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村上春樹)의 21일간 터키 일주 (8)   -   번역 [飜譯]/일한번역 [日韓飜譯]

[호바]

트라브존 바로 앞 해안에서 이란인 일가와 알게 되었다. 두 쌍의 부부가 두 대의 차로 여행하고 있었다. 작은 아이들도 있는데, 여자 아이는 붙임성 있고 예뻤다. 차는 양쪽 다 상당히 오래된 것으로 몸통이 울퉁불퉁했다. 번호판에 테헤란이라고 쓰여 있었다. 테헤란에서 용케 여기까지 왔군, 감탄한다. 머리가 조금 더 벗겨진 남자가 자동차 몸통의 욱으러진 곳을 가리키면서, 이거 이스탄불에서 당한 거요, 라고 변명 하듯 말한다. 당신도 주의하는 게 좋을거요. 터키인들의 운전 매너는 최악이니까. 이스탄불 거리에서 누군가의 차에 부딪혀서 그걸 고발하려고 경찰서에 갔지요. 그런데 경찰서 앞에 세워둔 사이 또다시 반대쪽을 당하고 말았소. 봐요, 여기요, 너무 하지 않소? 정말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되오. 터키에 온건 처음이요? 난 비지니스맨이기 때문에 터키에는 1년의 절반 정도 있다오, 일 때문에. 지금은 휴가라서 이처럼 다 함께 돌고 있지요. 에게해요? 그쪽은 안가요. 물가는 비싸고 붐비고요. 흑해는 좋소. 아무튼 싸고 조용해서 느긋하게 지낼 수 있으니까. 지금부터 어디로 가시오? 반 호? 그렇다면 이란까지 오시지요. 좋은 곳이라오. 전쟁? 끝났소. 이제 평화롭다오. 패스포드 없이도 간단히 입국할 수 있고 (이건 거짓말이었다). 좋은 곳이라오.

그리고 우린 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다음날 트라브존 거리를 산책하다 또 그들과 마주쳤다.

당신들 어느 호텔에 묵고 있소? 방값 얼마지요? , 그건 비싸군. 우린 스위트 빌렸소. 1리라였소 (확실히 우리의 반액이었다). , 우리들은 매니저하고 개인적으로 친해 그 덕도 있겠지만 (그렇다면 할 수 없지). 아무튼 좋은 여행을 하시오. (고맙습니다)

 

트라브존에서 소련 국경까지는 여태까지에 비해 상당히 길이 좋아졌다. 이는 소련국경에 부대를 신속하게 보내기 위한 배려가 아닌가 추측된다. 실제로 이 길을 왕래하는 지프나 군인 수송차의 모습을 여러번 보았다.

도로를 따라 군데군데 해수욕에 적합한 해안이 있다. 그런 곳에 차를 세우고 몇 번 헤엄을 쳤다. 수도가 있으면 그곳에서 냉국수를 삶아 먹기도 했다. 흑해 연안에서 국수를 먹는 것도 매우 정취가 있다. 생각 하건대 냉국수라는 건 어딘지 모르게 기묘한 음식이다. 어디서 먹어도 일본 이외의 어디서 먹어도 라는 뜻인데 참 멀리도 왔구나, 하는 기분이 드니 말이다.

흑해는 거의 파도가 일지 않기 때문에 참으로 헤엄치기 쉽다. 마치 아침 풀장을 혼자 대절하여 헤엄치고 있는듯한 기분이다. 물도 깨끗해서 기분 좋았다. 물은 눈으로 보는 것 보다 훨씬 따뜻했다.

 

트라브존에서 호바 사이의 지역을 [터키의 샹그리라]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해안을 따른 도로에서 한 발짝 산 가운데로 들어서면 그곳은 촉촉한 안개 속이다. 봉우리에는 구름도 걸려 있고, 수림이 우거져있다. 아름다운 계류에 돌로 만든 다리가 걸려 있다. 작은 마을의 집들은 나무와 벽돌로 만들어져 있었다.

이 근방은 이아슨이 이끄는 아르고인들이 황금의 양을 구하려고 찾아왔다고 해서 유명해진, 코르키스왕국이 있던 토지다. 이아슨은 이곳에서 왕녀 메디아의 눈에 들어, 그녀의 인도로 양을 손에 넣고 무사히 그리스로 귀환한다. 그러나 비극 [왕녀 메디아]를 통해 아는 바와 같이 이아슨은 후에 영달을 위해 메디아를 배반하고 다른 여인에게로 간다. 나라를 버리고, 남편에게도 버림을 받은 메디아는 이국땅에서 비통한 최후를 마치게 되는 것이다.

 

이곳에는 코르키스왕국의 후예라고도 할 수 있는 라즈족 사람들이 살고 있다. 라즈족은 금발에 눈은 푸르고, 독특한 풍속습관을 유지하고 있다. 라즈족 사람들은, 책에 따르자면 [자립심이 강하고 강인한 스타일이며, 드라이한 유모어 감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터키인 중에서도 특히 이채를 띠고 있다. 또한 그들은 고향을 떠나야 성공한다는 미디어다운 성향을 지니고 있어, 터키 부동산업자의 대부분은 라즈인들이다. 또한 그들은 터키의 제빵업계를 한손에 쥐고 있고, 레스토랑 경영 분야에서도 활약하고 있다].

