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과 나누던 토속문화   -   잡문 [雜文]

길모퉁이에 있는 구멍가게를 새로 맡아 하게 되었다면서 주인이 고사떡 한 접시를 들고 찾아왔다. 아직 김이 모락모락 나는 게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돈다. 잘 먹겠다고, 앞으로 많이 이용할 테니 염려마시라고 인사말을 건네고는 가게 주인이 층계를 내려가기가 무섭게 얼른 한귀퉁이를 떼어 입에 넣었다. 간도 딱 맞는 게 참 맛이 있다. 하긴 떡 전문 방앗간에서 맞춰 온 것일테니 간이 안맞으면 오히려 이상하지.... 아이들은 신세대답게 케이크나 빵을 좋아하지 떡 같은 건 입에도 안대니 굳이 남겨 놀 것도 없다 싶어 냉장고에서 김치까지 꺼내놓고 혼자 떡판을 벌이면서 나는 까마득한 옛날, 집에서 고사지내던 어린시절을 회상한다....

내가 어렸을 적엔 해마다 시월 상달이 되면 집집마다 고사를 지내는 일이 중요한 연례행사중의 하나였다. 가을과 함께 맨 처음 다가오는 추석명절을 떠들썩하게 쇠고 나면 차츰 바람이 차가워지고, 그러면 어머니의 부산한 겨울채비가 시작되는데, 그 중 가장 큰 작업이 김장과 땔감 준비였다. 장독대 앞에 가지런히 김장독이 묻히고 뒤꼍에 장작이 그득 쌓이면 어머니는 겨울맞이 마지막 행사인 고사를 지내기 위해 손 없는 날을 받으신다.

고사날 아침, 마당 수돗가에 끔찍하게 많이 담가 논 쌀을 보고 눈쌀을 찌프리던 큰오빠, 그러면 어머니는
"신세 진 이웃에게 골고루 나누려면 이것도 모자란다" 라고 말씀하셨지....
학교가 파하면 늘 남아서 친구들과 공기놀이를 했지만 그날만은 달랐다. 친구들의 유혹을 뿌리치고 한달음에 집으로 들어서면 팥삶는 구수한 내가 코를 벌름거리게 한다.
어머니는 시루 셋에 가득 가득 떡을 안치고, 일 도와주는 간난언니는 막걸리를 사러 달려나가고, 나는 다락에서 북어 쾌를 내려온다. 한옥에 재래식 부엌이니 큰 일을 치를 때마다 광으로 부엌으로 장독대로 수돗가로 정신없이 종종걸음을 쳐야 하지만 간난언니는 평소에 잘 보이지 않던 웃음까지 띄우며 신이 나서 일을 거든다.

해가 지고 땅거미가 밀려오면 드디어 고사가 시작된다. 제일 큰 시루에서 네모반듯하게 떠낸 떡을 쟁반에 담아 방 부엌 광 뒤꼍 장독대 등에 갖다 놓고, 남은 떡은 시루채 대청마루 한가운데에 올려 논 뒤 북어와 막걸리를 곁들인다. 대문밖에는 중시루를, 화장실 앞에는 제일 작은 시루를 갖다놓고 그 곳에도 막걸리와 북어를 얹어놓으면 준비 완료, 드디어 어머니의 치성이 시작되는 것이다. 두손을 모아 크게 절을 몇 번 한 뒤 손을 맞비비면서 귀신들에게 간곡한 부탁을 드리는 어머니, 그저그저하는 소리 외엔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는 웅얼거림이 끝없이 이어지는데, 나지막해도 고저가 있는 애절한 리듬이 어린 나와 동생에겐 색다르고 우수꽝스럽게만 들린다.
약 반시간동안의 치성이 끝나면 막걸리는 어머니의 웅얼웅얼 주문과 함께 대문앞 장독대 마당 등에 뿌려지고, 대청으로 거둬들인 떡을 이제 동네방네에 나눌 차례이다. 베보자기를 덮은 목판을 들고 전찻길 너머까지 가야하는 건 항상 나였다. 이건 ㅇㅇ할머님 댁에, 이건 ㅇㅇ아주머니댁에 헷갈리지 말고 전하라고 엄명이 내리는 것이다.

