爭が終りに近づいた頃は, 勉强などほうりだし, 中學1,2年の幼ない身體で空襲對備の爲の家屋壞し作業に動員され, 又は飛行場造りの現場で數箇月間重勞動を强いられた.

ついに主權回復を取り戾したわが國から立ち退くことになった日本が, 數えきれぬほどの罪の代價として我等に與えたのは果して何なのか.
今日, かの日本より謝罪を受け, 代價を支拂われることになったと思うと, 一種の興奮までわきあがった.

署名が終ると, 別室の大ホ-ルで祝いの宴が開かれた. 佐藤首相は相當滿足氣味だった. 隣國との國交が樹立されたので, 惱みの種が取れせいせいしたであろう. それに歷代の總理大臣が果せなかった大事をついに自分が成し遂げたといった高慢心が彼の肩に力を入れさせたろう.
韓國政府を代表して條約に署名された李東元長官と金東祚大使の表情も同じく明るかった. まだ陽は頭上で輝めく眞晝であったにもかかわらず, 彼等と我等は續け樣に祝杯をあおった.

苦勞を重ねて妥結に至った條約と協定文は, 韓.日兩國の國會より批准されるまで再び少なからず困辱を受けねばならなかった. 獨島の領有權に關する明瞭な表現を避けたまま, 妥結されたのが氣にくわなかったわけだ.
日本議會では, 韓國外務長官が竹島(獨島)を韓國の島と言ってるが, どういう事かと詰問した. 答辯に立たれた椎名外相は, 極めてけしからん事だと短く述べ,とぼけたと言う.
わが國會では野黨議員らが壇上を占據する騷動まで犯しつつ,どうして獨島がわが領土であるとの文書に日本政府の判こを貰って來なかったのかとまくしたてた.
李東元長官は, 自分の家內を自分が連れて住めばそれで事足りるわけで, 自分の家內であるとの證明を隣りの男から貰う必要など何處にもないと對應した.

國交が正常化されると代表部は大使館に昇格した. 金東祚大使が駐日本初代大使として日本の天皇に信任狀を提呈した. 金馬車に乘って大韓民國の大使が堂堂と宮城へ入る場面は實に壯觀であった. 大使館內の序列がまだ高くなかったので, 制限された隨行員の中に私は入れて貰えず少なからずがっかりした.

國交樹立と共に日本人の韓國訪問が許容されると, 日本の商人の間では, 韓國行きバスに乘り遲れるな, と言う流行り言葉が出廻った. 總6億弗で合意された請求權資金をもって韓國側では間違いなく多くの日本商品を購買するだろうから, この機會に一儲けしようとの下心から出た言葉だろう. 大使館經濟課長に任命された私は, 每日大勢の客を迎えるのに忙しかった.
尙, 私は年拂條件で日本のプラントを導入する仕事に關聯していた爲, 外務省や通商産業省へもしげしげと訪れることになった. 合成纖維工場, 肥料工場, セメント工場等が次次と導入された.
日本三菱商社を通じてセメント工場を導入する決定をおろした數日後, さるパ-ティで三井物産の幹部一人に出會った. 彼は, 韓國政府があの高額で三菱會社を通じてセメント工場を買い求めるのはまことなのかと皮肉っぷりに尋ねるのだった. そうだと答えると, 確かな話だったか, と驚くそぶりを示し, 自分の會社だったら同じ工場を數百萬ドル安くしてあげられたのに, 殘念な事だと言った. 私は日本の淺はかな商魂をかい間見たようで不快にな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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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とんぼ reply | del   2003.04.21 00:26 신고
    臨場感あふれる文章に若き駐日書記官の使命感がひしと伝わって来ます.
    >>…大使の表情も同じく明るかった. まだ陽は頭上で輝めく眞晝で…
    ドラマを見るようです.一般人ではうかがい知れない外交の世界ですね.
    舞台進行と同じ時代を生きてきましたのでそういう背景があったのかと頷きながら読んでます.
    これからが楽しみです.
    有炫さん,長丁場ですが翻訳頑張ってください.
  2. yoohyun reply | del   2003.04.21 01:02 신고
    yoohyun ( 2003.04.21 )
    とんぼさん 早速のコメント有り難うございました。
    いろいろと氣を配ってくださり大助かりです。 今後ともよろしくお願い致しま-す
  3. yoohyun reply | del   2013.05.09 20:13 신고
    <Hojoong>
    Reading your translation is quite interesting even to me, the original writer.
    Japanese readers must be very much amused to know what had really happened
    back in 1965 when the relations between Korea and Japan were normalized.
    I am pleased to see that the relations between our two countries have been steadily
    improved since then, and look forward to the even brighter future.
    I am sure that your work is making remarkable contributions to this effect.
    My dear sister, Your excellent translation is indeed worthy to be highly praised,
    and I can hardly wait for your forthcoming work. Good luck to you!
           

