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코쿠(四國) 마츠야마오쿠도고온천   -   기행문 [紀行文]

일본 NHK위성방송에서 시코쿠 88개 사찰을 순례하는, 삿갓에 짚신을 신은 흰옷차림의
순례자를 본적이 있다. 불교신자들인데, 88개 사찰을 모두 돌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경비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시코쿠 거주의 신자들이 자기 집을 개방하여
숙식을 제공하고, 부르튼 발도 치료해주는등 봉사활동을 한다는 것이다.
먼저 사람이 벗어놓고 간 흰옷을 빨아 다음사람에게 입히고, 더러워진 옷은 다시
새 손님을 위해 깨끗이 세탁하여 보관한다는, 그렇게 해서 불자간의 끈끈한 고리를
이어간다는 뭐 그런 이야기였던 것 같다.
지팡이를 든 순례자 노부부를 바라보면서, 골고다 언덕을 찾는 기독교 신자들과
갠지스강에 모여드는 힌두교인들의 무리를 잠깐 상상해 본다........

아시아나로 松山까지는 겨우 한시간 남짓의 비행, 참으로 가까운 이웃나라다.
왕복 항공료와 아침저녁 식사포함 온천호텔 숙박 이틀요금 29만9천원이라는 파격적인
값에 현혹되어 갑자기 떠난 여행이었다.
일행은 21명이었으나 각자 개인행동이니 서로 신경쓸 일 없고 느긋하게 보고 싶은 곳
찾아다니면 되는 편한 여행방식이다.

후론트에서 키이를 받아든 뒤 버스시간표를 얻어 오후 일정을 계획한다.
시내에서 30분이나 걸리는, 그것도 메인 온천장에서 뚝 떨어진 산허리에 자리잡은
온천호텔이라 교통이 무척 불편하다.  하기야 택시를 이용하면 아무 문제없지만
대중교통비도 눈 나오게 비싼데 감히 싸구려 패키지관광객이 택시를 이용한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 아닌가.
버스로 도고온천(道後溫泉)까지 340엔, 그곳에서 전차삯이 270엔, 그러니까
시내로 나가는데만 대중교통비가 5천원가량 든다는 얘기다. 다른 건 몰라도
교통비 하나는 우리나라가 많이 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차에 대한 향수가 남다른 나는 전차가 다니는 도시에 가면 꼭 시승을 한다.
구식 쇳덩이 핸들을 돌리는 제복차림의 차장이 핸섬한 젊은이인 것이 의외였는데,
총각은 내린다고 버튼을 누르는 할머니에게 무척이나 자상했다.
마쓰야마성앞 정류장에서 나도 찡찡 소리가 나는 벨을 한 번 눌러본다.

성은 먼산위에 보이는데 도로변은 온통 상점들이라 길을 잘못 든 게 아닌가
걱정했더니 로프웨이 타는 표지판이 보였다. 맞아, 옳거니, 이런 방법이 있구먼!
표를 사고 입구를 찾아 올라가자 케이블카와 리프트 탑승하는 곳이 마주보고 있었다.
케이블카는 막 떠나서 20분쯤 기다려야 된다니 할 수 없이 리프트를 타긴 탔는데,
리프트라는게 이처럼 겁나는 것인줄 미쳐 몰랐다.

60도 경사, 이건 좀 과장인가? 아무튼 가파른 경사를 조그만 철제 의자에 달랑
올라타고 오르자니 아무리 쇠막대를 움켜쥐어도 공중에 떠 있는 기분이다.
구두가 벗겨지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침을 한 번 꼴깍 삼키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와아! 왼편 발아래에는 갖가지 색깔로 만발한 철쭉꽃밭이 융단처럼 끝도 한도 없이
깔려 있었고, 오른편은 하늘을 찌를듯한 거목숲이 서로 가지를 부비면서
실바람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난 그 황홀함에 심취하여 내가 고소공포증
환자라는 걸  꼭대기에 닿을 때까지 까맣게 잊고 말았다.

산 정상에 지은 성이기 때문에 평지의 성에서 볼 수 있는 해자가 없다.
그 대신 적이 쳐들어오면 밑으로 집어던지는 돌무더기가 쌓여있는 곳이 있었다.
커다란 돌로 높고 넓게 쌓아올린 석축을 바라보면서 저 바윗덩이를 져 나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을 고생을 하며 지긋지긋한 나날들을 보냈을까
측은한 생각이 든다.

