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아・안나 ㅡ 안녕 아토스] (村上春樹)의 그리스 기행문   -   번역 [飜譯]/일한번역 [日韓飜譯]

 

저녁식사 후 그다지 할 일도 없기에 아토스의 역사에 관한 책을 꺼내, 침대에 벌렁 누워, 카프소카리비아 성립에 대하여 조사해봤다. 그에 따르면, 이 카프소카리비아의 스키테는 40개의 카리베(소인수로 가족처럼 사는 소수도원) 집합에 의해 성립되고 있었다. 이 땅에 최초로 자리를 잡은 사람은 매시모스라는 이름의 은둔자였다. 이 사람은 인간을 싫어한다고나 할까 아무튼 본격적으로 굉장히 비뚤어진 은둔자였던 모양이다. 처음에는 바다 가까이에 암자를 짓고 달랑 혼자서 은둔자 생활을 즐기고 있었는데, 다른 승려가 나타나 가까이에 집을 짓기 시작하자, 수행의 방해가 된다면서 자기가 살던 오두막을 미련 없이 태워버리고, 절벽 위로 위로 이동해갔다는 것이다. 어쩌면 성질이 급한 사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옮기는 데 그치지 않고 태워버린다는 점이 과격하다. 어찌됐든 그러한 이유로 이처럼 절벽에 붙은 기묘한 지형의 마을이 이루어진 모양이다. 마을 성립사정 그 자체가 편협했다. 그리고 그 편협함이 지금도 이 마을의 성격으로서 토지에 뚜렷이 남아 묻어있는 것처럼 난 느꼈다.

 

어쩌면 이 숙소를 맡은 승려도 그다지 사람이 오는 걸 달가워하지 않아, 그래서 오두막을 태우는 대신 (일일이 태우고 있으면 끝이 없으므로) 식사에 곰팡이 슨 빵을 내놓고, 조금이라도 빨리 우리들을 내쫓고자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그는 그 작전에 성공한 것이다. 우린 아침식사로 또 나온 물에 불은 곰팡이 빵을 보고 힘이 쭉 빠졌다. 이번에는 그 위에 곰팡이 슨 딱딱한 르크미까지 딸려있었다. 그와 함께 지나치게 짜고 신 페다치즈와 커피. 그래도 배가 고파있었기에 눈물을 머금고 묵묵히 먹었다.

, 이거 미워서 일부러 하고 있는 짓 아닐까요?” 라고 마츠무라군이 말한다. 솔직한 의견이다.

저쪽에서는 승려가 무척 맛있는 걸 먹고 있던데요라고 O군이 말한다.

하긴 이곳 승려도 꽤 혈색이 좋던데요. 배가 나온 사람도 있고라고 마츠무라군이 말했다.

하지만 고양이는 정직하니까, 만약 그렇다면 이곳에 곰팡이 빵을 먹으러 오지는 않을 텐데. 틀림없이 맛있는 것이 있으면 냄새를 맡고 그쪽으로 갈 것 아닌가라고 내가 말했다.

결론은 좀처럼 나지 않았다. 그래도 되도록 빨리 이곳에서 나가자는 의견은 전원 일치했다. 갈 곳은 아기아안나의 스키테. 그 스키테도 그란데라브라에 속해있다. 여기까지 와서 이제 사치를 원하지는 않지만, 카프소카리비아 보다는 얼마쯤이라도 나았으면 했다.

 

이곳 카프소카리비아에서 아기아안나까지의 길이 또한 심했다. 그야말로 진정 아토스 최악의 길이었다. 산은 점점 험해지고, 골짜기는 점점 깊어졌다. 기어 올라가서는 기어 내려가는, 그런 연속이었다. 더 이상 아무것도 생각하기 싫을 정도로 힘든 길이었다. 날씨가 좋은 게 유일한 구원이었다. 도중에 몇 명의 승려가 스쳐지나갔지만 이 근처까지 오니 이젠 승려인지 거지인지 커다란 원숭이인지 가까이 다가올 때 까지 분간이 안 됐다. 옷을 엉망이고 머리와 수염은 자랄 대로 자라있었고, 눈만이 번득였다. 그런 게 산 속을 왔다 갔다 하는 것이다. 길에서 만난 한사람의 나이든 승려는 우리를 향해 이번에 올 때는 마음을 다잡아 반드시 정교로 개종하고 오십시요라고 진지하게 충고를 한다.

 

한 시간쯤 걸어 힘이 소진되었기에 고개에서 주저앉아 땀을 닦고, 레몬을 반으로 잘라 꾹 짜서 마셨다. 몇 개를 마셔도 신에 차지 않을 만큼 맛있다. 무척 실텐데 전혀 신 느낌이 나지 않는다. 껍질까지 우적우적 씹어 과즙을 짜내어 먹었다. 레몬을 항상 지니고 걸을 것. 이것이 여름 그리스를 여행하면서 내가 배운 교훈의 하나이다.

