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m] 靜かに 手を 差し伸べた 時 - 조용히 손을 내밀었을 때   -   번역 [飜譯]/韓日飜譯 [한일번역]

조용히 손을 내밀었을 때                        靜かに 手を 差し伸べた 時
                     이정하                                                         イジョンハ
내가 외로울 때                                     私が  寂しい 時
누가 나에게 손을 내민 것처럼                  誰かが 私に 手を さしのべたように
나 또한 나의 손을 내밀어                        私も また 私の 手を 差し伸べ
누군가의 손을 잡고 싶다                         誰かの 手を 取ってみたい
그 작은 일에서부터                               そんな  ささいな 仕種で
우리의 가슴이 데워진다는 것을                私達の  胸が 溫まるということを
새삼 느껴보고 싶다                                改めて  感じてみたい
그대여                                                 あなた
이제 그만 아파하렴                                もう  苦しむの  やめ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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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에 깃든 정취   -   민속문양 [民俗紋樣]

떡과 한과의 문양
명절이면 어머니들은 몇 날 몇 일을 음식 장만에 손님치레에 파김치가 되어 버리곤 한다. 우리 나라 전통 음식은 모양과 색에 있어서도 더욱 맛깔스럽게 보이도록 신경을 썼으며 그 맛을 이루는 멋은 조화미에도 담겨 있었다.

농경 사회였기 때문에 더욱 쌀을 귀하게 여겼던 우리 민족은 경사스런 날이면 떡을 해 먹었다.
경사와 풍요를 상징하는 떡을 하면 온 동네 이웃들과 나누어 먹곤 했다. 기쁨은 함께 하면 배가 되고 슬픔을 함께 하면 반으로 준다는 말이 있듯이, 많은 사람들과 기쁨을 함께 하고자 한 옛사람들의 푸근한 마음이었던 것이다.
돌떡, 혼례떡, 회갑떡 등 잔칫날 마련한 떡은 반드시 먹어 주어야 복을 주게 된다고 하여 잔칫집 떡을 함께 먹는 것은 경사를 축하해 주는 중요한 일이었다. 우리말에 "반기를 나누어 도르다." 혹은 "반기살이"란 말이 있는데, 잔칫집에서 손님들이 돌아갈 때 목기에 떡을 비롯한 음식을 싸서 보내는 것을 이르는 것으로, 참석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맛을 보게 하는 풍속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떡이 없는 반기살이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떡은 나누어 먹는 음식에서 가장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해 왔다.

  
 

모든 음식이 정성스럽게 만들어져야 좋은 맛을 내는 법이지만, 조상들은 특히 떡에 더 많은 정성을 쏟았기에 좀더 아름답게 모양을 내고자 떡살을 만들어 냈다.
떡살이란 떡에 살을 박는다는 의미이며 이 살은 부챗살이나 우산살처럼 뼈대를 이루는 중심 역할을 하는데, 인간에 비유한다면 생명 혼을 불어넣는다는 것으로서, 떡살 문양은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었다.
시루떡을 조금씩 떼어 내어 "고수레"하며 문간에 던지면 역신이 집에 들어오지 못한다는 풍속에서도 보여지듯이, 복을 함께 나눈다는 의미가 담긴 떡에 길한 것을 상징하는 문양을 박아 넣음으로써 부정을 내쫓고 흉사와 재앙을 예방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떡살을 박는 떡은 주로 절편으로 주술적인 의미가 담긴 여러 가지 문양을 마치 도장을 찍듯 정성스럽게 떡살에 새겨 넣어 만들었다.
절편은 쌀가루를 익혀 만든 흰떡을 쳐서 잘라 낸 떡이라는 뜻이다. 납작하게 반죽된 떡 위에 각양각색의 문양이 새겨진 떡살로 찍어내어 아름다운 모양을 낸다. 뿐만 아니라 절편에 여러 가지 색으로 물을 들여 각색의 예쁜 떡을 만드는데, 인절미와 마찬가지로 쑥을 넣은 쑥절편도 독특한 맛이 난다. 
  

절편은 혼인 때 주로 많이 쓰이며 절편을 둥글게 하여 그 위에 꽃처럼 여러 색을 놓아 찍어 아름답게 장식하기도 한다. 잔칫날이면 대청에 모여 앉아 절편에 참기름을 칠해 가며 떡살로 살박이를 하고는 누가 만들어 찍어낸 문양이 더 곱고 예쁜가를 겨루어 보기도 하였다.

