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삼협뱃길 여행(2)-   -   번역 [飜譯]/일한번역 [日韓飜譯]

6. 드디어 삼협뱃길로
5월1일(목) 오전 8시, 호텔을 나와 부두로 향한다. 배는 2천톤의 공가산호(貢 山號)로, 정원 101명의 아담한 배였다. 후에 이 크기가 함께 어울리는데 꼭 알맞다는 걸 알았다.
장강(長江)은 티벳에서 발생하여 상해에 이르는 6300킬로의 대하로서, 도중에 절벽이 육박하는 삼협을 안고 있는 절경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현재 거대한 댐을 건설 중으로 곧 대부분이 수몰될 운명에 놓여있다고 한다. 늦기 전에 두보(杜甫)나 이백(李白)이 읊은 절경을 봐두자는 것이었다.

2박3일의 선박여행이라 약간은 느긋하게 지낼 수 있으려니 생각했는데 천만의 말씀이었다. 출항하자마자 곧 선내설비에 대한 설명이 있다고 하여 4층으로 올라갔다. 모여보니 대족에서 만난 독일인 그룹도 타고 있어, 서로서로 인사를 나눈다. 설명이 끝난 뒤, 퉁퉁한 아주머니에게 묻자 카쎈에서 왔고, 이름은 온켄이란다. 또한사람은 베를린의 로드씨. 그룹은 거의 공안관계 퇴직자들이라고 했다. 배 안에서는 지루하지 않게 보내게 될 듯 싶다.

객실로 돌아와 PC통신설정을 시작했다. 이제 됐다, 생각하고 로비에 가서 연결해 보았으나  busy의 반복, 그리고는 error, 결국 배를 내릴 때까지 연결되지 않았다. 도중에 풍도(豊都)에 들러 하선, 귀성(鬼城)을 구경했다.

오후 6시, [선장 주최 환영회가 4층에서 열립니다]라는 아나운스. 가지고 온 [당시선(唐詩選)]을 읽을 틈도 없다. 올라가자 곧 샴페인이 나오고, 흰 제복으로 뚱뚱한 몸을 감싼 선장의 환영사와 함께 건배. 각국어의 건배소리가 오간다. 독일 그룹은 18명으로, 15일간 북경에서 서안, 돈황을 경유하여 중경에 도착한 다음 삼협뱃길 후에는 상해에서 홍콩을 거쳐 돌아간다고 한다. 석양빛을 받은 장강의 유유한 흐름이 선미로 퍼지고, 이와 함께 양기슭의 푸르름을 인 절벽은 이백(李白) 굴원(屈原)의 세계로 우리들을 끌어들인다.

해가 지고 어두워지자 4층의 리크리에이션 데크는 노래방, 댄스의 국제교류장으로 변한다. 대만의 한 남성이 [스바루(昻)]를 일본어로 멋들어지게 불러 일본인 그룹으로부터 열렬한 박수를 받았다. 배는 만현(万縣)에 정박, 소흥주에 취해 단잠에 빠진다.

7. 삼협뱃길-이틀째

날이 새자 5월2일(금), 5시반 모닝 뮤직으로 잠을 깼다. 오전 6시, 첫번째 골짜기(峽) 영당협(孀塘峽)에 들어섰다. 산 위의 백제성(白帝城)을 보려는 사람들로 데크는 점점 들어찬다. 삼국시대, 촉나라 황제 유비가 오나라와의 싸움에서 패하여 이 성에 들어와 제갈공명에게 후사를 맡겼다고 한다. 여정관계로 하선하여 올라가보지 못하는 게 아쉬웠다. 이백의 [새벽에 백제성을 떠나며]라는 시가 떠올랐다.

이제 드디어 소삼협에 들어서는 것이다. 7시반, 무산(巫山)에 도착하여 물과 카메라와 함께 원시적 구명재킷을 들고 배에서 내렸다. 여기서 곧 작은배로 갈아타는 줄 알았더니 돌계단을 올라, 소형버스를 타고 얼마쯤 달린 뒤 겨우 배를 탈 수 있었다. 30도를 넘는 더위 속의 상당한 난행이다.

배는 30인승 정도의 작은 것, 드디어 구명재킷을 입어야 한다. 소삼협은 장강의 지류로서, 용문협(龍門峽), 파무협(巴霧峽), 적취협(滴翠峽)의 삼협 약 50킬로가 특히 아름답다고 한다. 배는 흐름이나 여울 폭에 따라 때로는 노를 젓고 때로는 엔진소리도 요란하게 강을 거슬러오른다. 빨강과 초록으로 아름답게 물든 절벽은 맑게 갠 하늘을 좁히기도 하고, 산허리의 옛 잔도(棧道)흔적을 보여주기도 하여 도무지 실증이 나지 않는다.

