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거리에서 클라이스트처치까지 -스기모토다케시 저-   -   번역 [飜譯]/일한번역 [日韓飜譯]

보슬비로 희뿌연 뉴질랜드 클라이스트처치공항에 도착, 마중 나온 사람들 가운데 A씨를 찾았으나 보이지 않는다. 나리타를 출발하기 8일 전에 여정이 바뀌어 부리나케 그녀에게 항공편지를 띄웠는데... 8일이면 넉넉할 것으로 생각했었다.

공항 출구 이곳저곳에서 오랜만의 재회에 포옹하고 있는 여러쌍의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익숙지 못한 광경인데도 왠지 가슴 뭉클함을 느끼면서, 잔뜩 기대했던 A씨를 만나지 못한 아쉬움을 그 위에 얹은 채 공항을 나와 숙소로 향했다.

A씨와의 첫 만남은 3년전 캐나다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는 퀘백에서 하룻밤을 보낸 다음 뱀프를 방문하기 위해 토론토 경유 캘거리로 향하고 있었다. 그 때 우연히 비행기 안에서 나란히 앉게 된 사람이 A씨였다. 여인들끼리는 편안해서인가 아내와는 곧 이야기가 무르익고, 이윽고 나도 그 틈에 끼여들었다.
사는 곳은 뉴질랜드의 클라이스트처치이며, 현재 캘거리에서 살고 있는 딸 내외를 방문하는 길이라는 것이었다. 서로 여행한 캐나다의 이곳저곳과 함께 다른 나라 이야기까지 와인의 취기도 한몫 거들어 즐겁게 오갔다.
이야기 투로 보아 일을 가지고 있는 여성처럼 느껴졌는데, 역시 알고 보니 몇 개의 펜션을 경영하고 있었다.

도중에 기내 아나운스를 듣던 그녀가 의사를 찾는다고 전하는 바람에, 코크피트로 제트멀미하는 스튜어디스를 왕진(?)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하는 동안 캘거리에 도착했다. 명함을 교환하면서 [그럼, 또 만납시다] 라고 말은 했어도, 그 후에 두 번씩이나 재회할줄은 그 때만해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캐나다 여행에서 1년쯤 지난 어느날, 눈에 선 필적의 항공우편이 한통 날아왔다. 그것이 A씨로부터 온 편지로, 내달 도쿄에 온다는 내용이었다. 30명정도의 그룹투어로, 일본과 동남아를 3주일 예정으로 돈다는 것. 즉시 오랜만의 재회를 고대한다는 회신을 보내고, 그리고 그 날을 기다렸다.

그녀와의 재회는 우리집에서 그다지 멀지않은 호텔 로비에서였다. 전혀 환갑을 지났다고 상상할 수 없을만큼 젊은 모습이었다. 재회를 반가워한 다음, 오늘은 자기가 대접을 하고 싶다는 그녀의 제의로 2층 레스토랑으로 올라갔다. 캘거리에서 헤어진 후의 이야기, 바스에 살고 있는 자식들의 이야기, 이번 여행 이야기, 이쪽도 그 후의 이야기와 다음 여행 계획등 그칠 줄 모르게 이어진다. 눈 깜빡할 사이에 시간이 흐르고, 우린 내일 약속을 하고 호텔을 나섰다.

다음날, 모처럼의 휴일인데 무정하게도 아침부터 비가 내렸으나 A씨를 초대한 우리 집 공기는 오랜만에 활기찼다.
대부분의 패키지여행이 그렇듯이 A씨네 단체도 일본에 와서 매일 호텔과 관광지를 오갔던 모양으로, A씨의 눈에 타타미, 토코노마, 꽃꽂이, 족자, 차 달이는 솟(釜) 등 하나하나가 신선하게 보이는지 원더풀, 뷰티풀을 연발했다.
아내가 차를 끓이는 모습을 보는 눈은 역시 여성답게 진지하기 이를 데 없다. 화과자도 열심히 먹으면서 엷은 차를 마신다. 정좌하지 못하고 앞으로 뻗은 하얀 다리를 쳐다보기 민망했으나, 그런 나를 개의치 않고 그녀는 찻잔을 돌리면서 아내 설명에 일일이 고개를 끄덕인다. [와비] [사비]는 그냥 그대로 일본어로 외우는 게 좋다고 일러준다.
점심으로 대접한 초밥과 야키도리도 이번 여행에서는 처음이라면서 무척 감격스러워 해 우리도 기뻤다.

날씨가 좋았으면 근처 리쿠기엔(六義園) 산책이 좋았을텐데, 비 때문에 그것도 여의치 않아 자동차로 야마노테, 시타마치 등을 드라이브했다. 별 생각 없이 녹음이 짙은 곳을 달렸는데, 관광버스와는 한 맛 다른 취향에 깊은 흥미를 느끼는 듯 했다.

너무도 짧은 도쿄에서의 재회였으나, 그룹에서 이탈하여 따로 누린 이틀간은 그녀에게 있어 귀중한 시간이었던 모양이었고, 우리에게도 뜻하지 않은 캐나다로부터의 선물이었다.
캐나다 여행 이후 뉴질랜드, 그리고 클라이스트처치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는데, 이 때 그녀로부터 클라이스트처치로의 초청을 받고, 그 생각이 점점 현실감을 더해갔다.

