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村上春樹)의 21일간 터키 일주 (5)   -   번역 [飜譯]/일한번역 [日韓飜譯]

 

[터키]

내가 최초로 터키 땅을 밟은 건 7년쯤 전 여름이었다. 그때 내가 갔던 곳은 쿠샤단에게해를 앞에 둔 터키의 항구도시다. 그곳에서 버스를 타고 유명한 에페소스 유적을 보러 갔다. 무척이나 더운 날이었다. 버스에는 에어컨이 없어 우린 계속 땀을 흘렸다. “우리나라는 현재 석유가 부족하다. 때문에 버스의 에어컨 사용은 금지되어있다. 여러분도 그런 사정을 이해하고 부디 참아주기 바란다라고 남성 가이드가 우리에게 설명했다. 석유 쇼크의 여파가 계속되던 시대였다. 그래도, 이해는 되나, 아무튼 무더웠다. 머리가 띠-할 정도였다. 유적을 보고난 다음 해안에서 조금 헤엄을 쳤다. 그리고 터키에서는 숙박하지 않고 그대로 그리스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 때 이후 난 터키라는 나라에 대해 강한 흥미를 안게 되었다. 어째서인지 나 자신도 알 수 없다. 나를 끌어당긴 건 그곳에 있던 공기의 질 같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곳의 공기는 다른 어느 곳과도 다른, 뭔지 모르는 특수한 질을 품고 있는 것처럼 나는 느꼈던 것이다. 촉감도 냄새도 색깔도, 모든 것이 내가 그때까지 호흡한 어느 공기와도 달랐다. 참 이상한 공기였다. 여행이라는 건 본질적으로 공기를 마시는 일이구나 하고 나는 그때 생각했다. 아마도 기억은 사라질 것이다. 그림엽서는 빛바랠 것이다. 하지만 공기는 남는다. 적어도 어떤 종류의 공기는 남는다.

 

난 그 후로도 오랜 동안 계속 그 공기를 잊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공기 속에서 일어난 몇 가지 일상적이며 비일상적인 (그건 동전 하나의 앞면과 뒷면이다) 일들도. 난 그 후 여러 나라에 갔었고, 그곳에서 갖가지 공기를 마셨다. 하지만 터키 공기의 묘함은 그 어느 공기 질과도 달랐다. 어째서 터키 공기가 그렇게 내 마음을 끌었는지 나는 설명할 수 없다. 그건 설명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건 아마도 어떤 종류의 예감 같은 것이리라. 예감은 그것이 구체화되었을 때 밖에는 설명할 수 없다. 인생에는 그 과정에 있어 몇 가지 그러한 예감이 나타난다. 그다지 많지는 않다. 몇 가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지만 난 계속 그곳을 다시 찾고 싶었다. 이번에는 천천히 시간을 두고 터키를 돌면서 여행 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좀처럼 터키에 갈 기회가 없었다. 전혀 갈 기회가 없었던 건 아니다. 난 그 동안 몇 번이나 그리스에 갔다. 이태리에서도 살았다. 그러니까 터키에 가자고 맘만 먹으면 갈 수 없지는 않았다. 조금만 더 가면 바로 터키가 되는 곳에도 몇 번 갔다. 그런데도 나로서는 어차피 갈 바에야 어중간하게가 아니고 철저히 시간을 두면서 가고 싶었다. 우선 튼튼한 자동차와 튼튼한 짝이 필요했다. 터프한 여행이 될 것이므로 아내를 데리고 갈 수는 없다. 게다가 난 그 여행을 위해 운전면허까지 따지 않으면 안 되었다. 초보적인 터키어도 배웠다. 터키에 대한 책도 여러권 읽었다.

 

나와 이번에 동행한 사람은 사진작가인 마츠무라(松村映三)군이다. 출발예정은 그의 결혼식 일주일 후였는데, 내가 이야기를 꺼내자 그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래서 우린 3주일에 걸쳐 터키의 외부를 자동차로 한 바퀴 시계방향으로 돌았다. 사실은 내부에도 들어가 보고 싶었으나 일정 관계로 그곳까지는 손이 미치지 못했다. 터키는 넓은 나라다. 하나에서 열까지 보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을 우선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터키 여행을 하면서 우선 느낀 점은 이 나라의 크기와 다양함이었다. 우린 [터키] [터키인]이라고 하면 보통 단일 국가, 단일 민족으로 알고 있는데, 실제로 돌아다녀 보니 지역마다의 큰 차이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터키는 지세(地勢)적으로 뚜렷하게 몇가지 얼굴로 나뉘어 있다. 그리고 지역에 따라 경치도 기후도 사람들의 생활도, 어쩌면 인종까지도 확 달라지는 것이다. 이건 어디까지나 나 개인의 주관적 구분이므로, 어쩌면 정확한 분류는 아닐는지 모르나, 우리 눈에는 터키가 뚜렷하게 다섯개 부분으로 나뉘어있는 것처럼 보였다.

