千年の古都をたずねて.... (つづき)   -   기행문 [紀行文]

昨日步き過ぎたためか, 死んだようにぐっすり眠ったがまだ體がだるい.
思いっきり兩手を伸ばして起きあがった.今日は知人が車を出してくれるというので
樂に方方を廻れそうだ.

雲が重くたれている. どうか雨になりませんようにと祈りつつ, 二條城へ向う.
德川家康の京都別宮だとか. 五つの建物で繫がれている二の丸御殿の內部を見てまわる
ためには靴を脫がねばならなかった. 順路に從ってうす暗い床を步くと何處からともなく
壁畵を說明する陰鬱な聲が流れ出た.
繪は大分色あせていて優れたものかどうが判らず, ただっ廣い部屋に家具らしき物も
ほとんど無いので質素過ぎるように映り, うら寒い. 踏むと鶯の鳴き聲がするという床も,
私の耳にはすり減ってきしむ音に聞こえた. 庭園は日本の情緖がにじむ, 擬った,
きれいな作りだった. 

朱色の丹靑の平安神宮は, 他の神宮と特に變った所も無いので適當に見廻り,
神苑と呼ばれる庭園に向かった. 橋がかかっている回遊式庭園は, 櫻が滿開すれば
大變美しいと聞かれたが, 季節が早いせいか私の目にはたいした情景でもない.
もともと神宮には興味がなく, 勸めてくれたドライバ-の手前, いやとも言えず
ひと通り廻ったわけで, もうこの位で良いだろうと思われるタイミングを計って表へ出た.

春雨が降りはじめた. 晝飯を取るにはは少し早い時間だったので嵐山の方面へ
ドライブすることにした.京都大學の前を通り, 閑寂な道を走り, いくつかの寺を後に
しつつ, 私は雨にぬれた灰色の古都を窓越しに眺める.  
川邊(桂川だったかな?)に構えた店でうなぎ正式を注文した. ちょっと甘過ぎたが,
味がしみこんでおり, すごく美味しい.

山からの歸りに龍安寺へ寄った. 有名な枯山水式石庭を必ず見ようとソウルから
決めていたのだ. 石段の前の花をいっぱいつけた大樹が迎えてくれた.
規模は小さかったが, 池あり, 塔あり, 花壇あり... とにかく完璧な寺だ.
はみ出た寺の緣にかけ, 石庭に向う. 細長い, こじんまりした庭に白土を敷き, 處處に
大小の石が置かれ, その石にこけがはえていた.
それだけだった. 私のような世俗的で單純無知な人間は, 一日中向い合って
にらめっこしたところで、無我之境に到ることはまず無いだろう.
白土の上のほうきの跡が丁寧だし, 長い歲月を支えた, やや低いへいが美事だと思う
のがせきのやま. 目を閉じて庭の石を描きながら宇宙と對話を交してみろと言ったっけ!
だが私は10分も我慢できず腰をあげてしまった. まあ向い合ってみたのは確かだから.... 

最後に金閣寺を訪れた. 京都といえば金閣寺を浮べるほど有名なのは, 池に浮んでいる
ように見える金箔の3層樓閣がまぶしいほど華麗だからか. 約6,600萬平方メ-トルに
至るという鏡湖池を沿って步いていると, 遠くの衣笠山を背景に, 威風も堂堂と
そびえている金閣が目に入るわけだが, なるほど, 間違いなく繪のようにすばらしかった.
ずっと列をなしている群れの中で, 韓國人觀光團が周りにおかまいなく, 高高と
しゃべり合っていた. ほんとに韓國人の聲の大きさには閉口する.

旅館の前まで送ってくれた運轉手に, おかげさまで樂に觀光することが出來ました,
と禮を言い, いくばくかの金を包んで渡した.        -終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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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대한 토막상식 -2-   -   번역 [飜譯]/일한번역 [日韓飜譯]

.홋카이도(北海道)는 왜 현(縣)이 아닐까?
시코쿠(四國)와 큐슈(九州), 혼슈(本州)가 현(縣)과 부(府)로 세분된 것은 1871년 메이지 정부가 실시한 폐번치현(廢藩置縣)의 대 개혁에 의해서이다. 그때까지는 에도시대에 책정된 번(藩)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메이지 정부는 왕정복고, 판적봉환(版籍奉還), 폐번치현으로서 국가의 중앙집권을 꾀했다. 각 지방의 다이묘(大名)가 다스리던 번을 폐지하고 3부 72현으로 정리한 것이다.

그런데 홋카이도는 예로부터 에조(蝦夷)라고 하여, 일본 민족에게 정복당해 쫓겨난 아이누민족이 각지에 부락을 만들어 살고 있었다. 일본인이 이주하기 시작한 것은 무로마치시대 이후로, 에도시대에는 마츠마에(松前)번의 영유지였다. 메이지에 들어서 이주자가 늘어나자 메이지 2년에 개척사를 보내 산업부흥을 위한 개척계획을 도모하였고, 이에 따라 전체를 한덩어리로 묶어 홋카이도라고 개칭했던 것이다. 그 후 1886년에 내각직 내에 홋카이도청을 설치, 1947년에 이르러 비로소 다른 부현과 동격의 지방자치체가 되었다.

이처럼 홋카이도의 성립은 다른 도부현(都府縣)과는 다르기 때문에, 비록 면적은 일본 전체의 5분의 1을 차지하고 있어도 세밀하게 현으로 나누지 않고 하나의 도청에 의해 다스리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토지가 너무 넓어, 14지방으로 분리하여 지청을 두고 있다.

.후지산에는 왜 개울이 없을까?
후지산에는 연간 약 20억 입방미터의 비가 내린다. 이는 도쿄도 수도사용량의 1.5배나 되는 방대한 양이다. 그런데 눈을 뒤집어쓰고 있는 산허리를 아무리 둘러봐도 개울이 눈에 띠지 않는다.

현재의 후지산은 지금으로부터 2만-3만년 전에 출현한 고후지(古富士) 위에 생긴 것으로, 7-8천년 전부터 시작된 분화에 따라 용암이 흘러내리고 그 위에 화산재 화산조각등의 분출물이 쌓이게 되고, 또다시 용암류가 뒤덮은 위에 화산재가 퇴적되는, 말하자면 용암층, 화산분출물층이 겹쳐지면서 점점 성장하여 현재 모습이 된 것이다.

이러한 화산성 흙은 입자가 거칠어서 산허리에 내린 비는 전부 산체(山體) 속으로 스며들게 된다. 지하수로서 약 3천미터 흘러내린 물이 처음으로 지상에 모습을 나타내는 곳이 바로 [백사 폭포(白絲のたき)]와 [음지 폭포(音止のたき)]이다. 폭포 출구가 있는 해발 500 미터 부근이 고후지(古富士)와 신후지(新富士)의 경계지층인데, 고후지 지층으로는 물이 스며들기 힘들기 때문에 단층 부분에서 지하수가 흘러내리게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물은 후지(富士) 5호(湖)로 흘러 들어가기도 하고, 샘물이 되어 각지에서 모습을 들어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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