여울목이 얕아지면 배에서 내려 걷고, 깊어지면 다시 배로 돌아갔다. 원숭이가 달을 펐다는 곳이라고 들으면 옳거니 하고, 호랑이가 나오고 용이 올랐다고 해도 거짓말 같지 않다. 강바닥의 돌을 손으로 잡을 수 있을 것만 같은 맑은 흐름에 몸과 마음이 씻기는 듯 하다. 잠시 뱃머리에 앉아서 바라보면 시원한 바람이 겨드랑이 밑을 빠져나가 상쾌하기 이를데없다. 이런 때 칠언절구(七言絶句)라도 만들 수 있으면 좋으련만 글자그대로 말이 막혀버린다.
옆의 도르트문트 키다리아저씨가 망원경에서 눈을 떼지 않기에
"호랑이나 원숭이가 보입니까?" 하고 묻자 "Gar Nichts(전혀 보이지 않는데요)" Girl(Gar)이 보일 리 없다고 말장난을 하면서 소리내어 웃었다.

돌아가는 길에도 얕은 곳은 걸어야 하나 하고 맥빠져 있는데, 돌아갈 때는 물살이 있어 탄 채로 갈 수 있다고 하여 안심하고 배에 올랐다. 오후 3시, 귀선하여 난생 처음 걸쳐본 구명재킷을 벗으면서, 다행이 신세를 지지 않고 끝냈구나, 안도의 숨을 쉰다. 3시반, 신녀봉(神女峰) 통과.  [6시부터 송별 파티가 2층 레스토랑에서 열립니다]라고 일어, 독어, 중국어로 아나운스, 타고 이틀째인데 벌써 헤어짐인가. 그러나 충실한 내용이어서 4,5일쯤이 지난것만 같다.

회장에 들어서자 완전히 낯이 익은 일행이 차례로 모여들었다. 그룹 별로 테이블에 앉자 우선 청도맥주로 건배. 마시면서 기념촬영과 명함 교환을 하는 등 석별의 정을 나눈다.
이어 4층 홀로 옮겨 [노래와 춤의 향연]이 벌어졌다. 티벳의 민속무용은 신기하고 이국정서가 흠씬 풍긴다. 쌩긋 웃으며 마술을 섞어 추는 중국무용은 나를 잊을 정도로, 양귀비 시대를 방불하게 했다. 다음의 의자빼았기 게임은 우승을 예상했던 독일 거한을 대만의 아가씨가 밀쳐내고 이겨 박수갈채를 받았다.

그리고 그 다음이 국가별 노래 대결. 단체전으로 시작하여 개인전으로 넘어갑니다, 라는 설명이 있었다. 일본은 두 그룹 20명으로 [4계의 노래]를 불렀다. 대만세가 노래를 잘 해 리드 당한다. 독일세는 [드링크, 드링크] 라는 유명한 노래로 시작하여 메들리로 들어간다. 마지막의 [무시덴]은 우리들 중 몇 명도 단상으로 올라가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불러, 선박여행의 즐거움을 만끽했다.

개인전은 투어 컨덕터로부터 내가 지명 받아, [Du du liegst mir im Herzen]을 독일여성 3명정도에게 응원을 부탁하고 단으로 올라가니 다섯명이나 응원을 해줘 면목이 섰다.
단상은 마침내 댄스장으로 변해 흥겨워졌다. 이윽고 디스코음악이 울리기 시작하자 그때까지 사회를 맡았던 투어 컨덕터 스잔이 갑자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장신에 마른편으로 스타일이 좋다. 몸이 놀랄 정도로 유연했다. 시가렛팬츠가 잘 어울린다. 리듬감 발군, 화성인이 춤추는 것 같았다. 긴 머리카락을 흩날리면서 춤추는 모습은 뭔가에 홀린 듯. 거의 모든 사람의 눈이 그녀 한사람에게 못박힌 채 신들린 듯 추는 모습을 넋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8. 의창(宜昌)에서 무한(武漢)으로
5월3일(토), 오전 6시, 드디어 마지막 협곡, 서능협(西陵峽)으로 들어갑니다, 라고 아나운스. 어제 밤샘을 하여 졸린 눈을 비비면서 전망 데크로 올라간다. 초나라의 유명한 시인 굴원이 이 근처 출신이라고 한다. 최후의 경관을 보고자 모두 꾸역꾸역 올라온다. 어제 멋진 디스코춤을 피로했던 스잔(정식으로는 [피가로의 결혼]의 등장인물과 같은 스잔나)에게 어젯밤에는 멋졌다고 말을 걸자, 수줍어하면서, 즐거웠어요 라고 물론 독일어로 대답한다. 그녀는 여행사 직원이 아니고, 중국어를 할 줄 알아 자원봉사로 가이드역을 한다는 것이다.
오전 7시, 삼협댐 공사현장을 통과. 백십만명의 주민을 이주시키고, 유적이나 경관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왜 댐을 만드는가, 이 것이 나의 커다란 의문점이었는데, 치수도 있지만 전력 부족이 오히려 주된 이유라고 한다.

