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챈들러 방식] 무라카미하루끼(村上春樹)   -   번역 [飜譯]/일한번역 [日韓飜譯]

 

오래전에 어떤 책에서 레이먼 챈들러가 소설을 쓰는 요령에 대해 쓴 문장을

읽은 적이 있다. 그 때는 확실하게 내용을 외우고 있었는데, 꽤 오래전의 일이라

거의를 잊어버리고 말았다. 무척 재미있는 내용이었던 것 같아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은데 출전이 어디였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런 일이 종종 있다.

좋았다는 기억은 있는데 어떻게 좋았는지가 영 생각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그 문장 속의 한가지는 지금도 외우고 있다. 하긴 이것도 내가 그렇게

기억하고 있을 뿐으로, 세세한 부분의 진위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다.

만약 틀렸다면 죄송하나, 그래도 내가 그렇게 기억하고, 그렇게 기억하고 있는

내가 존재하고 있으므로 그 기억 역시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 그건

그것으로 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어찌되었거나, 나는 그것을 챈들러 방식이라 부르고 있다.

우선 알맞은 책상을 정하라고 챈들러는 말한다. 자신이 문장을 쓰기에 적합한 책상을

하나 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원고지(미국에는 원고지가 없지만, 그와 비슷한 것)

만년필 자료 등을 갖춰 놓는다. 반듯하게 정돈해 놓을 필요까진 없으나, 언제든

일 할 수 있는 태세로 키프해 두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매일 어느만큼의 시간을 - 예를 들어 두시간이면 두시간을 - 그 책상 앞에

앉아서 지내는 것이다. 그 두시간 동안 술술 글을 써 내려가면 아무 문제없다.

하지만 그처럼 잘 풀리지 않고 전혀 아무것도 쓸 수 없는 날이 있을 것이다.

쓰고 싶은데 도무지 잘 써지지 않아 짜증이 나서 내던져버릴 수도 있고,  애당초

문장 같은 것 전혀 쓰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 혹은 오늘은 아무것도 쓰지 않는 게

좋겠다, 라고 직감이 가르쳐주는 날도 있다. (아주 드물긴 해도 있다). 그럴 때

어떻게 하면 좋을 것인가.


설령 한줄도 쓰지 못하더라도, 아무튼 그 데스크 앞에 앉아 있어라, 챈들러는 말한다.

어떻게든 두시간 동안 그 데스크 앞에 진득하게 앉아 있으라고.

그 동안 펜을 들고 어떻게든 문장을 쓰려고 애 쓸 필요는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있으면 되는 것이다. 그 대신 다른 짓을 해서는 안된다. 책을 읽거나, 잡지를

들추거나, 음악을 듣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고양이와 놀거나, 누군가와 이야기를

해서도 안된다. 쓰고 싶어지면 쓴다는 태세로 그저 가만히 있지 않으면 안된다.

설령 아무것도 못쓰더라도 쓰고 있는듯한 집중적 태도를 유지하라는 이야기다.


그렇게 하고 있으면 설령 그 때는 한줄도 쓰지 못하더라도, 반드시 언젠가 다시

문장을 쓸 수 있는 사이클이 돌아온다. 초조해서 쓸데없는 일을 한들 얻는 건

아무것도 없다, 하는 것이 챈들러의 메서드(method)이다.


나는 이런 사고방식을 비교적 좋아한다. 자세만 해도 건전하다고 생각된다.

이건 물론 개인적인 기호 문제라고 생각되지만, 어네스트 헤밍웨이 같은

전쟁이 일어날 때 마다 외국으로 날아다닌다든가, 아프리카산에 기어오른다든가,

카리브해에서 청새치를 낚는다든가 하여 그걸 소설의 자료로 삼는 식의 방법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것은 텔레비전의 [무슨무슨 스페셜]과 근본적인 발상이 같다고 생각된다.

그런 식으로 글을 쓰고 있으면 점점 에스컬레이트하여 부자연스럽게 자료를

구하려 들것이다.


그에 비하면 [그대로 두시간, 책상 앞에 가만히 앉아 있도록. 그러다 보면

어떻게든 된다] 라는 건 사상적으로도 올바르다. 돈도 들지 않고, 남에게 폐를

끼치지도 않고, 품이 들지도 않는다. 무엇보다 외적 요인에 의지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산뜻하고 좋다.

나는 원래 멍청히 있는것이 좋기 때문에 소설을 쓸때는 대체로 이 챈들러 방식을

취하고 있다. 아무튼 매일 책상 앞에 앉는다. 쓰여도 쓰이지 않아도 그 앞에서

두시간 멍청이 앉아있다.


멍청히 있다는 건 간단하다면 간단하나, 어렵다면 그런대로 어려운 일이다.

확실히 나름대로의 요령이 필요하다.

 [하품 지도]는 아니지만, 나의 멍청하게 있는 방법을 일단 적어놓는다.

우선 양손으로 턱을 괸다. 양쪽 엄지손까락으로 하관을 누르고, 새끼손까락으로

눈 끝을 누른다. 그리고는 목의 힘을 빼고 양쪽 눈의 초점을 어긋나게 한다.

내 경우 다행스럽게도 오른쪽 눈의 시력은 0.08, 왼쪽 시력은 0.5이기 때문에

애쓰지 않아도 목의 힘을 빼고 나면 초점은 자연히 어긋나고 시야가 흐려진다.


가끔 생각난 듯이 자세를 바꾸면서 거의 이 자세로 시간을 보낸다.

내 책상 앞에는 창이 있고, 창 너머에는 천평쯤 넓이의 공터가 있다. 병원 용지로

확보되어있는 터인데, 건축허가가 떨어지지 않아 그대로 방치된 넓은 토지이다.

그곳에서 억새와 키큰 잡초가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그래서 난 대략

멍청한 시선으로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나 키큰 잡초를 보듯 안보듯 하고 있다.


계속 그렇게 하고 있으면 이윽고 골이 패인 케잌 반죽처럼 된 느낌이 든다.

그러한 착각에 빠진다. 잘 섞지 않은 탓에 여기저기 멍글멍글 멍울이 생긴

팬케잌 반죽이다. 머리를 뒤로 제치면 주르륵 하는 느낌으로 그 멍울 생긴 골이

뒤쪽으로 이동하고, 앞으로 숙이면 똑같이 주르륵하고 앞쪽으로 이동한다.

재미가 나서 그것을 몇 번씩 해 본다.


창밖에서는 키큰 잡초와 억새풀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개가 나타났다

사라진다. 비행기가 날아간다. 지금은 1983년 봄이고 나는 34세다.

난 책상 앞에 하염없이 멍하니 앉아있다. 진정 얼마 후에 다시 뭔가 쓸 수 있게

될 것인가 생각한다. 지금은 아무것도 쓰기 싫다. 어째서인지는 알 수 없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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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리틀마인드 reply | del   2012.09.26 10:52 신고
    하루키 수필집인 작지만 확실한 행복에서 나온 내용이네요
    • yoohyun del    2012.09.27 00:14 신고
      누구신지 몰라도 읽어주시고 댓글까지 달아줘 고맙습니다.
      이 글은 [はいほー!]라는 수필집에 있는 거에요^^;
  2. 백조 reply | del   2018.03.17 20:39 신고
    하루끼의 청년시절이 군요 ! 그 언잰가 읽은것 같기도 하고 청춘이 어딘가로 가고 하루끼도 오랜만!
    • yoohyun del    2018.03.18 10:14 신고
      5년 전의 번역글을 읽어주신 것만도 고마운데,
      댓글 까지 달아주셔서 고맙고 기쁘고 그러네요^^; 또 놀러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