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서의 작은 회의....   -   기행문 [紀行文]

*출발전의 설렘
회의가 있는 일주일전부터 카운트다운!
다시한번 비행기티켓을 체크하고(!)여권과 함께 핸드백 속에 잘 간수한다.
일본 여행이 처음은 아닌데도 불안감이 떠나질 않는다.
딸아이는 행사관계로 철야가 계속되고, 출발 전날도 열시가 넘어 돌아왔다.
할 수 없이 짐 싸는 걸 거들어주는데 주책없이 콧노래가 나온다.

*드디어 출발!
9시20분 발 비행기를 타기 위해 새벽 6시에 집을 나서야 하는 이 비극!
사는 곳은 동대문에서도 한참 밖이고,공항은 서쪽 끝이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라고
체념한다.
맛도 없는 기내식을 뒤적거리면서,좀 먹을만한 것을 장만할수는 없나, 혀를 찬다.
11시30분쯤 나리타공항 도착. 스카이라이너를 타고,닛포리에서 내려 야마노테선으로
갈아탔다. 이케부쿠로의 호텔에 짐을 맡기고,다시 신주쿠로 가기 위해 야마노테선에
오른다. 부산하기 이를데 없다.
일본어를 전혀 모르는 딸아이지만,젊은 탓일까 표 사기,갈아타는 곳 찾아내기 등
척척 해내 참으로 믿음직스럽다. 데리고 오길 너무 잘했지!

*회의장은 어드메뇨?
신주쿠역은 그야말로 북새통, 이리저리 헤매다 겨우 니시구치로 빠져나왔다.
지도와 눈씨름하면서 에스텍 빌딩이라는 곳을 찾는데, 좀처럼 눈에 들어오질 않는다.
'저어,에스텍빌딩이 어디 있죠?’손가락질하는 곳은,기막혀라,바로
대각선상에 있었다! 5분 지각이다. 하지만 모두들 반갑게 맞이해 줘 우선 가슴을
쓸어내린다.
여성사회자의 익숙한 사회 솜씨에 탄복하는 가운데 회의는 진행되고,
컴퓨터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채팅이라는 것도 시도해 본다.
옆자리의 여자회원과 간단한 채팅을 하면서 인사를 나눈다. 재밌어라!

*간담회,만남의 장
빌딩 앞 광장에서 기다리는 딸아이를 데리고 간담회가 열리는 '스카이길드'로 향한다.
딸아이까지 데리고 가니 회비를 내야하는데,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엉거주춤하고 있으려니
사회자가 등을 떠밀어 안으로 들어갔다.
이제부터가 큰일, 과연 일본말로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인가... 좋아,입이 떨어지지 않으면
네 하고 아니요만 가지고 버티자, 그렇게 마음을 정했지만 여전히 걱정은 가시지 않는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다정했다. 나보다 연상으로 보이는 분이 와인과 음료수를 날라오고,
여자회원도 요리 접시를 갖다 놔준다. 정말 송구스러웠다.
모두들 일부러 천천히 이야기를 해 줘 나도 용기를 내어 그런대로 말을 할 수 있었고,
그러면서 파티는 무르익어 갔다.
피날레로 부른 '오늘은 이만 안녕'은 왠지 가슴을 찡하게 만든다.
여러분들,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히!

*작은 교류회......?!
이번 모임에 부득이 참석할 수 없었던 부회장과 다음날 만날 약속을 했다.
도쿄에 남아있는 우리 모녀라도 만나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점심 대접을 받게 되었다. 매우 다정하고,온화한 의사 선생님이었다.
나의 떠듬거리는 일본어를 끈기 있게 들어주신다.



*남은 하루를 보람있게!
친지가 승용차를 내주어 요코하마(橫濱) 가마쿠라(鎌倉)로 신나게 달린다.
사쿠라는 거의 진 상태였지만 그래도 구석구석에 즐길 만큼은 남아있었다.
일본도 연휴에는 끔찍이 길이 막힌다. 요코하마 시내로는 들어갈 엄두도 못 내고,
카마쿠라다이부츠(鎌倉大佛)와 하세데라(長谷寺)만 구경했다.
혼자 가마쿠라를 찾았으면 타치하라마사아키(立原正秋)를 생각하면서 이곳저곳
돌아다닐 수 있으련만....
일찌감치 도쿄로 돌아와 약 한시간동안 시내 드라이브를 즐긴다.

*마지막 밤....
갑자기 비가 내려 싸구려 비닐우산을 사 쓰고 이케부쿠로(池袋) 번화가를 헤맨다.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고 싶은데 낯선 곳이니 함부로 들어가기도 그렇고,
같은 길을 몇 번 오간 끝에 무작정 세련된 건물 속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탔다.
3층의 레스토랑은 젊은 커플이 부스마다 차지하고 있었지만
개의치 않고 웨이터를 따라 아담한 부스로 들어갔다.
맥주에 퓨전요리 두 접시 시켜놓고 딸아이와 건배!
그들의 서비스 정신은 투철했다. 우리는 편안한 마음으로 도쿄의 밤을 즐겼다....
(2002년 3월말)

댓글을 달아 주세요

           

일본에 대한 토막상식 -4-   -   번역 [飜譯]/일한번역 [日韓飜譯]

* 경사스런 날에는 왜 "세키한(赤飯)"을 먹을까?