 

뭐든 이야기하고 있지 않으면 힘이 빠지기에 걸으면서 먹는 이야기를 한다. 도쿄에서 장어라면 어느 식당이라던가, 메밀국수집의 곁들임은 어디가 맛있다던가, 스끼야끼의 두부와 실 곤약은 어느 쪽을 먼저 넣는가, 어느 고깃집의 고록게를 어느 집 빵에 끼워 먹어야 맛있는가, 교토(京都)의 실파구이는 어디서 먹어야 좋은가, 그따위 하찮은 이야기였다. 그래도 여하튼 배가 고파있으니 이야기가 점점 리얼해져서 묘사가 자세하게 세부에 까지 미친다. 많은 편집자가 그렇듯 회사 비용으로 밥 먹는 게 편집자의 직무 중 하나임으로O군도 음식 사정에는 빠삭하고, 나도 먹을 것 이야기는 좋아한다. 그래서 끝없이 이야기가 이어져 쉴 틈이 없다. 그런데 마츠무라군이 점점 과묵해졌다. 그리고는 전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다. 나 같은 사람은 떠들기 시작하면 끝이 없는데, 이 사람은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머릿속에서 그 먹을 것의 이미지가 자동적으로 점점 커지는 모양으로, 갖가지 음식 이야기가 나올 때 마다 온몸이 찢기듯 괴로웠던 모양이다. “그땐 정말 괴로웠어요.” 라고 나중에 그는 고백했다. 고약한 짓을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줄 알았다면 더 강렬하게 이야기 할걸 하는 생각도 든다. 난 그런 묘사를 꽤 잘하니까.

 

어찌 되었거나 그만큼 우린 배를 줄이고 소모되어있었다. 어제 저녁부터 거의 아무것도 먹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륙색 안에는 크래커와 치즈가 아직 조금 남아있으나, 이건 최후의 최후까지 비상식으로 간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토스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약 3시간을 계속 걸었다. 신발 사이즈가 약간 맞지 않는 탓도 있어 발가락의 콩이 두 개 찢어지고, 발톱이 들뜨고 말았다. 아프냐고 물으면 그야 아프지만, 마지막에는 아프다고 느끼는 것조차 귀찮아지고 말았다. 어찌되었건 간에 걸을 수밖에 없다. 난 러닝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무서운 소모에 어느 정도 익숙해있지만, 그래도 이 길은 힘들었다. 게다가 벌써 나흘째 계속 걷고 있는 게 된다. 일이기는 하되 도회지에서 자란 O군에게는 참으로 딱한 노릇이었다.

 

1120분에 마침내 아기아안나의 스키테에 도착했다. 카프소카리비아에 비하면 이곳 사람들은 다정하다. 커피와 우조가 나왔다. 우조가 정말 맛있다. 뼈에까지 스며드는 듯 한 기분이었다. 스키테의 마당에서 눈 아래로 반짝반짝 빛나는 바다와 항구가 보인다. 이곳도 카프소카리비아와 마찬가지로 낭떠러지 중간에 만든 촌락이었다.

 

배에 대해서 승려에게 묻자, 오늘 배는 벌써 떠나버렸으니 내일 아침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다른 배는 없는가 물었더니 특별요금이면 와줄는지도 모르겠다고 한다. 그래서 그 승려에게 다프니항까지 전화를 걸어달라고 했다. 이 사람이 친절한 승려여서, 배 선장과 요금 교섭까지 해 준다. “당신 그건 너무 바가지 씌우는 거 아니오. 일본에서 오신 분이 곤란에 처했거든그런 비슷한 말을 길게 늘어놓고 있었다. 결국 25000드라크마로 타협이 됐다. 승려님은 우리에게 무척 미안한 모양이었다. “25000이면 온다는데 어떻게 하지?” 하고 우리에게 묻는다. 좀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일본 엔으로 하면 약 2만엔 정도), 체재허가 문제도 있고, 아무튼 그 배를 쓰기로 했다. “좋습니다라고 우린 말했다.

 

잠시 후, 주위에 그리스사람(그 대부분은 이곳에 체재하고 있는 순례자이다)들이 모여들기 시작, 이 일본인들이 25000으로 배를 차타했다네, 하면서 시끌벅적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다. 25000이란 이 사람들에게 있어 상당한 금액이다. 그런 큰돈을 내고 배를 고용하는 건 좀처럼 믿을 수 없는 일인 모양이다. 나리타에서 도심까지 택시를 타면 그만큼 든다고 가르쳐주고 싶었으나 이야기가 길어질 듯해서 그만 둔다. “놀랄 만큼 비싸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일 때문에 돌아가야 하거든요. 비행기 시간에도 늦을 테고어쩌고 적당히 설명해둔다. 그것으로 모두들 조금은 납득한 듯 했다. 그래도 필시 우리들 이야기를 나중에 몇 달에 걸쳐 화제로 삼을 것이다.

