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바츠유(蕎麥汁)의 맛   -   번역 [飜譯]/일한번역 [日韓飜譯]

소바츠유(蕎麥汁)의 맛
                                        立原正秋  
유럽에 체재하고 있을 때 가장 먹고싶었던 것이 소바였다. 소바 생각은 보름이 지날 무렵부터 나기 시작한다. 그런데, 아무리 소바를 간절히 바란다고 해도 현실적으로는 먹을 수 없기 때문에 그 생각은 상상 속에서 배가(倍加)하게 된다. 어느 해였던가, 파리의 호텔에서 카마쿠라(鎌倉)에 있는 집에 전화를 걸어, 내일 돌아가니 소바를 준비해놓으라고 이른 적이 있다. 이 전화요금이 8천엔이었다. 나는 8천엔을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여튼 귀가하면 손으로 반죽하여 만든 소바를 먹을 수 있으니 돈으로 환산할 수 없지 않은가.

술 마신 뒤, 손으로 썬 소바를 넉넉한 츠유(汁)에 담가서 먹는 맛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츠유에는 시치미토가라시(七味唐辛子)와 실파를 넣는다. 그리고 소바를 먹고 남은 츠유에 소바육수를 조금 부으면 시치미와 실파 향이 훅하고 코로 스민다. 이 맛 또한 각별하다. 나는, 더운 츠유에는 물에 담가놓았던 파를, 찬 츠유에는 실파를, 이렇게 구분해서 사용하는데, 이것이 가장 소바에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카마쿠라에는 손으로 쳐서 썬 소바를 파는 가게가 몇 집 있다. 그것을 사 가지고 와서 소바츠유를 만든다. 요즘은 사바부시(고등어포)가 없기 때문에 카츠오부시(가다랭이포)와 멸치로 국물을 내어 츠유를 만든다. 멸치는 머리와 창자를 떼어내고 물에 한시간 담가놓는다. 그것을 삶아 국물이 절반으로 줄었을 때 갓 저민 카츠오부시를 넣고 불을 끈다. 불을 끈 다음 1분쯤 지나면 츠유를 걸러, 간장 술 미링 설탕으로 간을 맞춘다. 이 소바츠유만은 관동(關東) 맛이 제일이다. 교토에서 몇번 소바를 먹어봤지만 츠유의 맛이 앙그러지질 못했다. 카츠오부시만을 써보기도 하고, 멸치만으로도 해보았으나, 갓 저며낸 카츠오부시와 멸치로 츠유를 만드는 것이 가장 맛있는 것 같다. 이러한 맛에 대한 인간의 미각은 일종의 조건반사일 것이다.

왠지, 아무리 맛있는 생(生)소바라도 기계로 썬 것은 혀에 닿는 느낌이 좋지 않다. 소바썰기라는 표현이 있듯이 손으로 썬 쪽이 혀에 감긴다. 손으로 썬 것은 굵은 것도 있고 가는 것도 있다. 기계로 썬 것은 굵기가 균등하여 먹고 있는 동안에 맛이 떨어진다. 숯불로 구운 생선과 가스불로 구운 생선의 차이가 뚜렷하듯이, 이 차이도 뚜렷하다.

소바츠유는 뎀뿌라츠유로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 무와 생강 간 것을 츠유에 넣고 거기에 뎀뿌라를 담가 먹는다. 뎀뿌라기름은 사라다오일 7, 참기름 3의 비율로 섞어서 사용한다. 밀가루는 냉장고에서 식힌 찬물로 개어야 바삭하게 튀겨진다. 이 때의 츠유맛은 뎀뿌라기름이 섞이기 때문에 또 각별한 맛이 난다.
<중략>
이 원고를 절반쯤 쓰고 난 밤 2시, 갑자기 소바가 먹고싶어져서 주방에 나가 물을 끓였다. 츠유는 저녁에 만들어 논 게 있으니 소바를 삶고 실파를 썰면 된다.
나는 술을 마시면서 소바를 먹었다. 그리고 소바육수를 부어 그 맛과 향을 즐겼다. 소바육수를 부은 츠유 맛에는 희망이 있지, 라고 마음속으로 중얼거려본다. 소바육수를 넣은 츠유를 마시고 나서, 약간 모자란 듯하여, 냄비에서 츠유를 조금 덜어 실파를 썰어 넣고, 시치미(七味)를 친 다음 나머지 소바육수를 부었다. 이걸 다 마시면 한밤중의 식사가 끝나는 것이다. 일주일에 두 번은 이런 한밤중의 식사를 하게 되는데, 술을 마시고 난 후의 소바츠유처럼 맛있는 것은 없다.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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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좋아하는 일본작가에 타치하라마사아키(立原正秋)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한국계로, 20여년전에 타계했는데, 격조 높은 글을 많이 남겼지요.
이 작품은 그의 "夢幻のなか" 라는 수필집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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