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번역 "까치"   -   번역 [飜譯]/韓日飜譯 [한일번역]

**  鵲  - 尹五榮
鵲の囀りは懐かしい。綺麗にころがすとか悲しく歌うとかのようなものではなく、技巧無しで軽く素直に鳴くたった二音節の「かあかあ」。最初の「かあ」は高く、二度目の「かあ」は低く続く、單純で簡単なその音程がただただ懐かしい。私は幼い頃から鵲の音が好きだった。今も朝出掛ける時鵲の音を聞くとその日は気分が良い。
反哺之恩を解るとのことで「孝鳥」と呼ばれてきたが、私はそんな事とは関わり無く好きなのだ。離れの前庭にある栗樹上に鵲が来て巣を作ったらそれが吉兆で、その年、安邊府使に榮轉されたとか。書斎南窓前の高い枝に鵲が来て巣を作ったら、文章が大変巧くなり文名を挙げたと言った昔話もあるが、そんな事とは関わり無く鵲の鳴き声は懐かしくて嬉しい。
朝鵲が鳴くと嬉しい手紙を受けるという。この話が最も真しやかに感じられる。何故かと言えば、その音がどことなく懐かしい便りの予告らしく希望的に聞こえる故だ。
私は鵲ばかりでなく鵲の巣もまた好きだ. 高い樹の上に枯れた木枝を集めて粗っぽく絡ませた物が樹とそのまま釣り合い、付けておいた物のようでは無く枯れ枝がそのまま落ちて積ったようだ. そのくせ、さっぱりした味が出ている. 粗っぽく絡ませて置いたその枠がいみじくも雨漏りをさせない. もっぱら月光と風を受けるのみだ.
私はずっと、後に自分の離れを建てるとしたら必ずあの鵲巣のように瀟洒な味が出るように建てたいと思った. 私が卍字窓とか亞字窓を取らずに簡素な用字窓を好む理由もそんな情緖からだ. 燕の巣のような居心地良い家とか鴉の巣のように瀟灑な家でなければならない. 燕の巣は淑やかで上品な家庭婦人が手入れをし続ける住み処であり, 鴉の巣は洒落で風流な詩人が居處する家だ.
鵲の囀りは懐かしい。綺麗に転ばすとか悲しく歌うとか、そのようなものではなく、技巧無しで軽く素直に鳴くたったの二音節「かあかあ」。最初の「かあ」は高く、二度目の「かあ」は低く続く、單純で簡単なその音程がただただ懐かしい。私は幼い頃から鵲の音が好きだった。今も朝出掛ける時鵲の音を聞くとその日は気分が良い。
反哺之恩を解るとのことで「孝鳥」と呼ばれてきたが、私はそんなこととは関わり無く好きなのだ。離れの前庭にある栗樹上に巣を作ったらそれが吉兆で、その年、安邊府使に榮轉されたとか。書齋南窓前の高い枝に鵲が来て巣を作ったら、文章が大変巧くなり、文名を挙げたと言った昔話もあるが、そんな事とは関わり無く鵲の鳴き声は懐かしくて嬉しい。
朝鵲が鳴くと嬉しい手紙を受けるという。この話が最も真しやかに感じられる。何故かと言えば、その音がどことなく懐かしい便りの予告如く希望的に聞こえる故だ。
私は鵲ばかりでなく鵲の巣もまた好きだ. 高い樹の上に枯れた木の枝を集めて粗っぽく絡ませた物が樹とそのまま釣り合って、付けておいた物のようではなく、枯れ枝がそのまま落ちて積ったようだ. そのくせさっぱりした味が出ている. 粗っぽく絡ませて置いたその枠がいみじくも雨漏りをさせない. もっぱら月光と風を受けるのみだ.
私はいつも、後に自分の離れを建てるとしたら必ずあの鵲巣のように瀟洒な味が出るように建てたかった. 私が卍字窓とか亞字窓を取らずに簡素な用字窓を好む理由もそんな情緖からだ. 燕の巣のような居心地良い家とか鴉の巣のように瀟灑な家でなければならない. 燕の巣は淑やかで端雅な家庭婦人が手入れをし続け住み処であり, 鴉の巣は洒落で風流なる詩人が棲む家だ.
鳩舎はどれほどきれいに飾っても舎であり家ではない. 他の鳥の巣は鳥の安息處, 鳥のねぐら、との言葉を使いながら、ただ燕の巣や鴉の巣のみ巣と言うのを見れば韓国人の家に対する観念や情緖を知ることが出来る. 韓国建築の情緖を知ろうとする建築家等は一度考えて見るべき問題のようだ. 最近高層建物, 特にアパートのような建物を見ると、どれほど高級に建てたと言えどもそれは「人間莊」であり、「家」では無い.
