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가을의 아오모리 여행   -   기행문 [紀行文]

 

꼭두새벽부터 서둘러 집을 나서 집합시간 7시30분에 공항에 도착하니 거의 전원이
모여있었다. 총36명의 단체이니 적은 숫자는 아니지만, 인솔자 한사람으로는 무리인듯
혼자서 정신이 없어보였다. 어찌되었거나 체크인한 나는 면세점으로 향하는 친구와
헤어져 혼자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때운 뒤 9시넘어 비행기에 탑승했다.
잠시 후 이륙이다.  

올봄 동창회에서 회장이 새로 선출되고 임원도 모두 새사람으로 바뀌었는데, 그동안
여행도 거르고 해서 이번에는 해외로 나가기로 결정한 모양, 여름 내 임원들이 애를
쓰면서 계획한 것이 아오모리 온천여행이었다.

아오모리 공항에 도착하여 공항 밖으로 나오자 초가을의 일본 풍경이 우리를 맞이한다.
아오모리역에서 점심을 마친 후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역 근처에서 쇼핑할 것도 아니고
지난번에 못보고 돌아간 ‘아스팜’이라는 곳에 친구 세명과 함께 가보기로 했다.
밖으로 나오니 빗방울이 떨어진다. 걸어서 10분 거리라고는 하나 택시를 타기로 하고
운전수와 교섭, 정원 3명이라는 일본택시에 4명이 올라탔다. 타자마자 도착했는데
요금이 580엔, 과연 교통비는 우리나라보다 월등히 비싸다는걸 절감한다.

정삼각형의 독특한 모습을 한 빌딩 '아스팜(ASPM)'은 지상 15층, 높이 76미터라나,
아오모리현의 관광과 물산의 정보기지라고 한다. 우선 13층의 전망대에 올랐다.
유리창 하나가득 펼쳐지는 바다, 별난 모습의 등대, 두둥실 떠있는 선박, 끝없는
수평선..... 이게 바로 태평양이구나!  절로 감개무량해진다.
천천히 한바퀴 돌면서 넘실대는 바다, 눈아래 시가지, 그리고 병풍처럼 이어지는 산들을
바라본다. 엔카에도 자주 나오는 이와키야마(岩木山)도 멀리서 웅자를 뽐내고 있었다.
‘네부타’전시코너를 둘러보며. 그들 고유의 문화를 접할 수 있어 기쁘다는 친구들의
말에 속으로 오자고 하길 잘했다 싶었다.
2층에서는 고운 일본종이로 그림을 찢어붙이기한 和紙美術展示를 보면서 그 솜씨와
아름다움에 감탄하고、1층에서는 잠시동안 쓰가루샤미센(津軽三味線)연주에 귀를
기울였다.

그새 비가 그쳐 걸어서 집합장소로 향했다. 도중에 서점이 눈에 띄어, 방앗간 그냥 지나지
못하는 참새이기에, 안으로 들어가 辻仁成의'피아니시모'라는 문고본을 구입했다.
함께 들어간 박사님 친구가 환경문제에 관한 묵직한 서적을 구입하여 옆에서 기가 죽었지.

핫고다산(八甲田山)을 넘어 숙박소인 오이라세계류(奥入瀬渓流)그랜도호텔로 향했다.
전에도 이 호텔에서 묵은 것 같은데, 그동안 증축이나 개축을 했는지 영 분위기가
생소하다.
배정된 방으로 들어와 룸메이트와 우선 차를 한잔 끓여 마신 뒤, 옷을 갈아입고
만찬회장으로 내려갔다. 늘 그렇듯 곱게 단장한 친구들은 오늘도 몰라보게 젊어보인다.
회장님의 제창으로 와인잔을 높이 들고 건배!
가이세키요리(懐石料理)는 언제 먹어도 맛이 있다. 온 손에 냄새가 배이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게를 파 먹는다.

식사가 끝나자 곧바로 노래자랑 파티가 시작됐다. 반주와 동떨어진 노래를 부르면
쫓아나가 함께 부르고, 음악에 맞춰 괴상한 몸짓을 하면 까르르 모두 뒤로 넘어간다.
트위스트 차차차 멜로디에 앞으로 나가 몸을 흔들어 대고, 인솔자 노래 시켜놓고
백댄서노릇도 했다. 아무튼 모두들 흥에 겨워 시간이 오버된것도 모를 지경이었다.
휘날레는 언제나처럼 모두함께 교가를 불렀다.