 

배가 올 때 까지 그곳에서 햇볕을 쪼이며 시간을 죽인다. 나는 전화를 걸어준 친절한 승려의 안내로 예배당 안을 구경했다. 이곳 예배당의 벽에도 역시 지옥화와 천상의 그림이 꽉 차게 그려져 있었다. 이곳에도 다양한 형태의 굉장한 순교가 있고, 수난이 있었다. 승려님은 매우 친절한 사람이어서 이 성인은 눈을 패였어요라고 말할 때는 확실하게 눈을 빼는 시늉을 해줘 대충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저런 일을 하고 있는 동안 마침내 배가 왔다. 꽤 반듯한 배였다. 아마도 훼리선이 임시로 시간외에 와준 것 같았다. 이른바 선장의 개인적 아르바이트 같은 것이리라. 이곳에서 다프니 까지는 한시간, 그곳에서 우라노폴리까지는 두시간 걸린다. 그 정도의 배 차타비용이 2만엔 좀 넘는다는 건, 우리들 감각으로는 저렴하다. 부두에 그리스인 부자가 서서, 괜찮다면 배에 태워줄 수 없겠느냐고 묻는다. 물론 태워줬다. 마르고 그늘진 얼굴을 한 30대 후반 아버지와, 열 살 정도의 사내아이였다. 그들은 케라시아에서 와, 둘이서 아토스의 수도원을 돌았는데, 이제부터 디오니스우의 수도원에 가는 길이라고 한다. 뭔지 모르게 사정이 있을 듯한, 이상하게 과묵한 부자였다.

 

배에 오르자 우린 바로 캐러밴슈즈를 벗어 맨발이 되었고, 쇼트팬츠 한 장이 되었다. 그리고는 갑판에 뒹굴었다. 도중에 디오니스우 수도원에 들러 순례 부자를 내려주고, 다프니로 향했다. 아토스에 들어가거나 아토스에서 나가려면 반드시 다프니에 들르지 않으면 안 된다. 다프니에서 우린 다시 긴 바지를 입어야했다. 신의 정원에서 쇼트팬츠라니 불경스러운 짓이다.

다프니에서는 허가증 체크와 간단한 짐 조사가 있었다. 수도원의 보물을 가져가지 않는지 조사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다지 철저한 건 아니었다. 우리들의 체재기간 오버도 아무 말 없었다. 서류를 훑어보고 나서 오케이, 였다.

 

이것으로 우리의 아토스 여행은 겨우 끝났다. 우라노폴리에 도착하여 우선 우리가 한 일은 타베르나에 들어가서 차가운 맥주를 맘껏 마시는 것. 일반적인 의식이 블랙아웃 한 게 아닌가 싶을 만큼 맛있었다. 그리고는 실컷 현세적인 식사를 즐겼다. 생선 스프와 후라이드 포테토와 무사카와 사딘과 칼라마리와 샐러드를 주문한다. 그리고 차에서 라디오카세트를 가지고 와서 비치보이즈를 들으며 천천히 식사를 했다. 리얼 월드 이다. 이제 누가 곰팡이 핀 빵 따위를 먹겠는가.

 

그런데 며칠 지나자 아토스가 이상하게도 그리워졌다. 사실을 말하자면, 이 문장을 쓰고 있는 지금도 왠지 모르게 그 장소가 그립다. 그곳에서 살고 있던 사람들과, 그곳에서 본 풍경과, 그곳에서 먹었던 것들이 굉장히 리얼하게 눈앞에 떠오르는 것이다. 그곳에서는, 사람들은 가난한 가운데서도 조용하고 진한 확신을 안고 살고 있었다. 그곳에서는, 먹는 음식은 심플해도 싱싱한 실감 나는 맛을 담고 있었다. 고양이마저 곰팡이 핀 빵을 맛있게 먹고 있었다.

 

나는 처음에 썼다시피 종교적 관심이라는 것이 거의 없는 인간이고, 그다지 만사에 간단히 감동하지 않는, 어느 쪽인가 하면 회의적인 인간이지만, 그래도 아토스의 길가에서 만난 야생 원숭이 같은 더러운 승려로부터 [마음을 다시 먹고 정교로 개종하여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십시오] 라는 말을 들었을 때를 기묘하게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물론 나는 정교로 개종 따윈 하지 않는다. 그래도 그의 말에는 이상한 설득력이 있었다. 아마도 그것은 종교 운운이라고 하는 것 보다 인간의 삶에 대한 확신 문제일 것이라고 생각된다. 확신이라는 것으로 말하자면, 온 세계를 찾아봐도 아토스 만큼 농밀한 확신에 찬 땅은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들에게 있어 그것은 의심한 여지조차 없는 확신에 찬 리얼 월드인 것이다. 카프소카리비아의 그 고양이에 있어 곰팡이 슨 빵은 세상에서 가장 리얼한 것의 하나인 것이다.

그렇다면 진정 어느 쪽이 리얼 월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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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봄내 reply | del   2014.03.11 18:16 신고
    이제 끝이 난 것인가요?
    선배님의 수고 덕분에, 그동안 긴장감마저 느껴가며 여행을 따라다녔습니다.
    감사합니다.
    • yoohyun del    2014.03.12 11:09 신고
      봄내님, 읽어주셨군요. 예, 겨우 끝냈어요.
      점점 어휘부족을 통감하면서, 적절한 우리 말을 찾지 못해
      번역이 매끄럽게 되지 않더군요. 부끄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