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村上春樹)의 21일간 터키 일주 (6)   -   번역 [飜譯]/일한번역 [日韓飜譯]

 

 

[흑해]

 

카라데니스 터키어로, 문자 그대로 검은 바다이다. 에게해가 하얀 바다로 불리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흑해는 어디까지나 흑해였다.

어째서 흑해라고 불리는가는 실제로 가보면 안다. 아무튼 모든 의미로 흑해인 것이다. 그곳에는 확실하게 내리꽂는 지중해 햇빛은 없다. 우리가 찾았을 때는 아직 9월 중순이었는데도 이미 가을빛으로 충만했다. 아름답게, 뚜렷하게 개어있었으나 선글라스를 필요로 하지 않는 조용하고도 온화한 빛이었다.

 

빛뿐만 아니라 바다 그 자체도 조용하고 온화했다. 파도도 없어 바다라고 하기 보다는 거대한 호수처럼 보였다. 해안에는 모래사장이라고 할 만큼의 모래밭이 없다. 있는 것은 검은 잔돌이 깔린 해안선뿐이었다. 해안에는 물결이 소리 없이 찰랑찰랑 들어온다. 멀리 어선이 지나가자 문득 생각난 듯 부드러운 해면이 흔들린다. 그리고 다시 그것은 조용해진다. 물은 투명했다. 에게해의 눈을 찌를 듯한 선명한 푸른빛은 그곳에는 없었다. 그저 투명하기만 했다. 검은 잔돌 해변이 재촉을 당하듯 투명한 바닥으로 기어들어가고, 수면에 비치는 그 빛 속으로 어느덧 사라진다.

 

그곳은 우리가 돌아본 가운데서 가장 평온한 얼굴의 터키였다. 그곳에는 동부아나토리아의 강렬함도 없고, 지중해에게해 연안의 서구적 활기참도 없고, 토라키아의 단조로움도 없었다. 그곳에는 조용한 가을볕이 내리고, 사람들은 밭에 흩어져 담뱃잎을 걷어 들이고 있었다. 그들은 아니 여성 쪽이 많았다 그녀들은 아침에 트럭으로 밭에 실려와, 저녁때가 되면, 하얀 달이 하늘에 뜰 때쯤 다시 트럭에 실려 마을로 돌아간다. 우리가 손을 흔들자 그녀들도 손을 흔들었다. 그녀들은 모두 자잘한 꽃무늬의 색색 몸뻬 같은 바지를 입고, 머리에는 스카프를 두르고 있었다.

 

흑해지방은 어느 터키 가이드북을 봐도 반드시 맨 끝으로 밀려나있고, 설명도 가장 짧았다. 역사적 유적도 다른 지방에 비해 이 부근에는 적었고, 있어도 수수했다.

여름은 짧고, 일 년을 통해 이틀에 한번은 비가 내리기 때문에 비치 리조트로서의 개발에도 맞지 않았다. 산이 바다를 향해 밀고 나오듯 육박해 있으며, 지형은 많은 부분에서 준험하고, 도로는 정비가 늦어지고 있었다. 경치는 최고인데 도로가 상당히 험했다. 그래서인가 교통기관도 발달되어있지 않았다. 트라브존Trabzon-도시 이외에는 매력적인 거리도 보이지 않았다. 따라서 이 지역을 일부러 찾는 관광객 수는 그다지 많지 않은 듯 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도 어딘지 모르게 느긋하게 지내고 있고, 인정도 두터웠다. 일본으로 말하자면 산인(山陰)지방의 분위기와 비슷하다고나 할는지 모르겠다.