프라하에서 비엔나로 -음악여행(2)-   -   번역 [飜譯]/일한번역 [日韓飜譯]

4. 프라하에서 백마정까지
프라하를 떠나 잘츠부르크로 370킬로를 버스로 달린다. 이 길은 바로 210년쯤 전에 모차르트가 마차를 타고 갖가지 상념을 안고 지나던 길이다. 아침 7시반 출발이라 이르긴 했지만 모차르트의 [4시 출발]에서 보면 아무것도 아니다. 보헤미아의 전원풍경은 예와 다름없는 아름다움이리라. 특히 노랑색으로 펼쳐진 유채꽃밭이 눈에 시리다. 지금은 포장된 길이지만, 예전엔 울퉁불퉁해서 엉덩이가 아팠다고 모차르트의 편지에 상세히 쓰여있었지.

도중에 린츠에서 점심을 들고, 3시 지나 잘츠부르크에 닿았다. 이곳은 거의 모두 한두번 와봤다기에 모차르트 생가와 그가 살던 집만 보고, 미라벨 정원을 방문하여 멋진 등나무를 본 다음 잘츠칸마그드를 향해 서둘렀다. 차 속에서는 S교수가 준비해 온 테이프로 오페라, 모차르트곡, 사운드 오브 뮤직에 나오는 명곡, 그리고 오페레타 [백마정에서] 등을 들려주어 한층 흥겨웠다.

오페레타 [백마정에서]의 무대였던 백마정에 도착해보니, 그곳은 그야말로 무대장치 그대로의 분위기였다.
더욱이, 들려오는 치터(zither)의 우아한 음색! 나는 스스로 연주하지는 않아도 일본 치터협회의 회원이기 때문에 치터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많았는데, 처음 들어 본 곳은 아직 통일되지 않았던 동 드레스덴이었다. 하지만 유럽이라고는 해도 그렇게 쉽사리 들을 수 있는 소리가 아니어서 이번이 그 때 이후이다. 연주자는 백발의 점잖은 신사로, 우리들의 도착을 환영하듯 정성껏 연주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곳 잘츠칸마그드는 이름이 말하듯 암염(岩鹽)을 채취하기 위한 황실 소유지인데, 알프스의 빙하가 만들어낸 호수가 산재하여 그 자연적인 조형미는 이루 말로 형용할 수 없다. 백마정은 볼프강호를 바라보게 건축되어 있었고, 교회, 마을과 한데 어울려 오페레타의 무대 그대로였다.

전에 이곳을 방문했을 때는 그저 산책만 하고, 바드이슈르(BAD ISCHL)에서 천천히 머물렀기 때문에 오늘은 귀중한 밤이다. 저물어가는 호면과 저 멀리 알프스를 바라보면서 와인글라스를 기울인다. 백발의 연주자가 타는 슈트라우스와 카라스의 곡은 참으로 행복한 한때를 우리에게 안겨주었다.

식사를 마치고 코너의 바로 자리를 옮겨 치터 연주에 빠져든다. 우연히도 내가 좋아하는 쿠프스타이너 리트를 연주해 준건 감격이었다. 그 때, 스탠드에서 술을 마시던 우리의 버스기사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아, 이곳에서 춤을 춰도 되는구나, 하고 우리들도 춤추기 시작, 백마정의 밤은 언제 끝날지 모르게 깊어갔다.

5. 드디어 비엔나로
사랑을 나눈 뒤와 같은 기분으로 백마정과 상.볼프강을 뒤로 했다. 비엔나라는 고장이 우리를 백마정으로부터 떼어놓았다고 해도 좋으리라.
달리는 차창으로 호면(湖面)과 호수를 둘러싼 풍경에 넋을 잃고 있는 동안 이윽고 그뮨덴에 도착했다. 선착장 넓은 터에 아침장이 서있는 게 보인다. 서두를 여행도 아니니 이곳에서 잠시 쉬기로 했다. 신선한 야채, 과일, 육류 외에 잡화도 있었다. 녹각 가공품에 흥미로운 것이 있어 두어개 구입했다.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젊은 여성에게 아침장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조금이나마 그 지방 공기에 접한 기분이 든다.

도중에 아스파라가스를 맛있게 요리하는 집이 있다고 하여, 린츠 못미쳐 암슈텟텐에서 그 집을 찾아 점심식사를 했다. 굵은 손가락만 한 것 3개, 과연 일미다. 그것으로 만족했다.
그런 다음 브루크너와 관련이 있는 상 프롤리앙을 방문했다. 때마침 수도원 교회 안에서 올갠의 장중한 화음이 울려퍼지고 있어 잠시동안 심신을 씻어내는 느낌으로 귀를 기우릴 수 있었다.

비엔나에 들어서자 태양은 찬란히 빛나고, 나무들의 푸르름은 초여름을 구가하면서 우리를 반겨주었다.
       
