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随筆] 調和 - 朴景利 : 조화 - 박경리   -   번역 [飜譯]/韓日飜譯 [한일번역]

                                                       

 調和  -  朴景利
どんな色が好きか、どの花を愛するか、と訊けばすぐ答えられないだろう。尚、どの季節が印象的かと訊いても同じく考えてみると云うだろうし、ついにはよく解らないとの返事が出そうに思われる。人の場合も同じであろう。どのような性格が魅力的で、どんな顔に興味を感じるのかもよく解らない。だからと云って自然や人間共の前で窓を閉め、私の心が荒地の中に埋められてしまったのではない。ただ, とある一つづつを選びこれが好いあれが好いと云いつつ急きこむのが若干歳を取ってしまったようには思える.

そもそもどんな花も又は季節も関わり無く、とある調和を成した中でこそ真の美しさを携えているのではなかろうか。かような調和は、明確に具体化して見られない一種の夢でもある。感じる中で靄のように押し寄せて来る幻想でもある。それでも時々精神と現象が一致される循環我等は美の價値を認識する。それは決して固定された観念ではないはずだ。

私が作品を構想する時も、登場人物を設定する中で先に捕捉するのは人物の雰圍氣である。その雰囲気に従って顔やしぐさや性格を移してみるのだ。全体の雰囲気を纏めた後にポプラを置いたり銀杏の樹を置いたり、又は川辺を用意してみる。

作品に対するインスピレーションはどこまでも雰圍氣を掴むことで、一つ一つを移す際にはすでに設計士の如く私は美意識に先立ちほぼ事務的になる。対人関係でもそうだ。男女を問わず容貌や性格に先立って現れるのは彼等が携えている雰圍氣である。その雰圍氣は実に神秘的な作用を果たすのだ。それこそ調和を成す、とある現象を語ってくれるのだ。

自然の中には花も数えきれないほど多い種類があり、同じ花と云えどもその姿が同様でないばかりか、場所や時期に依って様々色々だと云えよう。色彩は、人間等が便利上数個に分類して名を付けているが、名を付けられない表現できない多くの色があり、また使用される方法とか場所・時期に依ってその感覺度が異なるのだ。季節もそうだ。悠久なる歴史の中で、年度を決めて四季で区分し、月日を分け、また時間に分けるのだが、一瞬一瞬は決して同じ瞬間では無いはずだ。 人間の顔が同じではないように、宇宙の星が同様でないように、季節と云う槪念の中で時間を完全に同じく取り入れる事は不可能なはずだ。森羅萬象がすべてそうである。

このような事を考えると無限の中でどうすることも出来ない個体, その数えきれないほど多い、しかしながら決して同一は不可能な時間と現狀と事物の前で、私はそら恐ろしい神秘を感ずる。このような時間と空間をじっと考えていれば、無限の秩序と力の前で私の小さな頭は割れてしまいそうになる。しかしこれは永遠な刑罰であると同時に歡喜でもあるのだ。永遠の個体(孤独)共の起立の中をさ迷う我等は、調和(眞理や愛情)を成す可能性を持っているからだ。

人間一人が携えている雰圍気と容貌や性格ではなくて、まことにその調和の中へ染み込む靄のようなものである。

조화(調和) - 박경리(朴景利)
무슨 빛깔을 좋아하느냐, 어떤 꽃을 사랑하느냐 하고 묻는다면 얼핏 대답할 수 없을 것이다. 그와 같이 어느 계절이 인상적이냐고 한 대도 역시 생각해 보아야겠다고 할 것이며 종내는 잘 모르겠노라는 대답이 될 성싶다. 사람의 경우만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어떤 성격이 매력적이며 어떠한 얼굴에 흥미를 느끼는지 잘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서 자연과 인간들 앞에서 창문을 닫아 버리고 내 마음이 황무지 속에 묻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어떠한 하나하나를 추려 내어 이것이 좋다, 저것이 좋다 하며 서둘러 보기에는 좀 나이 들어 버린 것 같기는 하다.

무릇 어떤 꽃이든 빛깔이든 혹은 계절이든 간에 어느 조화를 이룬 속에서만이 참된 아름다움이 있지 않을까. 그러한 조화는 명확하게 구체화시켜 볼 수 없는 일종의 꿈이기도 하다. 느낌 속에 안개처럼 몰려오는 환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때때로 정신과 현상이 일치되는 순간 우리는 미(美)의 가치를 인식하는 일이 있다. 그것은 결코 고정된 관념은 아닌 것이다.

내가 작품을 구상할 때도 등장 인물을 설정하는 데 있어서 먼저 포착하는 것은 인물의 분위기이다. 그 분위기에 따라 얼굴이나 몸짓이나 성격을 옮겨 보는 것이다. 전체의 분위기를 잡은 뒤에 포플러를 놓거나 은행나무를 놓거나 구름 혹은 강변을 마련해 본다.

작품에 대한 인스피레이션은 어디까지나 분위기를 잡는 것이며 하나하나를 옮겨 놓을 때는 벌써 나는 설계사처럼 미의식에 앞서 거의 사무적이다. 대인 관계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남녀를 막론하고 용모나 성격에 앞서 오는 것은 그들이 지닌 분위기이다. 그 분위기는 참말로 신비로운 작용을 하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조화를 이룬 어느 현상을 말하여 주는 것이다.

자연 속에는 꽃도 헤일 수 없이 많은 종류가 있고 같은 꽃이라 할지라도 그 자태가 같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장소와 시기에 따라 각양각태라 하겠다. 색채는 인간들이 편리상 몇 가지로 분류하여 명칭하고 있지만 역시 꽃과 마찬가지로 명칭해 볼 수 없는, 표현해 볼 수 없는 많은 색채가 있으며 또한 사용되는 방법이나 장소·시기에 따라 그 감각도(感覺度)가 달라지는 것이다. 계절도 그러하다. 유구한 역사 속에서 해를 획하고 4계(四季)로 구분 짓고 달과 날을 가르고 또한 시간으로 나누었지만, 한 순간 순간은 결코 동일한 순간일 수는 없을 것이다. 사람의 얼굴이 같을 수 없듯이, 우주의 별들이 같을 수 없듯이, 계절이라는 개념 속에 시간을 완전히 같은 것으로 잡아넣을 수는 없을 것이다. 삼라만상이 다 그러하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무한한 속에 어쩔 수 없는 개체, 그 수없이 많은, 그러면서도 결코 동일할 수 없는 시간과 현상과 사물 앞에서 나는 무서운 신비를 느낀다. 이러한 시간과 공간을 끝내 생각하다간 무한한 질서와 힘 앞에 내 작은 머리통은 뻐개지고 말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영원한 형벌인 동시에 환희이기도 하다. 영원한 개체(고독)들의 기립 속을 헤매며 우리는 조화(진리나 애정)를 이룰 가능을 갖고 있는 때문이다.

한 인간이 지닌 분위기도 용모나 성격이 아니며, 실로 그 조화 속에서 배어지는 안개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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