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코다테의 에트랑제   -   기행문 [紀行文]

노보리베쓰에서 기차 탈 때만해도 억수같이 퍼붓던 비가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한풀
꺾이더니, 하코다테역에 내리자 말끔히 걷혀 있었다. 개찰구 앞에 왠 초로의 신사가
'최성자'라고 쓰인 팻말을 들고  서 있는게 눈에 들어왔다.
'얘, 저 분 너 찾는거 아니니?'
친구말을 들을것도 없이 짚이는게 있어 앞으로 다가갔더니, 삿포로 친지의 부탁을 받고
마중 나왔다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 미안한 마음보다는 잘됐다 싶은 마음이 앞섰다.
우리는 감사하다는 말을 제각기 한마디씩하고, 그의 차에 올랐다.

아담한 여관에서는 우리를 따뜻하게 맞이해 주었다. 곧 저녁식사를 차려 왔는데,
노신사가 굳이 하코다테 야경을 보여준다면서 아래층에서 기다리겠다는 바람에
우린 허둥지둥 저녁을 먹는다. 일본의 여관 밥은 언제 먹어도 참 맛이 있다.
고체연료로 즉석에서 끓이는 모듬냄비에 혀를 데어 가면서 맛있다를 연발했다.


낮에 내린 비로 하코다테산에 오르는 길이 통제되었었는데, 해제된지 얼마 안되어
길은 그리 막히지 않았다. 노신사는 익숙한 솜씨로 차를 몰면서, 민단에 몸담고 있어
한국에서 손님만 오면 모시고 산엘 올라 그동안 수백번은 왕래했을 거라고 자랑 아닌
자랑을 늘어놓으며 S자로 굽이진 산허리를 돌아 오른다.
조용히 올라가도 겁이 날 판에 저무두룩 아래를 손가락질하며 저기는 어디고 저
너머에는 무엇이 있고....흘깃 옆의 친구를 보니 얼굴에 핏기가 가신 채 죽어라고
손잡이를 움켜쥐고 있는 것이었다.

하코다테산 정상엔 그리 사람이 많지 않았다. 밤바람이 싸늘해 모두 코트 깃을 올린다.
부채꼴로 퍼진 시가지엔 불빛이 찬란했고 멀리 오징어잡이 어선들의 등불까지
가세하여 참 아름답기는 했지만 저네들이 말하듯 보석상자를 엎은 듯한
백만불짜리 야경은 아니었다. 우리가 크게 감탄하는 빛을 보이지 않자 노신사는,
날씨가 나빠서 고기잡이배도 출항을 덜했고, 시가지의 등불도 제대로 켜져있지 않아
오늘 야경은 좀 그렇군요, 하면서 아쉬워한다.  

산에서 내려와 여관으로 가는 길에 환하게 조명을 받은 해리스트 정교회와 구하코다테
공회당을 구경했다. 흰 벽에 초록색 지붕을 이고 있는 비잔틴 양식의 해리스트교회는
마치 우리가 서양의 어느 조그만 도시에 발을 들여놓은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여관에 돌아오니 벌써 열시가 넘어 있었다.

우리가 한사코  사양했는데도 아침 아홉시에 노신사는 다시 찾아왔다.
특별히 보고 싶은 곳이 있느냐고 묻는데, 우리가 모두 고개를 저으니까 그럼 자기가
가이드노릇을 하겠다면서 먼저 트라피스틴(Trapistine)수도원으로 안내를 한다.
빨간 벽돌로 지은 아담한 수도원은 금남의 집으로 70명의 수녀들이 자급자족 생활을
하고 있다나. 우리나라 수녀도 열명쯤 있다는데 물론 얼굴도 볼 수 없다.
그들이 만들어 파는 버터 캔디 액서사리등은 하코다테의 명물로 대단한 인기라고 한다.
가을 정취가 소복이 담긴 깨끗한 정원에서 우린 노신사와 기념촬영을 했다.

하코다테항을 끼고 드라이브를 즐긴다. 메이지시절에 세운 즐비한 벽돌창고를 외관은
그대로 둔채 내부를 쇼핑 센터로 바꾸었다는 워터프론트를 지나 하코다테도크를
멀리 바라보면서 외인묘지를 한바퀴 돌았다.
나가사키와 함께 일본 최초로 개항되었다는 이 곳은 그래서인지 일본냄새가 덜난다.
유난히도 많은 언덕길을 오르내리는 동안 몇해전에 방문했던 나가사키가 떠올랐다.


타치마치갑(立待岬)에서 잠시 쉬기로 한다. 눈앞에 끝없이 펼쳐지는 쓰가루 해협,
저 너머가 일본본토 아오모리겠지, 1900년 초 아오모리와 하코다테를 있는
세이칸(靑函)터널을 뚫을 때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를 본것 같은데...
노신사가 우뚝 솟은 바위 하나를 가리키며 해방 전에 이곳으로 팔려 온 한 우리나라
처녀가 저기서 몸을 던져 목숨을 끊었다는 서글픈 이야기를 들려준다.

명치유신에서 패하고 이곳으로 도망와 마지막 전투를 준비하던 막부군의 양식성곽
고료카쿠(五陵郭)앞을 지나, 빨강 초록 색깔도 선명한 전차 구경을 하면서 우린
하코다테역으로 돌아왔다.
점심을 대접하려는데 중요한 약속이 있다면서 노신사는 점잖게 거절을 한다.
'서울에 오시면 꼭 전화주세요. 신세 갚을 기회를 주셔야죠.'
이 말은 우리의 진심이었지만 노신사는 그저 빙그레 웃을 뿐이었고, 우리는 그렇게
작별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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