             새 나무 빛깔은 비엔나 테라스의 의자색을 희게 하고

6. 기어히 일본과의 통신에 성공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일본과 통신하기 위해 전화 단자를 찾았으나 붙박이로 빼낼 수가 없다. 할수없이 프런트로 피씨를 들고 가서 모듈러 자크를 연결했으면 한다고 부탁하니 사무실 곁의 회의실로 안내를 한다. 그곳 벽에 원하던 플러그가 있었다. 아, 이거다! 하면서 플러그 인 한 뒤 니프티에 접속버튼을 클릭하자 세 번째에 드디어 지- 슐슐슐 하는 소리가 나면서 일본, 그리고 니프티가 연결되었다. 중국에서 보다 사흘이나 더 기다린 끝의 접속이어서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쌓여있던 사흘치 로그(기록)가 노도처럼 흘러나온다. 다만 이 때는 송신이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에 밤에 돌아와서 성공,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전화로는 특정한 사람과 밖에 이야기할 수 없으나 피씨는 동시에 여러 친구들과 연락할 수 있다는 점이 좋다.

7. 무티의 비엔나.필하모니를 듣다
여행 나흘째, 비엔나의 첫날이다. 일본과의 통신도 성공했고, 한바탕 목욕을 한 다음 밤의 콘서트를 위해 휴식을 취한다. 오늘밤의 콘서트회장은 뉴이어 콘서트로 잘 알려진 악우(樂友)협회 [황금의 방]이다. 호텔에서 지하철로 금방이었다.

오늘은 리카르도 무티 지휘, 비엔나.필하모니 연주로, 하이든의 [테.데움(Te Deum)]과 케르비니의 [장엄미사]이다. 그것도 1층 제일 앞 박스석이라는 최상의 장소로, 무티의 지휘솜씨는 물론이려니와 오케스트라, 합창 그리고 바바라.보니 등의 독창도 가까이서 들을 수 있게 된 것이 감격적이었다.

무티가 스칼라좌의 총감독이 된지 2년만인 꼭 10년전 일본방문 때 [나부코]등을 듣고 감격한 적이 있지만 오케스트라 박스 속의 지휘자는 잘 볼 수 없었다. 그 점, 오늘 밤은 곡도 훌륭하려니와 지휘자의 표정에서 발끝까지 볼 수 있어 더할나위 없다.
[장엄미사]라고 하면 베토벤의 곡이 유명하나, 케르비니의 것도 깨끗하고 맑은 곡으로 훌륭했다.
끝나고 나서 국립가극장 뒷골목 와인켈러에서의 한잔은 감동을 몸 전체로 스며들게 해 주었다. 가까이에서 연주하는 아코디언의 슈란멜 음악이 들뜬 기분을 서서히 진정시켜주었다.

8. 테니스에서 호이리게(Heurige)로
오늘은 5월 6일. 여행 닷새째이다. 운동부족에다 거듭되는 포식으로 몸이 무겁다. 밤의 호이리게(선술집)를 대비하여 테니스라도, 하는 마음에서 지하철로 테니스코트를 찾아갔다. 다행이 코치가 있어 한시간 동안 단단히 레슨을 받는다. 6면 정도의 케미컬코트를 실내에 마련한 커다란 시설로, 사우나등의 설비도 좋아보였다.

코치하고 그 곳과 일본의 테니스 사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일도 즐거웠다. 지방에는 야외코트가 많지만 비엔나 등에서는 피부암이나 눈의 상해예방이라는 뜻에서 인도어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었다.

오후 여섯시, 글린칭의 호이리게에서 미리 약속한 N부인과 따님을 만났다. 주인을 만나본 적은 없었지만 온라인 상에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홈페이지도 보고있었기 때문에 초면과 같은 기분이 들지 않았다. 잘츠부르크에서는 길이 어긋났으나 이 곳에서 만날 수 있어 다행스러웠다.

우선 와인으로 건배. 서로 지금까지의 여행이야기를 하기에 바빴다. 내일 와이너리행에 대해 의논하면서 모레 아바드를 두분과 함께 관람하기로 했다. 마침 티켓이 두장 남아있었기에 잘되었다 싶었다.

오후 7시 지나, 여행 그룹과 비엔나 필하모니 단원과의 간담회가 있어 모두들 차례로 모여들었다. 쟈키에 따라놓은 백포도주로 건배. 일본어와 독일어가 난무한다. 이어 서로의 소개. 나는 일본 피씨친구가 부탁한 첼로주자 포그씨부부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부인은 일본인이고, 포그씨도 대단한 일본팬이었다. 담소하는 그룹에 남녀 두명의 뮤지션이 끼어들어 슈트라우스의 곡을 시작하자 한층 흥겨워졌다. 기어히 춤도 시작되어 호이리게의 밤은 시간과는 상관없이 인생을 그 속에 가득 담은 채 깊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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