이 산성은 다른 고장의 성과는 달리 천수각을 비롯한 21개의 건물이
카츠야마(勝山) 산정을 온통 차지하고 있었다. 천수각에 오르면 세토나이카이의
크고 작은 섬들까지 한눈에 들어온다고 하는데, 난 어중간한 지점까지만 가서
나무그늘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사람 구경을 했다. 
90이 훨씬 넘어 뵈는 파파할머니를 중년여인 둘이 비지땀을 흘리며 부축하고
올라오는 모습이 참으로 야릇하게 비친다. 이 성을 보지 않고는 눈을 감지 못할
사연이라도 저 노파에게는 있단말인가.

또 케이블카를 간발의 차로 놓쳐 리프트를 타야 했다. 한 번 타 봤으니
괜찮을성 싶었는데 내려가는 것이  훨씬 더 무섭다. 난 쇠막대기를 끌어안고
시선을 하늘에 고정시켰다.

상점가를 걸어 내려오는데 책무더기 위에 '한권 50엔'이라 써붙인 책방이
눈에 들어왔다. 왼 횡재! 한참을 골라 봤지만 역시 싼게 비지떡, 구미 당기는 책이
하나도 없다. 아쉬운대로 유명한 만화가가 쓴 여행기와 여류작가의 수필집을 골라
100엔을 내고 샀다.

전차 종점인 도고온천역에 내리자 어디선가 가리온 선율이 들려왔다.
정각 다섯시를 알리는 멜로디가 작은 시계탑에서 흘러나오는 것이었는데,
나츠메소세키의 소설 '봇짱(도련님)'의 등장인물(인형)들이 탑 밖으로 나와
작은 동작을 반복하고 있었다. 별로 크지도 않고 앙상한 시계탑을 보려고 어느틈에
구경꾼들이 역 앞을 가득 메웠다. 가리온의 선율이 곱게 하늘로 퍼져나간다.

역에서부터 이어지는 선물가개들이 끝나는 지점에 지은지 100년이 넘었다는
묵직한 일본식 건물이 나타났다. 국가중요문화재로 지정된 유서깊은 이
도고온천장 앞에는 유카타 차림의 남녀가 바글거리고 있었다. 사진 찍는 사람,
인력거 흥정하는 사람, 대중탕에서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쏟아져나오는 늙은이들 ..,
난 일본 온천장 특유의 분위기 속에서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목욕문화의
단면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호텔의 '정글 온천장'은 철제빔으로 얽어서 만든 돔 식 건물이었는데,
열대식물을 잔뜩 배치하고 그 틈 사이에 크고작은 욕탕이 여섯 개 있었다.
욕탕안에 앉아 있으려니까 고무나뭇잎이 머리위로 뚝 떨어진다. 제법 남국의 정취가
풍긴다. 유황 냄새가 강렬하여 돔 꼭대기를 약간 열어놔서 그런지 싱그러운 공기가
가득 차 있어 별만 보이지 않을 뿐 꼭 노천온천에 들은 기분이었다.
눈을 감고 두 다리를 쭉 뻗자 살금살금 빠져나가는 스트레스 소리가 들린다.

온천장이 별관이니 별수 없이 긴  복도로 연결해 놓아야 했겠지만,
밤늦은 시각에 목욕 마치고 유카타 바람에 돌아가는 여자가, 같은 모양을 하고
마주 오는 남자를 대한다는게 얼마나 민망스러운 노릇인가. 난 무슨 잘못이라도
저지른 사람모양 고개를 숙인 채 수건으로 얼굴을 닦는 시늉을 하면서
총총히 그의 곁을 지나쳤다.          (1997)

신고

'기행문 [紀行文]'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속세의 먼지를 털어내고...  (0) 2003.04.19
가마쿠라(鎌倉) 여정  (0) 2003.04.08
시코쿠(四國) 마츠야마오쿠도고온천  (0) 2003.04.08
四國は松山の奧道後.......  (0) 2003.04.08
韓國のチロル....  (0) 2003.04.04
出入國審査  (0) 2003.04.01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