별이 머리 위로 와르르 쏟아져 내릴 것만 같은 싸늘한 가을 밤길, 갈 때는 긴장되어 무서운 줄도 모르지만 돌아오는 길은 으스스 겁도 나고 춥기까지 해서 나도 모르게 뛰기 시작하면 빈 목판과 접시 부딪치는 달그락소리가 밤의 적막을 가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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隨筆 <鈍馬が山頂へたどり着くまで> 崔浩中著 -序論-   -   번역 [飜譯]/韓日飜譯 [한일번역]

 

この作品は, 著者の自敍傳のようなもので, 御本人より許可を得て飜譯致しま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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序論
私は1930年, 庚午年に生まれた. いわば馬年生まれである. そんなわけかどうか, 私は幼い頃から馬が好きだった. 成長するなかで, 普通の子供と同じく三國志にはまったものだが, 數多くの登場人物よりも, いやに呂布の赤兎馬が氣に入った. 呂布があの馬にまたがって走る姿も惡くはないが, それよりは, 赤兎馬に飛び乘った關羽が風を切りながら疾走する光景を, いつも目に浮べ, 馬鹿のように喜喜としたものだ.

しかしながら, 私は馬年に生まれたとはいえ, どう見ても駿馬ではなかった. 何事にもすばしこくない. かけ足しもかんばしくない. 運動會で3位にでも一度入賞してみるのが夢だったが, ついにその夢は果せなかった. いわば鈍馬であったわけだ.

人生行路においてもそれは同じだった. かろうじて高等考試(國家高試)に合格した事は何よりも倖いなことであったが, 外務部(外務省)に入った後も, 頭角を現わすのはおろか, 昇進も同僚に遲れがちだった. しかし私は氣をもんだり急いたりしなかった. 無理に走ろうとしなかった. 根氣良く步いたらいつかは目的地へたどり着くはずだ, と腹を決めた.

たとえ鈍馬であろうとも私が外交官への道を步こうと決めたのは賢い選擇だったと, 今も思う. 私はただの一度も外交官になったのを悔やまなかった. 外交官が私の適性に合うと信じたからである. 何よりも先ず, 旅行好きな私にとって外交官生活はあつらえ向きの職業である. 私は, 五大洋六大洲のうち訪ずれなかった所はほとんど無い程, 地球をかけ巡った. それも袋マネ-でなく國費を使いながらである.
私は食道樂で酒も相當飮む方で, 食事に招かれたり,又は招いたりするのが一つの效果的な外交手段である事に鑑みると, これも確かに私の性に合う. 世界の樣樣な料理と酒類を私より多く味わった人間が居たら前に出て見ろ, とえばってみたいところだ.

尙, うわべはそう見えないかも知れないが, 私はどちらかというと自慢心が强く, 己惚れがちなタイプと言えなくもない. 外交官とは, 一つの國を代表し, 時には熾烈な, 又時には華麗な國際舞臺で, ありったけの力量を發揮することに依ってこそ國家や民族に喜びと榮光を與えるのだ, ということが私を尊大に構えさせた.

ともかく, 外交官の道が私の適性に合ったからだろうか, 私は鈍馬でありながらも落伍せず, 希望と勇氣を失うこともなく, 一步一步足を前へ運んだ. 場合によっては我に似合わずすばしこいフットワ-クで他人を出し拔いたこともある.

そうこうするうち, 私はついに山頂へ達した. 外務部に足を入れて32年8個月目に外務部長官になったのである. 私がソウル大學校の文理科大學, 政治學科に通っていた頃, 政治學報の創刊號に, 將來の希望は駐UN大使と書いたおぼえがある. 當時は, 大使たるものは, 私には到底手のとどかぬ, はるか雲の上の座と考えたのだが, 今, それよりも一段と高い外交總帥の座に着いたわけだから, 鈍馬としてはすごく運の惠まれた, 至福な馬に違いない.
どのようにして, かの鈍馬が山頂まで上れたのか, その過程をふり返りながら, 思いつくまま綴ってみた. 誰もが肩の凝らない, ゆったりした氣持で讀まれることを期待する次第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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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ザックス reply | del   2003.03.20 06:38 신고
    有炫さん こんにちは
     なかなか興味をそそられる序文ですね。文章も上手いものですね。韓國の人は1番を目指す、と聞きましたが、その通りなんですね。袋マネ&#12540;、面白い&#35379;語ですね。次を樂しみに讀みに行きま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