"赤飯"은 글자 그대로 빨간 색을 띤 밥을 말하는 것으로, [세키한] [아카맘마] 혹은 사투리쪼로 [오코맘마]라 부른다.
요즘은 찹쌀에 팥을 두고 팥 삶은 물로 쪄서 빨간 색을 내지만, 옛날에는 "적미(赤米)"라 불리는 붉은 쌀을 사용해서 밥을 지었기 때문에 색이 빨갰다고 한다. 적미는 일본에서 벼농사를 시작할 무렵에 재배하던 매우 원시적인 쌀 품종으로, 원산지는 동남아라 하는데, 현재는 류큐(오키나와)열도와 큐슈.시코쿠 남부지방에만 약간 남아 있을 뿐이다.

이와 같이 적미는 오래된 희귀 품종이었기 때문에 조상을 기리는 날에만 이것으로 밥을 지어 영전에 올리는 습관이 생겼다고 한다. 그런데 점차 적미를 재배하지 않게 되자, 적미 대신 팥으로 색을 내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은 조상을 공양할 때뿐만 아니라 경사스런 날, 특별한 날에도 반드시 세키한을 지어 축하를 하고 있다.
....참고로, 에도시대에는 세키한과 상반되는 뜻으로 흰 찰밥을 장례식에 썼다고 한다.

* 축하연에는 왜 머리와 꼬리가 달린 도미가 나오나?

많은 나라 사람들이 재수를 따지지만, 일본사람 만큼 생활 습관에서까지 재수를 따지는 민족은 그리 흔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단적인 예가 축하 요리로,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거나 말장난 등으로 한층 고마움을 강조한다.

도미는 맛, 색깔, 이름에서 단연 축하 요리의 첫 번째로 꼽히는 생선이다. 생동감 있는 빳빳한 꼬리에 선명한 붉은 색은 축복의 색이며, 이름도 [めでたい의 たい]로 통해, [생선의 왕]이라 불리면서 축하 요리의 챔피언 자리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한편 머리와 꼬리를 붙인 채로 요리하는 것은 잘린 것이나 부서진 것은 재수가 없고, 머리부터 꼬리까지 완전하게 갖추어져 있는, 다시말해 완벽한 형태여야 재수가 좋다는 의미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하찮은 정어리라 할지라도 머리와 꼬리를 붙인 채 요리하는 것은 이런 생각에서 나온 습관의 하나이다.

* 선술집에 노렌(のれん)을 걸어놓는 이유는?

요즘은 선술집의 새끼줄 노렌(繩のれん)이 노렌의 대표격라 할 수 있는데, 에도시대(江戶時代)에는 상점마다 빠짐없이 노렌이라는 것을 걸어놓았다고 한다.
노렌은 손님을 가게 안으로 끌어들이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밝은 대낮에는 노렌 때문에 잘 보이지 않은 가게 안을 들여다보고 싶게 만들고, 밤이 되면 노렌 사이로 보이는 불빛이 손님을 유혹한다는 것이다. 손님 편에서는, 노렌을 헤치고 들어가는 게 문을 여는 것보다 훨씬 저항이 적어, 자기도 모르게 가게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노렌은 이처럼 손님을 끌어들이는 힘, 통과 자재성, 공간을 분할하는 효과등과 함께 그 가게의 심벌 마크로서도 커다란 의의를 지니고 있다.
[노렌이 헐었다]고 하면 연륜이 있는 점포를 가리키는 것이며, 점포의 신용에 대한 상징이 되기도 한다.

* 음식점 앞에 소금을 쌓아 놓는 이유는....?

개점 시간이 가까워진 음식점 앞에 피라미드 모양을 한 한줌의 소금이 쌓여있는 광경을 발견하는 수가 있다. 이것은 중국 고사에서 유래된 것으로, 손님의 발길을 멈추게 하기 위한 일종의 재수 축원 같은 것이다.

그 옛날, 중국의 황제는 수많은 측실을 거느리고 있었다. 스케일이 큰 중국은 한국이나 일본처럼 궁 안에 모든 측실을 모아두는 게 아니라 한사람 한사람에게 저택을 내려, 밤마다 우차(牛車)를 타고 이들 저택을 방문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차의 걸음이 워낙 더딘데다 측실 수도 많아 공평하게 일순을 하려면 상당한 시일이 걸리기 때문에 마음에 들지 않는 측실에게는 자연히 황제의 발길이 뜸해질 수밖에 없었다.  황제의 총애를 잃은 측실은 평생을 외롭고 쓸쓸하게 보내게 되는 만큼 황제를 자기 저택으로 모셔들이기 위해 모두들 필사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 때 한 측실이 묘안을 생각해 냈다.

만약 황제가 자기를 찾지 않는다면, 대신 우차를 끌고 있는 소를 멈추게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시험삼아 소가 제일 좋아하는 소금을 황제가 자기 저택 앞을 지날 때쯤 쌓아놓아 보았다. 그랬더니 아니나 다를까, 소금을 발견한 소는 그것을 핥기 시작, 아무리 끌어도 꿈쩍도 하지 않는 것이다. 황제는 다른 저택으로 가고 싶지만 소가 움직이지 않으면 어쩔 수 없는 일, 체념한 황제는 그 저택으로 들어가게 되고, 그녀의 작전은 대성공을 거둔 셈이다.
그 이후, 그녀는 매일 밤 같은 수법을 써서 황제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았다.

이 유래를 근거로 하여, 손님의 발길을 멈추게 하고 손님을 많이 들게 한다는 의미로 소금을 쌓아놓는 습관이 생겼다고 한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