부동산업자와 빵집의 배합도 상당히 유니크하고 재미있다. 틀림없이 법사(法事)가 있으면 빵집과 부동산업자만이 그 자리에 모여들 것이다. 어쨌거나 그토록 맛있는 터키빵을 만들고 있는 만큼 틀림없이 뛰어난 인종이지 않을까 나는 추정한다.

이곳 라브인이 있다는 산중을 우린 그다지 열심히 탐색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조금 해안에서 떨어져 산으로 들어서니 [샹그리라]라고 까지는 할 수 없어도 마치 알프스에 온듯한 광경에 가끔씩 마주쳤다. 푸름과 시냇물이 많았고, 집 모양이 전혀 터키 같지 않았던 것이다. 맞배지붕에, 통나무를 사용한 산속 오두막 풍으로 되어 있었다. 이만큼 풍부하게 재목을 사용한 집은 터키에는 드믈다.

이토록 비가 많은 기후가 생산에 적합하기 때문인지 이 근방은 홍차의 산지로서도 유명했다. 터키에서의 홍차 생산은 그다지 긴 역사를 자랑하고 있지는 않다. 홍차를 터키에서 생산하기 시작한 건 19세기의 일이다. 하지만 현재 홍차는 커피를 대신하여 터키인의 국민적 음료가 되어버렸다. 커피 값이 세계적으로 비싸졌다는 게 전환의 커다란 이유였다. 아무튼 터키인이 차이하네에 둘러앉아 세상 이야기나 노름을 하면서 아침부터 밤까지 맛있는 것처럼 마시고 있는 차이의 대부분은 이 지역에서 생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동네에는 홍차공장이 있어 커다란 굴뚝에서 뭉게뭉게 검은 연기를 쏟아내고 있었다. 나는 홍차공장에 굴뚝이 있다는 걸 그때까지 전혀 알지 못했다. 도대체 홍차라는 건 어떻게 만드는 것인가. 수수께끼다. 홍차공장의 비밀.

 

이 근방의 여인들은 모두 숄 같기도 하고 스카프 같기도 한 헝겊을 머리에 감고 있었다. 큰 거리 시장에 가면 아마도 농가에서 야채를 팔러 온 듯한 여인들이 모두 이런 숄을 뒤집어 쓰고 땅바닥에 앉아있다. 80세 정도의 할머니로부터 젊은 아낙 같이 보이는, 다양한 여성들이 다. 숄에는 무지의 흰 거즈와, 무늬가 든 것 두 종류가 있다. 무늬로 된 것에도 꽃무늬와 같은 화려한 것에서부터 줄이 들어간 수수한 것 까지 다양하다. 여기에 어떤 규정이 있는지, 아니면 개인의 선호로 고른 것인지 난 알 수 없다. 두르는 모양에도 몇 가지 종류가 있었다. 머리만 감은 간단한 것과, 눈만 내놓고 그 밖은 미이라처럼 둘둘 감아버린 헤비듀티한 것이 있다. 제각기 감는 방식이 달랐다. 아마도 이는 세계관이 리베럴인가 컨서버티브인가에 따라 둘러 쓰는 모양이 다르리라.

이런 농가 여인들은 몇 명씩 그룹이 되어 앉아있다. 동네사람들이거나, 고부간이거나, 뭐 그런 느낌이다. 그리고 모두 앞에 토마토 콩 피망 마늘 등등의 야채바구니를 놓고 있다. 같은 그룹으로 같은 무늬의 숄을 두른 여인들도 있다. 이 토지의 시장에서, 장사꾼은 거의가 여성이다. 그래서 분위기도 밝다. 참고로 말하자면, 반 거리의 시장에 갔을 때는 파는 쪽도 전원 남자였고 사는 쪽도 전원 남자였다. 저녁 반찬거리 구입으로 북적대고 있는 게 몽땅 어두운 얼굴을 한 아저씨들인 것이다. 이는 누가 뭐라 해도 참으로 기분 언짢은 광경이었다.

그런데 이곳은 그렇지가 않았다. 개중에는 꽤 예쁜 새댁도 있다. 여자가 그만큼 모여 있으면 보나마나 시끌벅적할 것으로 상상하기 쉬우나 전혀 그렇지 않았다. 모두들 조용히 땅바닥에 앉아서 진지한 얼굴로 묵묵히 야채를 팔고 있다. 다카야마(高山市)의 아침시장처럼 [아줌마, 오늘 무 좋아요. 사가세요] 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여성이 사람들 앞에서 큰 소리를 내거나 입을 크게 벌리고 웃거나, 살을 함부로 노출하거나 하는 건말하자면 일본 여자 아이들이 보통 하고 있는 짓은터키에서는 매우 부끄러운 일인 것이다. 마츠무라군이 한 여성의 사진을 찍으려고 하자 상당한 저항이 있었다. 마지막에는 어디선가 남편까지 나타나서 [여보, 뭐 어때, 사진 정도 찍도록 해도] 라고 설득해도 (터키인이란 참으로 친절했다) 단연코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상당히 견고한 세계관을 지닌 여성이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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