今は朝八時, 私は貞陵林の中に座を見つけて座っている. 久しぶりに鵲の囀りをを聴いた. 樹木の葉は朝の光を受けてとりわけ青々しい. 木の葉の間で青空が冷たくて清々しい. この間雨が多く降った關係で水音も結構大きく聞こえる. 私はいつだったか曙に此処へ来た事がある. 保健運動をやりに来た人, 藥水を飲みに来た人等で立て込むので、再び訪れて見ようとの考えは消えてしまった. だが今来て見ると人間は一人も見えず、うっとりと森の中が限りなく静かだ。今が一番静かな時間なのだ. 鵲等が私の前に来てピョンピョン跳ね回る。 いわば鵲の歩き方だ. 可愛らしい. 手で触ってもじっとしているかも知れない. そのように、人が側に座っていることには何ら関心とか疑懼心無しで、私の側でピョンピョン跳ねつつ遊んでいる,
私はかって何処かで見たことのある民畵一つを思う. 一人の老翁が樹木の下で白い腹を出して昼寝をしていて、その腹の上で鵲一羽が突っ立っていた. 私は物珍しいその想像画で喜びを感じたものだ. 民画とは子供自由畵のように無邪気で奇拔なところがある故あのような面白い画も描けると考えた. しかし今その鵲を眺めながら、それは揮発な像想では無く事実だったのを悟った.
以前李芝峯が、鄭浩陰の「山と水が風に叫び江水は荒く立ち騒ぐが、月は侘しく映っている」との詩를を見て「江水あ荒々しくたつが、月が侘しい」とは、実景にそぐわないと貶したていた. それもそうだと言えるのが、月が静やかで明るい夜中は、波がささやかなのが普通だ. しかし金栢谷が黃江駅で眠っていて、早瀬の音が激し過ぎ扉を開けてみると月が寂しく掛っていた. それで始めてその謳が実景をえがいた名句であることを知ったとの「詩画」がある. 私もその民画が実景인であることを知らずに、奇想とのみ感じたものだ.
その太古然とした風景の民画一幅が再び目の前にはっきり浮き上がる. 樹の下で白い腹を出し横になって眠る老翁, その腹の上に立つ鵲日一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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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치 - 윤오영
까치 소리는 반갑다. 아름답게 굴린다거나 구슬프게 노래한다거나 그런 것이 아니고 기교 없이 가볍고 솔직하게 짖는 단 두 음절 '깍 깍'. 첫 '깍'은 높고 둘째 '깍'은 얕게 계속되는 단순하고 간단한 그 음정(音程)이 그저 반갑다. 나는 어려서부터 까치 소리를 좋아했다. 지금도 아침에 문을 나설 때 까치 소리를 들으면 그 날은 기분이 좋다.
반포지은(反哺之恩)을 안다고 해서(孝鳥)라 일러 왔지만 나는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좋다. 사랑 앞마당 밤나무 위에 까치가 와서 집을 짓더니 그것이 길조(吉兆)라서 그 해에 안변 부사(安邊府使)로 영전(榮轉)이 되었다던가, 서재(書齋) 남창 앞 높은 나뭇가지에 까치가 와서 집을 짓더니 글 재주가 크게 늘어서 문명(文名)을 날렸다던가 하는 옛 이야기도 있지만, 그런 것과 상관없이 까치 소리는 반갑고 기쁘다.
아침 까치가 짖으면 반가운 편지가 온다고 한다. 이 말이 가장 그럴싸하게 느껴진다. 왜냐하면 그 소리가 어딘가 모르게 반가운 소식의 예고같이 희망적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나는 까치뿐이 아니라 까치집을 또 좋아한다. 높은 나무 위에 마른 나뭇가지를 모아다가 엉성하게 얽어 논 것이, 나무에 그대로 어울려서 덧붙여 논 것 같지가 않고 나무 삭정이가 그대로 떨어져서 쌓인 것 같다. 그러면서도 소쇄한 맛이 난다. 엉성하게 얽어 논 그 어리가 용하게도 비가 아니 샌다. 오직 달빛과 바람을 받을 뿐이다.