 

우리들은 이스탄불에서 동쪽으로 향해, 사판챠 호수 앞에 있는 자카르야 거리에서 하이웨이를 벗어나 흑해연안의 칼라스라는 작은 마을로 들어갔다. 이 부근의 가도 연변은 전부가 아담했다. 라고나 할까 불면 날아갈 듯한 작은 시골마을이었다. 나는 일본으로 전화를 걸 일이 있어, 마을이 나올 때마다 차를 세우고 PTT(전화국)에서 국제전화를 걸려고 했으나, 결국 한번도 걸지 못했다. 내가 국제전화를하고 말하면 곧바로 하유루()’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 근방에 오니 상당히 큰 거리로 나가도 좀처럼 일본까지 전화는 연결되지 않았다.

 

그곳에서 하마즈라 라는 마을로 향했는데, 이 해안도로가 무척 심했다. 흑해변의 길은 심하다고 터키 사정에 밝은 사람으로부터 듣고 있었기 때문에 나름대로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예상을 뛰어넘을 만큼 심했다. 산길이 이어지고 계속해서 포장도로가 없어지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때때로 길 자체가 소멸되어버리는 것이다. 지도에는 틀림없이 루트가 실려 있는데, 실제로는 군데군데 도로가 도로로서의 존재를 스톱시키고 있었다. 그 순간 놀랐고, 놀랐다기 보다 참으로 난감했다. 차에서 내려 바퀴자국을 조사하고, 아무튼 이게 길인가보다 어림짐작으로 남의 집 뒷마당이나 공장부지 같은 데를 가로질러 나가다 보면 다시 불쑥 길이 나오기 때문에, ‘아 살았다하면서 한숨을 쉬는데, 그런 일을 몇 번 계속하는 동안 이래 저래 시간을 잡아먹었다. 어쨌거나 120킬로 가는데 두시간반이나 걸렸던 것이다.

 

이스탄불에서 이런 곳에 오면, 아아 이곳이 터키군, 절로 실감하게 된다. 불편하고 발전되지 않은 장소가 터키답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아무튼 여기까지 오자, 새삼 내가 처음으로 터키에 발을 들여놓았던 때 느꼈던 그 독특한 공기를 확실하게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이스탄불에서도 물론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곳은 너무나도 사람이 많고, 차가 많고, 배기가스가 심하고, 소음이 시끄러웠다. 나는 이스탄불에 사흘 있으면서 별 곳을 다 돌아다녔다. 그러나 내게는 발을 멈추고 공기를 느낄만한 여유조차도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한 걸음 흑해지방에 발을 들여놓자 그곳은 이미 별천지였다. 우선 사람들의 얼굴표정이 달랐다. 눈이 살아있었다. 그리고 마을이나 거리를 지나면 아이들이 모두 나와서 손을 흔들었다. 이 근처의 아이들은 대부분이 빡빡머리여서 왠지 전쟁 직후의 일본 분위기를 느끼게 했다. 아마 지나가는 자동차를 보는 것도 오락의 하나인 모양, 우리도 손을 흔들어준다. 그러나 곧 피곤해져 손을 잠깐 올리기만 했다. 끝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다음날에는 빙긋 웃을 뿐, 손마저 거의 올리지 않았다. 아이들뿐만 아니다. 어른들도, 손은 흔들지 않지만 모두 길가에 내놓은 테이블에 앉아 하는 일 없이 지나는 자동차를 멀건이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길을 묻고자 차를 세우거나 하면 모두 한꺼번에 달려들어 이쪽이다 저쪽이다 앞 다투어 가르쳐 준다. 참으로 한가한 곳이었다.

 

근방에는 담배 농가와 소가 많았다. 터키로서는 희귀한 일로, 양이나 산양은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다. 소 천지였다. 도로 곁에 소를 방목하고 있어 묵묵히 풀을 먹고 있다.

통행하는 차는 드물었다. 트랙터와, 담배 잎을 그득히 쌓아올린 당나귀가 유유히 길을 걷고 있다. 지나치게 잎을 쌓아올려 당나귀 모습마저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뒤에서 보면 이파리 산이 멋대로 도로를 걷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당나귀뿐만 아니라 아주머니나 젊은 아가씨들도 연초 잎을 잔뜩 지고 길을 걷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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