 

차례로 꼽아보자.

유럽에서 자동차로 들어가면 우선 유럽측 터키가 있다. 트라키아지방이다. 이곳이 제1의 터키. 지형적으로는 북그리스와 거의 다르지 않다. 풍광적으로는 동유럽에 가까울 것이다. 끝이 없는, 시든 해바라기 밭 위를 제비가 날고 있다. 지루하고 재미라곤 없는 점도 동유럽적이지만, 그래도 토지는 비옥하다. 끝없이 밭이 펼쳐져있다. 볼 것이라곤 거의 없다. 단조롭고 변화가 없는데다 도로가 믿을 수 없을 만큼 일직선이어서 운전자는 잠들지 않도록 하는 게 큰 고통이다.

 

그리고 이스탄불이 있다. 이곳은 예외로 꼽고, 터키의 얼굴 속에 넣지 않는 편이 좋을 듯싶다. 많은 대도시가 그렇듯 이곳은 특수한 장소인 것이다. 이스탄불이 가까워지는 데 따라 도로변의 경치는 지루함에서 추악함으로 변해간다. 이스탄불에 통근하는 중산층용 소름끼치는 집합주택과, 집장사 집들이 발 디딜 틈 없이 늘어서있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건 짜증나는 조망인데, 이곳은 특히 심하다. 어느 집이건 아파트건 싸구려 신축에 엉성하고 획일적이다. 하얀 벽, 빨간 지붕, 어느 것이나 똑같다. 구획마다 복덕방의 조잡한 간판이 세워져있다. 간판에는 자못 중류급 생활 양상이 그림으로 그려져 있다. 보고 있기만 해도 오싹해진다.

이윽고 차는 거리로 들어선다. 이곳은 교외와는 반대로 더럽고, 낡고, 외설적이고, 멋대로이고 엉터리다. 시끄럽고 공기 나쁜 여행용이다. 인간이 넘쳐나고, 차는 더할 수 없이 위험하다. 신호등은 달려 있으나 거의 작동하지 않는다. 배기가스가 너무 심해 거리를 걷고 있으면 기분이 나빠진다. 호텔요금은 비싸고, 레스토랑의 청구서는 늘 값이 더해져있다. 사람들은 떼를 지어 융단을 팔려고 아우성이고, 유명한 그랜드바자르에는 볼만 한 게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야경은 아름답다.

 

이윽고 이스탄불을 뒤로 하고, 보스포라스 해협을 넘어 아시아측 터키에 들어갔다. 아시아 하이웨이를 따라 맥 빠질 만큼 공업지대가 이어진다. 더 맥이 빠지고 싶으면 그 훌륭한 하이웨이를 앙카라로 향해 곧장 달리면 된다. 그런데 여기서 왼편으로 꺾어들면 흑해로 나오게 된다. 경치도 아름답다. 다만 에게 해안지대에 비하면 도로와 호텔의 질이 엄청 떨어진다. 비가 많이 내려 눅눅한 분위기의 땅이다.

 

그로부터 시계방향으로 소련 이란 이라크 국경방면이 제3의 터키다. 푸름이 많은 흑해에서 산으로 들어가 산등성을 넘으면 그곳이 바로 도우 아나톨리아 고원, 바싹 마른 중앙아시아적 터키이다. 다양한 민족이 패권을 노리면서 이 지대를 밟고 넘어갔다. 동으로, 혹은 서로. 긴장감을 숨긴 토지다. 경치도 기후도 상당히 가혹하다. 흙먼지 투성이고, 어느 쪽을 봐도 양 밖에 없다. 도로와 호텔의 질에 있어서는 말할 여지조차 없다.

 

그곳에서 남하하여 시리아 국경지대로부터 지중해에 결친 중부 아나톨리아, 여기가 제4의 터키, 아랍적인 색채가 강한 터키이다. 호텔과 도로 사정은 조금 좋아진다. 여름의 열기는 끔찍하리만큼 심한데, 여성의 복장이 환하게 눈에 띄면서 화려해진다.