나는 항상 이담에 내 사랑채를 짓는다면 꼭 저 까치집같이 소쇄한 맛이 나도록 짓고 싶었다. 내가 완자창(卍字窓)이나 아차창(亞字窓)을 취하지 않고 간소한 용자창(用字窓)을 좋아하는 이유도 그런 정서에 서다. 제비집같이 아늑한 집이 아니면 까치집같이 소쇄한 집이라야 한다. 제비집은 얌전하고 단아한 가정 부인이 매만져 나가는 살림집이요, 까치집은 쇄락하고 풍류스러운 시인이 거처하는 집이다.
비둘기장은 아무리 색스럽게 꾸며도 장이지 집이 아니다. 다른 새집은 새 보금자리, 새 둥지, 이런 말을 쓰면서 오직 제비집 까치집만 집이라 하는 것을 보면, 한국 사람의 집에 대한 관념이나 정서를 알 수가 있다. 한국 건축의 정서를 알려는 건축가들은 한 번 생각해 봄 직한 문제인 듯하다. 요새 고층 건물, 특히 아파트 같은 건물들을 보면 아무리 고급으로 지었다 해도 그것은 '사람장'이지 '집'은 아니다.
지금은 아침 여덟 시, 나는 정릉 안 숲 속에 자리잡고 앉아 있다. 오래간만에 까치 소리를 들었다. 나뭇잎들은 아침 햇빛을 받아 유난히 곱게 푸르다. 나뭇잎 사이사이로 파란 하늘이 차갑게 맑다. 그간 비가 많이 왔던 관계로 물 소리도 제법 크게 들려 온다. 나는 어느 날 이른 새벽에 여길 와 본 적이 있었다. 보건 운동을 하러 온 사람, 약물을 먹으러 온 사람들로 붐비어 다시 오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와보니 사람은 아무도 없고 그윽한 숲 속이 한없이 고요하다. 지금이 제일 고요한 시간이다. 까치들이 내 앞에 와서 깡충깡충 뛰어다닌다. 이른바 까치 걸음이다. 귀엽다. 손으로 만져도 가만히 있을 것만 같다. 그렇게 사람이 옆에 앉아 있다는 데는 아무 관심이나 의구심도 없이 내옆에서 깡충깡충 뛰놀고 있다.
나는 일찍이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민화(民畵) 하나를 생각한다. 한 노옹(老翁)이 나무 밑에서 허연 배를 내놓고 낮잠을 자는데, 그 배위에 까치 한 마리가 우뚝 서 있었다. 나는 신기한 그 상상화에 기쁨을 느꼈다. 민화란 어린 아이의 자유화(自由畵)같이 천진하고 기발한 데가 있어서 저런 재미있는 그림도 그려진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저 까치들을 보고 그것은 기발한 상상이 아니요, 사실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전에 이지봉(李芝峯)이 정호음(鄭浩陰)의 '산과 물이 바람에 소릴치며, 강물은 거세게 울먹이는데, 달은 외로이 비쳐 있다.'는 시를 보고 '강물이 거세게 이는 데 달이 외롭게'란 실경(實景)에 맞지 않는다고 폄(貶)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달이 고요히 밝은 밤중에는 물결이 잔잔한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김백곡(金栢谷)이 황강역(黃江驛)에서 자다가 여울 소리가 하도 거세기에 문을 열고 보니 달이 외롭게 걸려 있었다. 그래서 비로소 그 구가 실경을 그린 명구(名句)인 것을 알았다는 시화(詩畵)가 있다. 나도 그 민화가 실경인 것은 모르고 기상(奇想)으로만 여겼던 것이다.
그 태고연(太古然)한 풍경의 민화 한 폭이 다시금 눈앞에 뚜렷이 떠오른다. 나무 밑에서 허연 배를 내놓고 누워서 잠자는 노옹(老翁), 그 배 위에 서 있는 까치 한 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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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봄내 reply | del   2018.02.09 19:33 신고
    유난한 맹추위가 기승을 부리며 떠나가지 않고 있는 이 겨울..
    어찌 지내시나 기웃거리다가..
    반가운 까치를 만나서 다시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남은 겨울 잘 보내시고 꽃피는 봄날에 뵈올 기회가 나오기를 고대합니다.
    • yoohyun del    2018.02.10 09:32 신고
      봄내님, 반갑습니다. 새해들어 벌써 한달이 넘었는데
      아직도 추위가 기승을 부리네요. 그래도 봄내님은 젊으니까
      건강하게 지내고 있겠지요? 난 집안에만 틀어박혀서 컴하고 종일 논답니다^^;
      어서어서 추위가 가서 봄내님과 만나면 좋겠네요. 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