아침식사를 마치자 갈천(葛川-고죠)댐 통과다. 세계 유수의 로크게이트식 댐으로 25미터를 단숨에 내린다. 그럼 언제 게이트가 올라가는가 바라보고 있었더니, 게이트가 한가운에서 둘로 갈라져 안쪽으로 대문처럼 열린다. 앗! 소리가 절로 났다. 점점 수로가 앞으로 열려 배는 엔진을 전개시킨다. 배 위의 사람들, 도로의 사람들의 예상치 못했던 웅성거림이 일어났다.
의창에 도착하면 작별이다. 자이젠, 아후비더젠 하면서 흔드는 손 잡는 손에 힘이 가해진다. 배에서의 PC접속은 실패했지만 그런 내게 연일 신경을 써주던 선원도 손을 흔들어주었다.

의창에서 무한으로 가는 도중, 형주(荊州) 박물관에서 댐공사로 발굴된 문물을 구경하고 점심식사. 그런 다음 하이웨이를 달려 무사히 무한에 도착했다. 호텔의 호북(湖北)요리는 세련된 맛으로 별미였다. 여기서도 마음은 피씨접속에 가있다. 식후의 바는 참자. 방으로 돌아와 싱크패드의 지명을 무한으로 하고 시외국번을 넣어 액서스하자 단번에 연결된다. 배를 타고 있었던 동안 화면 위에 올리지 못했던 사흘치 메일과 글이 샘에서 솟아나는 맑은 물처럼 화면을 흐른다. 다시한번 소흥주를 기울이면서 메일을 읽기 시작한다. 행복하기 그지없는 한때였다.

9. 무한에서 상해로
5월 4일(일), 무한을 관광하고 저녁에 상해로 가는 날이다. 무한은 무창, 한양, 한구의 3지구로 되어있어 무한 삼진이라고도 한다. 중경, 상해와 함께 중국의 3대 화덕이라고 불릴만큼 덥다더니 우리가 방문한 날도 32도로 매우 덥다. 무한보다는 한구가 옛날 초등학생 때 [한구함락]이라는 제목으로 작문을 쓰도록 한 일이 있어 기억에 남아있다.
아침식사 후 동호(東湖)변을 산책, 낚시꾼을 바라보면서 시작(詩作)한 한시를 중국 가이드여사에게 첨삭해 달랜다. 하이쿠처럼은 되질 않았다. 하지만 여행이기에 느긋할 수 있는 한때였다. 여기서 한 구(句).

        중국 억양에 익숙해 진 늦봄이련가

이어 호북성 박물관을 관람한다. 여기서는 편종등 초(楚)시대의 악기류가 눈길을 끌었다.
나오는데 독일인들과 딱 마주쳤다. 여어 여어 오랜 친지 같은 느낌으로 서로 재회를 기뻐한다. 여전히 카린은 우스꽝스러운 행동으로 모두를 웃겼다.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으나 그룹여행에서는 멋대로 할 수 없다. 바로 작별이다. 아휘더젠이라고 말하지만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는지.

다음은 건물이 몹시 휜, 독특한 누각으로 알려져있는 황학루(黃鶴樓)에 올랐다. 장강과 시가지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이백의 맹호연(孟浩然)을 보내는 시가 걸려있었다. 내려오는데, 여자아이 세명이 "우리들 일본어 학교 생도입니다. 일본어로 이야기하게 해 주세요" 라면서 질문공세를 편다. 일본에 가는 게 꿈인 듯 했다.
점심을 먹은 후 오후4시 동방항공으로 상해 행, 호텔 오쿠라계인 화원반점(花園飯店)에 투숙. 더듬거리지만 일본어를 말할 줄 아는 호텔맨이 많아 일본을 가까이에 느낀다. 송별회 뒤 일본으로의 접속은 일사천리로 연결되어 만족하고 취침.

10. 상해에서 나리타로
5월5일(월), 열흘간의 여행도 오늘로 끝이다. 상해라면 재작년 중국방문 때 화평반점에서 재즈를 들으며 춤을 추던 일이 떠오른다.
예원은 지난번에 보았기 때문에 이번에는 외탄(外灘-반드)과 옥불사(玉佛寺)를 관광했다. 미얀마에서 증정되었다는 백옥제 석가불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선사의 허름한 등의자 봄은 깊어가고

소롱포(小籠包)와 소매(燒賣)등, 관동요리로 점심을 들고 오후 4시 JAL에 몸을 실었다.
이번 여행은 중국 한가운데를 열흘에 걸쳐 횡단하였는데, 새삼 중국의 광대함을 느꼈다. 그러나 반면에 인터넷통신에 의해 얼마나 세계가 좁아졌고 가까워졌는가도 알게 되었다. 이러한 것은 삼협의 아름다움, 댐 구상의 장대함과 함께 알게 된 커다란 수확이었다.

오츠카(大塚)의 우리 클리닉에 요즘 상당한 수의 중국인이 찾아온다. 외국인 15% 중 10%는 중국인이 차지한다고 생각된다. 이번 여행은 그 사람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담긴 방중이기도 했다. 돌아오니 더 중국인들과의 거리가 가까워진 듯 하다. 중국어에 약해 중국인과의 교류는 많지 않았으나, 그런 가운데 그들의 우호적인 태도에 접할 수 있었던 건 무척 다행스런 일이었다. 소삼협의 산중에서 조그만 여자아이가 앵두를 두알 내게 준 일도 잊을 수 없다.                 (199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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