國寶第51號:江陵 臨瀛館 三門 강릉 임영관 삼문   -   민속문양 [民俗紋樣]

 

國寶第51號:江陵 臨瀛館 三門

所在地 :  江原道江陵市용강동 58-1  

時代  :  高麗 

種類/分類 :  客舍門


高麗時代に造られた江陵客舍の正門で, 現在客舍建物は無くなりこの門だけが残っている.

客舍とは、高麗と朝鮮時代、各郡に設えた地方官衙の一つで、王を象徵する木牌を奉り、

初日と十五日に王宮を仰いで礼を捧げる望闕禮をおこなった所である。

王が派遣する中央官吏や使臣が宿泊所として使われた.


この客舍は高麗太祖19年(936)、總83間の建物を建てて臨瀛館とした。門樓に掲げられた

‘臨瀛館’という懸板は恭愍王が直に書いたものと伝える. 

数回の補修が行われ, 日帝時代には學校として利用されたこともあるが、建物を壊した後

1967年、江陵警察署が入り、現在は庭に客舍門だけが残っている. 

南山の五星亭· 金山の月花亭· 鏡浦の放海亭は客舍の一部を移して建てたものである.


門は前面3間·側面2間から成り, 屋根は横側で見ると人字型をした切妻屋根になっている.

屋根の軒を支えるために組まれた構造は柱の上方だけにある柱心包樣式で

簡潔な形を成している. 前面3間には大きな厚板の門を附け, 柱は中央部分が膨らんだ

形をしている.

簡潔素朴でありながらも細部建築材料で伺える洗鍊された彫刻の技は高麗時代の

建築樣式の特徵をうまく表現している.

本来の名稱は '江陵客舍門'であったのが, 2010年4月に改稱された.


국보 제51호:   강릉 임영관 삼문  

소재지 :  강원도 강릉시 용강동 58-1  

시대 :  고려 

종류/분류  : 객사문 


고려시대에 지은 강릉 객사의 정문으로, 현재 객사 건물은 없어지고 이 문만 남아 있다.

객사란 고려와 조선시대 때 각 고을에 두었던 지방관아의 하나로 왕을 상징하는

나무패를 모셔두고 초하루와 보름에 궁궐을 향해 절을 하는 망궐례를 행하였으며,

왕이 파견한 중앙관리나 사신들이 묵기도 하였다.


이 객사는 고려 태조 19년(936)에 총 83칸의 건물을 짓고 임영관이라 하였는데,

문루에 걸려 있는 ‘임영관’이란 현판은 공민왕이 직접 쓴 것이라고 한다.

몇 차례의 보수가 있었고, 일제시대에는 학교 건물로 이용하기도 하였다.

학교가 헐린 뒤 1967년에 강릉 경찰서가 들어서게 되고 현재는 마당에 객사문만

남아 있다.

남산의 오성정·금산의 월화정·경포의 방해정은 객사의 일부를 옮겨 지은 것이다.


문은 앞면 3칸·옆면 2칸 크기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으로 간결한 형태로 꾸몄다.

앞면 3칸에는 커다란 널판문을 달았으며, 기둥은 가운데 부분이 볼록한 형태이다.

간결하고 소박하지만 세부건축 재료에서 보이는 세련된 조각 솜씨는 고려시대

건축양식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원래 명칭은 '강릉 객사문' 이었으나, 2010년 4월 개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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