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단편소설 한토막 번역   -   번역 [飜譯]/일한번역 [日韓飜譯]

 

무레요오꼬(群ようこ)의 「지갑의 중얼거림(財布のつぶやき)」 중에서 

노후계획 : 무레요오꼬
젊었을 때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노후의 경제에 대해 50세 넘어서야 겨우 생각하게 되었다. 이미 늦은 감도 있지만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우선순위 가운데 지금까지 노후는 아래쪽에 랭킹 되어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노후엔 어떻게 될는지 모르겠네”
하면서 한숨 섞어 중얼거리면, 나보다 나이가 아래인 사람들은
“무레씨는 걱정 없음으로 정해져있지 않아요” 라고 한다.
걱정 없어 정해져있지 않으니까 한숨이 나오는 건데,
“왜 그렇게 생각해?” 라고 물어도
“걱정 없음으로 정해져있지 않아요”를 되풀이 한다. 이야기를 들으니, 아무튼 내가 돈을 많이 저금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하긴,
“이 사람, 괜찮을까 몰라” 라고 생각해도, 마주 보고서는
“당신, 정말은 불안하겠죠” 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들의 본심이 어떻든 현재 순수하게 내 저금이라고 불리는 건 없다. 통장에는 잔고가 있지만, 그건 60세 가까이까지다. 연간 400만엥이나 지불하고 있는 친정집의 대부와 세금 때문으로, 지금부터 반제하지 않으면 안 될 빚을 빼면 몇천만엥이나 마이너스인 것이다.
“집은 재산이니까 괜찮지 않아요”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난 자산이라는 생각과는 왠지 익숙해지지 않는다. 애당초 토지나 가옥을 자산이라고 하는 근성이 마음에 안 든다. 광대한 국토라면 모를까, 이런 좁아터진 장소에서 땅이 필요하다느니 어쩌니 하면서 떠들기 때문에, 다툼이 일어나는 것이다. 나의 경우 물려줄 아이도 없고, 자산의 대표격인 토지가옥은 소유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해왔는데, 분수에 맞지 않는 집을 구입한 어머니와 남동생 덕에 나의 인생설계는 멋지게 흐트러져버렸다.
나의 노후는 론이라는 차용금을 반제하는 시점부터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도대체 얼마가 필요한가 계산해보았다. 
“60세부터 85세까지 살아간다고 치고, 25년간 한 달 생활비가 20만엥과...”
계산기에 표시된 금액을 보고 놀랐다. 세상에 6천만엥이나 필요한 것이다.
내가 이직 20대일 때, 나의 은인이라고도 할 수 있는 두 바퀴 정도 연상의 편집자 분이
“노후에는 말이야 집이 있어도 한사람 5천만엥 정도가 필요하기 때문에 잘 기억해두어야 해” 라고 했다. 아직 젊었던 나는
“어머, 그렇군요!”
라고 말하면서도, 진지하게 듣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그 문제는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우선순위의 128번째 정도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것이 나이를 먹을수록 서서히 순위가 올라 문득 정신이 드니 베스트 텐 권내에 들어있었던 것이다.
그렇긴 해도 어디를 어떻게 하면 그런 돈이 나오는지 예상도 할 수 없다. 어떤 책에 쓰여 있었는지 잊어버렸는데, 복권에 당첨되는 확률보다 교통사고를 당하는 확률 쪽이 몇 백배나 높다는 것이다.
“와아! 당첨됐다!” 하는 것이 복권이 아니고 자동차가 현실인 것이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제비 운이 나쁜 나는 점점 제비뽑기에는 기대를 할 수 없게 되었다. 되도록 빨리 은퇴하고 싶다고 해서 노후의 자금 때문에 아등바등 일할 기분도 안 들고, 어느 쪽이든 간에 좀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가 생겼다.
난 노후에 여자 친구 둘을 포함한 세명이 호조회(互助會)라 칭하면서 연립주택에서 살자고 정했는데 거주할 지역이 일치하지 않는다. 나 한사람이 도쿄를 고집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쿄 이외에서 산 적이 없고, 도쿄에서 살고 있으면 노후도 자극을 받아 살 수 있을 것 아닌가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생각이 바뀌었다.