옛날 벼슬아치 집안에서는 정월이면 절편을 만들어 서로 나누어 먹었는데 이는 가문의 떡살 문양을 자랑하기 위함이었다. 이로 인한 은근한 경쟁 심리로 인해 떡살의 문양은 더욱 다양하고 아름다운 모양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떡살의 재료로는 도자기, 나무, 돌 등이 있는데, 그중 나무 떡살은 재질이 단단해야 쉽게 상하지 않고 오래 쓸 수 있어 소나무, 참나무, 대나무, 대추나무, 배나무, 박달나무를 이용하였다. 나무 떡살은 직사각형의 형태로 되어 있어 떡을 눌러 문양을 새기기 쉽도록 손잡이가 양쪽으로 길게 달려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일반적으로 네모난 무늬는 나무로 새겨 만들었고 둥근 무늬는 모양을 빗기 쉬운 사기나 자기로 만들었다. 도자기 떡살의 형태는 원형이 가장 많으며 사각, 칠각, 팔각 등의 형태도 더러 보인다.

떡살의 문양은 어떤 정해진 틀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집집마다 특색 있는 문양을 고안하여 가문의 상징으로 삼았는데, 일단 떡살을 만들어 사용하게 되면 그 집안은 다른 문양으로 바꾸지 않았으며 다른 집안에 빌려주는 일도 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떡살의 문양은 가문의 독창성을 살린 다채로운 문양들이 많았으며 신석기 시대의 빗살무늬에서부터 조선조의 가장 발달된 문양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받아들여졌다.
떡살 문양 중에 가장 많은 것은 기하문으로 선사 시대의 토기나 암각화에서 보여지는 문양과 비슷한 모양으로 나타난다. 기하학 문양은 점, 선, 삼각형, 사각형, 원형을 중심으로 되어 있는데, 원은 태양을, 사각은 땅을 의미하는 것으로써 이 도형은 풍년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은 것이라 볼 수 있다. 삼각형은 여러 번 허물을 벗고 나타나는 매미를 성상화하여 영혼 불멸을, 줄무늬는 장수와 해로의 뜻으로서 고안되었다.

떡살에 주로 새겨졌던 동물문은 물고기, 새, 나비, 벌 등으로 대부분 두 마리를 대칭 시킨 구조로 활동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식물문은 사용 범위가 매우 넓은데, 떡살에는 꽃과 잎을 추상적으로 묘사했고 가장 즐겨 사용했던 것은 국화 문양이었다. 이 밖에도 목단, 매화, 이화, 연꽃, 장미문양이 있다.
또한, 문자문으로는 "복(福)"자를 가장 많이 사용하고, 수(壽), 부(富), 귀(貴), 강(康), 녕(寧), 예(禮), 두 개 이상인 길상문에는 수복, 부귀, 강녕, 수복강녕 등을 새겨 넣었다. 부귀다남(富貴多男)이라는 문자문도 많이 쓰이는 글자였다

  


떡과 함께 한과는 한국 고유의 과자로서 떡 못지 않게 그 모양이 단아하고 아름다웠다. 한과는 곡물 가루에 꿀, 엿, 참기름, 설탕 등을 넣고 반죽하여 꽃모양 등 여러 가지 모양의 판에 박아낸 후 기름에 지지거나 조려서 만든다.
유난히도 꽃을 사랑한 우리 조상은 봄 가을이면 꽃놀이를 즐겼다. 자연을 찾아 자연의 오묘함을 피부로 느끼며 그 자연의 일부로 음식을 만들어 먹음으로써 자연과 하나가 되었던 우리 문화의 멋은 삼월 삼짇날의 진달래 화전과 구월 구일 중양절의 국화전에 잘 나타나 있다.
한국의 꽃놀이는 귀족에서부터 비롯된 것으로 이를 화전 놀이라 부른다.
화전 놀의 즐거움 속에는 음식, 곧 화전이 있다. 봄이 오면 산과 들을 붉게 물들이는 진달래는 약용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그 꽃을 따다가 화전이나 화채, 진달래술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가을이 오면 전통 명절인 중양절을 맞이하여 야외로 단풍놀이를 갔는데 이때 만들어 먹는 것이 국화를 따서 만든 국화전이었다.
화전은 꽃놀이 때 따다가 집으로 가져가 만들기도 했지만 현장에서 직접 만들어 먹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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