그리고 서쪽 지중해 에게해 연안 터키, 이곳이 제5터키다. 여기까지 오면 경치가 확실히 밝아진다. 내륙 쪽의 먼지를 품은 공기로부터 해방된다. 사람들의 얼굴도 밝아진 듯한 느낌이 든다. 아름다운 해안이 펼쳐지며, 고급 리조트지가 여러개 있다. 고상한 요트하버가 있고, 기념품 가게가 줄을 잇는다. 터키정부가 관광지로서 열심히 정비하고 있는 지역이다. 외국인 관광객과 중산~상류계급의 터키인들이 우아하게 휴가를 보내고 있다. 그러한 곳은 당연하지만 물가가 비싸다.

 

그렇다면 터키의 그러한 몇 개 지역 가운데서 어디가 가장 재미있었는가. 물론 제일 심한 동부 안토리아다. 그곳에 있는 동안에는 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우린 화가 나거나, 욕을 퍼붓거나, 진을 빼거나, 식은땀을 흘리거나 했다. 나타나는 거리, 나타나는 거리, 어디나 더럽고 보기 흉하고, 통로는 거의가 도로이전 같은 몰골이었다. 사람들의 생활은 보기에도 음산하고, 동네 거리는 경관과 군인과 소와 양으로 넘쳐있었다. 하지만 오해 없기 바란다. 무척이나 심하게 쓰고 있는 것 같은데, 결코 악의를 품은 건 아니다. 난 나름대로 이 여행을 즐겼던 것이다. 즐겼다는 건 과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지루하지는 않았다. 재미가 있었는가 없었는가 하는 견지에서 본다면 그건 재미있었다. 무척 재미있었다. 그곳에는 독특한 공기가 있고, 반응이 있었다. 사람들은 존재감이 있고, 그들의 눈은 살아있는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것은 유럽이나 일본에서는 거의 만나볼 수 없는 뚜렷하고 폭력적인 빛이었다. 그곳에는 까다로운 유보(留保) 조항은 없었다. ‘그러나또는 그래도가 없는, 그곳에 있는 것 그대로가 전부라는 눈이었다. 그곳에서는 대체로 사물을 예측할 수 없고, 조리(條理)는 많은 경우 허무 속에 빨려들어가버린다. 간단히 말해 엉터리였다. 그래도 그곳에는 여행의 참맛이라는 게 있었다.

그건 확실하다. 무척이나 재미있었다. 그러나 또한번 그곳에 가고 싶은가 물으면 현재의 내 대답은 노이다. 뭔가 뚜렷하고 명확한 목적이 있다면 몰라도, 그곳은 한번 가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에게 해안, 거긴 아름다운 곳이다. 마음이 편안해진다. 햇살은 부드럽고, 바다는 쿨하다. 하지만 그저 아름다운 해안에서 해수욕을 할 거라면물가가 그리스 섬에 비해 상당히 싸다는 메리트를 고려한다고 해도일부러 터키에 갈 필요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적어도, 막무가내로, 거기가 꼭 터키여야 한다는 이유는 없을 것이다. 아나톨리아고원을 한 바퀴 돈 후부터 우린 이 지역에 그다지 매력다운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그곳에는 풍광적인 아름다움과 서구적 편리함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뿐이었다. 내가 한때 쿠샤다시 거리에서 마신 그 공기는 더 이상 그곳에는 없었다.

어쩌면 우리들의 아나톨리아고원에서의 체험이 지나치게 강렬했을는지도 모른다. 우린 새파란 지중해를 바라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그와 함께 무언가를 잃어비리고 만 느낌이 들었다. 눈에 비치는 것 손에 닿는 것으로부터 터키가 터키라는 뜻의 무언가가 뚜렷하게 전달되지 않는 것이다. 게다가 에게해에서는 어디를 향하건 독일관광객밖에는 눈에 띄지 않았다.

 

만약 내가 터키를 다시 한 번 여행한다면, 그리고 어디든 한 지역밖에는 갈 수 없다고 한다면, 난 아마도 흑해연안을 찾는 걸 택할 것이다. 그곳에서 특별히 뭔가가 있었다는 건 아니다. 뭔가 새롭고 진귀한 것을 본 것도 아니다. 아나톨리아에 비한다면 그곳에서는 거의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그렇지만 아무튼 평온하고 조용한 곳이었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는 곳이었다.

 

흑해에 대해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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