‘이젠 도쿄에서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록뽕기힐즈나 오모테산도(表參道)힐즈에 희희낙락하면서 들락거리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도저히 익숙해질 수 없는 걸 느낀다. 확실히 나도 한 때는 브랜드용품이라던가 보석 장식품을 샀다. 기모노에 관해서는 돈 아까운줄 모르는 소비를 했다. 직장여성으로서는 도저히 경험할 수 없는 쇼핑을 했지만 이제는 상관없다. 그저 느긋하게 살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듣는 이야기로는 앞으로 시내에 몇 십동의 고층 빌딩과 맨션이 세워진다고 한다. 소비의 도시, 또한 지진이 많은 토지에, 도쿄만으로 부터의 자연풍 흐름을 바꿔버리는 고층빌딩을 짓고도 아무렇지 않은 신경이 이해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반대운동에 참가할 마음도 없다. 조용한 곳에서 조용히 생활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록퐁기힐즈도 오모테산도힐즈도 고층빌딩도 우리집 근처에 세워진 건 아니지만, 건물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움츠러든다. 자극을 받는다고 해도, 자주 영화나 연극을 보는 것도 아니고, 도쿄에 살고 있으면 나에게 있어서는 마이너스의 자극만을 받게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친구들은 내가 도쿄가 아니면 싫다고 했기 때문에, 집구하기를 보류하고 있긴 했었는데,
[나이를 먹어도 도쿄에서 살고 싶다고 했지만, 이제 됐어] 라고 선언하자,
[그래, 그런 기분이 됐구나. 역시 그렇지 응] 하고 기뻐하면서 집구하기를 시작했다. 노후의 주거는 그녀에게 맡겼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구체적인 이미지가 몇 개인가 있어 그것에 걸맞는 지역을 겨냥하고 있는 것 같은데, 자급자족만으로는 있을 수 없다. 세명 모두 흙 만지기를 무척 싫어하는 것이다. 나는 그녀가 결정한 일들에 따라 그곳에 산다. 어디서 살던 간에 도쿄에 있는 것보다는 여러 면에서 마음 편할 것이다.
거기서 또다시 나온 것이 전자계산기다. 노후의 문제를 생각하는 것이 전자계산기 한쪽 손이라는 게 서글프다. 낙향을 하면 전체적으로 경비는 절감될 것이다. 나 한사람과 고양이 한 마리가 사는 거니 넓은 집이 아니라도 좋다. 그렇지 않아도 청소를 싫어하니까, 조금만 하면 끝나는 정도의 넓이로 충분하다. 그러려면 짐을 줄이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아직 체력이 있는 지금 부지런히 물건을 줄이고 있다. 젊은 시절에 구매한 기모노는 초등학생 여자아이 두 명의 어머니로 치수가 나하고 딱 맞고, 더욱이 딸들도 기모노를 매우 좋아한다는 여성에게 주기로 했다. 책은 도서관의 교환 코너, 잡화는 바자, 큰 물건은 업자에게 부탁하여 처분하고 있는데도 물건이 줄지를 않는다. 버리는데도 체력과 돈이 들어 큰일이다. 자신에 대한 상이라던가 스트레스 발산이라던가 이유를 붙여 필요하지 않은 것까지 구매하고 있지나 않았는지. 이 세상의 경제유통에 공헌하고, 그래서 순간적으로는 기뿐 마음이었던 건 거짓이 아니지만, 소유하고 있는 것에 따라 기쁨이 지속되고 있는 건 얼마 없다. 자신은 어디가 잘못되어 있었는지 반성하고 있다.
노후를 함께 사는 호조회(互助會) 친구들도 대량으로 구두를 처분했다. 현관에 멋진 구두가 죽 늘어서있는 걸 보고,
[이 집에는 몇 마리나 지네가 있나] 라는 등 놀려대고 있었는데, 그녀도 소유하는 것에 지쳐있었다. 또 한사람의 친구는 대량의 양복을 처분했는데,
[버려도 버려도 여기저기서 솟아 나온다고] 하면서 늘어져있었다.
비디오나 DVD도 대량으로 갖고 있어, 체력이 있는 동안에 어떻게는 하지 않으면 이사도 제대로 못하겠다고 초조해하고 있다. 그와 함께 나는 어디에서 살아도 좋도록, 먹을 수 있는 풀 종류라도 공부할까 생각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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