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하루키(村上春樹)의 그리스 기행문 (1)   -   번역 [飜譯]/일한번역 [日韓飜譯]

 무라카미하루키의 [雨天 · 炎天]이라는 그리스 여행기를 읽고 있습니다.

직접 가보지 못한 저는 매우 흥미롭게 읽고 있습니다만, 혹시 저와 같은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씩 번역해 올리기로 했습니다.

 

 

[안녕 리얼 월드 

 

우선 우라노폴리(Ouranopoli)에서 배를 탄다.
아토스반도로 향하는 순례 여행은 그곳에서 시작하여 그곳에서 끝나게 된다. 그 곳에서 다시 그곳으로–만약 돌아올 마음이 있다면 말이지만- 돌아오는 것이다. 우라노폴리는 아토스반도의 팔죽지에 위치한 해변의 작은 리조트 타운이다. 배는 아침 7시45분에 이곳 항구를 출발한다. 하루 그것 한편 뿐이다. 따라서 되도록이면 전날 이곳에 도착하여 호텔에서 1박하고 천천히 아침밥을 먹은 다음 여유롭게 승선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 편에 타지 못한다면 다음날 아침까지 24시간 동안 이 우라노폴리 거리에 못박히게 되는, 상당히 심각한 상황에 직면하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실제로 직면했다.)

 

우라노폴리에서 다프니(Dafni) 까지 배로 약 두시간 걸린다. 갑판에 들어누어 느긋하게 일광욕이라도 하기에 적당한 시간인데, 그 두시간정도의 항해에 따라 세계는 뚜렷하게 두개의 다른 얼굴로 나뉘는 것이다. 우라노폴리와 다프니라는 두 마을 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결정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이 두 마을은 애초부터 성립 방법이 다르고, 따라서 세워야 할 규범도 가치관도 현저하게 차이가 난다. 살고 있는 사람들의 종류가 다른가 하면 목표로 삼은 방향도 다르다. 한마디로 말해, 우라노폴리는 역겹고도 사랑스런 우리들 속세 중에 속하는 마을이고, 한편 다프니는 보편성과 청렴과 신앙이 뒷받침된 신성한 영역에 속하는 마을인 것이다. 그리고 그 두개의, 굳이 상반된다고는 말하지 않더라도 많은 점에서 서로 받아들이기 힘든 마을을, 하루 한편의 페리선이 가늘게 잇고 있다.

 

우라노폴리–우라노폴리는 heavenly town 이란 뜻이다-에는 작은 호텔이 몇 개 있고, 타베르나(taberna-작은 레스토랑)가 있고, 비치가 있고, 선착장이 있고, 길가에는 독일 넘버를 단 캠핑카가 빈틈없이 주차하고 있다. 한 줄로 된 거리를 끝에서 끝까지 걸으면 대체로 볼일은 끝나버리는 정도의 마을이다. 아름다운 비치와, 입이 떡 벌어질 만큼 광대한 주차장(아토스로 나가는 사람이 이곳에 차를 세워두기 때문이리라)과, 선착장이 있다. 뭔지 헤아릴 수 없는 오래된 석조 탑 비슷한 것도 있다.

타베르나 입구에는 [비아 슈플레헨 도이체]라는 간판이 걸려있다. 칼라마리(작은 오징어)를 기름에 튀기는 독특한 냄새가 난다. 진한 선글라스를 쓴 수영복 차림의 여인이 고무 샌들을 끌면서 천천히 길을 건너간다. 주위 풍경과 무척이나 어울리지 않는 마이클 잭슨의 노래가 라디오카세트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It’s bad, it’s bad.... 응달에서는 커다란 개가 생사를 넘나들듯 깊은 잠에 빠져있다. 배낭족이 한개 500원의 무슈키로빵을 아주 소중하게 안고 걸어간다. 카페니온(kapenieon)에서는 그 고장 노인들이 차례로 담배를 피워대 주위 공기와 자신들의 폐를 더럽히고 있다. 어디에나 있는 그리스의 푼돈 끌어모으기형 비치리조트다. 다만 이곳이 마지막이다. 여기가 우리들의 작은 현실세계의 끝인 것이다. 이 앞에는 이제 여자도 없고, 타베르나도 없고, 마이클 잭슨도 들리지 않고, 독일인 관광객도 없다. 독일인 관광객까지 없단다, 아가야. 그렇다, 이곳은 현세의 막다른 골목인 것이다. 욕망의 라스트찬스다. 리얼 월드의 프런티어인 것이다.

 

페리를 놓친 우리들은 선착장에서 공사 자재를 다프니까지 운반한다는 배를 겨우 발견, 선장과 교섭하여 4만원돈을 지불하고 그곳에 편승하게 되었다. 승객은 우리뿐이다. 휴우, 이렇게 해서 겨우 우라노폴리에서 하루를 헛되이 보내지 않게 된 것이다.
그건 그렇고, 이 얼마나 아름다운 바다인가! 우라노폴리항을 떠나 얼마쯤 나아가자 우린 전혀 새로운 영역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나는 오랫동안 난간 밖으로 몸을 내민 채 질리지도 않고 그 바다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아름다운 바다가 많은 그리스지만 이 아토스의 바다처럼 아름다움을 품고 있는 바다를 난 본 기억이 없다. 물론 그저 투명하고 파란 아름다움만 지닌 바다라면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이 바다의 아름다움은 그와는 전혀 다른 아름다움이었다. 뭐라고 할까, 전혀 다른 차원의 투명함이고, 푸름이다. 물은 마치 진공의 공간처럼 야무지게 맑으며 또한 포도주색으로 물들어있다. 그렇다, 마치 땅속 틈바구니로부터 대지가 양조한 포도주가 조금씩 조금씩 뿜어져 나와 그것이 물에 배어들고 있는 듯한, 눈부시게 파란 빛이었다. 그곳에는 선명한 냉철함이 있고, 풍요로움이 있고, 모든 관념적인 규정을 뚫어버릴 듯한 무서우리만큼의 깊이가 있다. 그리고 그곳에 늦여름 아침의 강한 햇볕이 칼날처럼 심하게 꽂혀 출렁인다. 물고기 떼가 소리 없이 가로지른다.
바다는 오염되어 있지 않았다. 아무리 뚫어지게 들여다봐도 더러움이 보이지 않는다. 그것을 이제는 바다라고 말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마음이 들었다. 문득 그것은 어떠한 의식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까마득한 시간과 희생을 거쳐 철저하게 양식화된, 미의 핵심을 향해 나아가는, 본래의 의미마저 잃어버린 의식, 그런 의식을 상기시킨다. 그만큼 그 바다는 아름다웠다.

 

배가 그런 바다로 향하는 데 따라 오징어 튀김이라던가. 수영복 여인, 마이클잭슨, 말보로광고 등 이런저런 것들이 점점 작아진다. 그리고는 어느 결에 사라지고 만다. 한번 사라져버리자, 그런 것이 존재했다는 것 마저 내 머리 속에서 흐려진다. 나의 눈에 비치는 건 울퉁불퉁한 반도의 해안과 암벽뿐이다. 그리고 해안을 따라 조금씩, 마치 중세로 되돌아가는 듯이 느껴지는 엄숙한 수도원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토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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