그 후 한동안 편지교환이 계속되었다. 남편을 잃은지 2-3년 되는 A씨의 고민은, 연하의 남자친구와의 재혼 문제였다. 장성한 자식들이 걸리겠지만 결혼해도 무방한데, 하고 아내와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편지마다 뉴질랜드에 오라고 쓰여있어 우리도 차츰 솔깃해졌다. 그래서 결정한 것이 다음해 5월의 뉴질랜드, 오스트레일리아 여행이었다.

클라이스트처치의 호텔에 도착하여 전화로 그리운 음성을 수화기 너머로 듣게 되자 안심이 되면서 이국에서의 불안감이 사라진다. 나의 편지가 늦게 배달되는 바람에 공항에서 길이 어긋났던 모양, 아무튼 다음날 아침에 만날 약속을 하고 호텔 바에서 휴식을 취했다.
호텔 바는 세계 공통의 분위기가 있다. 오랜 여행의 피로를 한잔의 칵테일과 바텐더의 한두마디가 풀어준다. 이슬비에 젖은 창 밖의 나무들 모습에서 이국적인 정취를 진하게 느꼈다.

다음날 아침, 하얀 모피로 한층 젊어진 A씨와 1년만에 재회를 했다. 지구상에 몇천킬로씩 떨어진 세 지점에서의 만남이었다. 뭔가 가슴에 솟구쳐 오름을 느낀다. 이어 그녀 뒤에 서있는 남성, 편지로 알고있는 남자친구 R씨를 소개받았다. 처음 만나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로비에서 잠시 시간을 보낸 다음 우선 그가 운전하는 벤츠에 올랐다. 클라이스트처치 거리의 설명을 들으면서 달리자, 에이본강 기슭의 골프코스를 앞에 둔 그녀의 집에 금방 다다랐다. 멋진 흰색 3층 빌라의 2층으로, 체홉의 연극 무대를 밝게 한 듯, 흰 색을 기조로 하여 마무리지은 모습에 감탄한다.
키친, 침실, 세면실, 화장실, 클로짓등 모든 곳을 안내해 주는데, 거실과 침실에서 바라보는 푸른 골프코스가 근사했다. 반짝반짝 닦여진 티포트로 홍차를 다려준다. 이 영국풍의, 사실은 영국식 손님대접을 알지 못하지만, 필경 영국보다 더욱 영국풍일 것처럼 생각되는 티 세레모니는 극진한 대접을 받는 기분이 들어 즐거웠다. 곁들인 머핀도 맛이 있었다.

한동안 환담을 나눈 뒤 거리로 나왔다. 이번에는 R씨의 집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나무가 많고 높은 건물이 없는 주택가를 얼마쯤 달리자 그의 집이 나타났다.
차에서 리모콘으로 문을 열고, 차고에 차를 넣은 다음 그의 단층집으로 들어갔다. 성장한 자식들을 독립시킨 남자의 살림치고는 깨끗했다. 거실에는 커다란 안락의자가 두 개.
뉴질랜드가 낳은 세계적 소프라노 가수 키리 테 카나와로 이야기가 미치자 R씨는 그녀의 오페라곡을 틀겠다고 한다. 귀를 기울이고 있자니, 일본의 엔카가 들려오는 것이었다. 그의 장난끼에 두손 들었으되 이국에서 듣는 엔카에 감격한다. 다 듣고 나자 A씨는 집안 이곳저곳을 안내하기 시작한다. 민망스러워하는 R씨를 무시한 채 클로짓까지 열어 보여준다. 의류도 구두도 꼼꼼하게 정리되어 있어 놀라웠다. 내집처럼 잘 아는듯한 인상을 받는다.

시계를 보니 벌써 12시였다. 얼마쯤 시내를 산책한 다음 모나베일을 찾았다. 에이본강변의 녹음 짙은 정원으로, 안에 대부호 어니타우넨트부인이 건축하였다는 엘리자베드왕조식 저택이 있었다. 그곳에서 갖은 식후의 낮잠은 시간을 잊게 해줄만큼 편안했다. 커피를 마신 후 칸타베리박물관에 들렀다. 남극과 가까운 곳인 때문인지 남극탐험 자료가 많아 흥미로웠다.

오후의 휴식을 취한 다음, 그의 안내로 근처 호텔의 모던한 바에서 식전술을 마시고, 레스토랑에서 디너를 대접받았다. 두사람은 결혼을 향한 준비를 추진중인 모양이었다. 긴 인생이다. 앞으로의 두사람에 대한 행복을 진심으로 빌었다.

클라이스트처치에서의 짧은 체재 후, 오스트레일리아에 들르니 그곳은 실로 대자연의 보고였다. 시드니공항 관제관의 파업이라는 해프닝으로 발이 묶이는 바람에 느긋하게 테니스를 즐길 수 있는 덤을 얻고 귀국했다.

귀국 후 얼마 지나 A씨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거기에는 두사람이 결혼을 하고, 신혼여행으로 영국, 유럽을 돌아왔다는 등의 이야기가 상세하게 적혀있었다. (199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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