웃지못할 해프닝 하나. 한번도 신지 않은 새 구두를 가지고 간 게 화근이었다. 오래 전에
구입한 건데 볼이 꽉 끼기도 하려니와 마땅히 신고 갈 곳도 없고 하여 모셔놨던 것을
파티에서 폼나게 신을 양으로 가지고 갔던 것이다.
처음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근데, 친구들 사진 찍으랴, 노래 곡목 찾아주랴, 불러내면
함께 노래 부르랴, 춤 추랴, 왔다갔다하는 동안 발이 죄이기 시작, 파티가 끝날 즈음에는
가운데발가락이 쿡쿡 쑤시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지경에 이르러
파티가 끝나자마자 구두를 벗어들고 맨발이 되었다. 그것을 내려다 본 친구가
'야, 네가 에바 가드너도 아니고, 맨발의 백작부인이라도 된 기분이냐?'
라고 해서 주위 친구들이 웃음을 터뜨렸지만 난 그저 쓴우슴을 지을수밖에 없었다.

한밤의 노천온천은 그야말로 환상이었다. 손발을 쭈욱 뻗고 편안한 자세로 앉아있으면
차가운 밤바람이 얼굴을 어루만지고 지나간다. 이 행복감, 단숨에 피로가 풀리는듯 했다.
뭐니뭐니 해도 노녀들에게는 온천여행이 최고야, 라고 당연한 이야기를 중얼거린다.

토와다호(十和田湖)로 향하는 도중에 오이라세 계류를 따라 30분 쯤 산책을 했다.
수목과 기암 사이를 누비며 흐르는 맑은 계곡물、맛있는 공기、기온도 딱 알맞아
아침나절의 상쾌한 삼림욕을 즐긴다.
유람선을 타고 토와다호를 일주했다. 물색이 마치 군청색 같이 짙어 이상하다 했더니
선글래스를 끼고 있었기 때문, 얼른 벗고 기막힌 물색에 매료된다. 호수를 둘러싼
저 숲에 단풍이 들었다면 얼마나 멋졌을까, 하지만 울창한 푸르름도 그리 나쁘지는
않다고 마음을 달랜다.
참고로 토와다호는 수심 380미터로 세계 유수의 2중 칼데라호수라고 한다.

배에서 내려 호반에 있는 「乙女の像」을 보러 갔다. 高村光太郎의 유작이라는데、
마주 보고 있는 두 裸像은 소녀라고 하기엔 너무 육감적인 여인이어서 아연실색.
살집이 있는 친구 하나가 그 조각을 배경으로 독사진을 찍는 걸 보고 누군가가
'그래, 아주 닮았다'라고 해서 웃음바다가 됐다

오이라세 계류를 되짚어 돌아가 호텔 곁의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고마키(古牧)그랜드
호텔로 향했는데, 오후 시간이 그대로 남아 일행을 자스코 라는 마트에 풀어놓았다.
쇼핑 타임을 준 것이다. 나는 아이들이 부탁한 파자마니 내의니 화장품, 소품 등을 찾아
아래위층을 훑었다. 사는 김에 선물로 그 고장 특산품같은 것 까지 사니 보따리가
장난이 아니다. 여행 떠나기 전에 늘 이번에는 절대로 쇼핑 안한다고 결심하건만,
한번도 지키지 못하니 이것도 여자의 고질병인지 모르겠다.

고마키온천은 일본 온천 가운데 베스트 텐에 낀다더니, 그래서인지 호텔 건물도 4동이
연결지어진 거대한 것이었다. 넓은 홀에 유카타차림의 남녀도 심심찮게 눈에 띤다.
저녁을 먹은 뒤、새로 개축했다는 온천에 들어갔다. 와아, 이 곳 노천온천은 내가 다녀 본
일본의 어느 온천보다 근사하다. 넓은 스페이스 저 끝에서는 작지만 폭포가 쏟아져내리고
그 폭포물과 노천온천에서 넘치는 물이 합쳐지는 약간 낮은 널찍한 탕은 풀을 연상케 한다.
한켠에 서있는 나무 그늘이 불빛을 받아 탕 안에서 오색으로 일렁이고....
아무튼 난 하늘나라 선녀탕에 들어앉은 기분이었다.
이런 노천온천 언제 또 들어가볼까 싶어 다음날 새벽 다섯시 반에 한번 더 들어갔다.
어제 밤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에 취해 새벽 공기를 마시면서 온천에 몸을 담근다....

이번 여행은 2박3일의 짧은 일정이었으나, 관광이 목적이 아니라 친구들과의 우정을
다지는 여행이었던 만큼 그런대로 만족스런 여행이었다. 다만 여행사의 미스로
36명 모두가 함께 귀국하지 못한게 아쉬움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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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최대의 실수를 저지른 건 바로 저입니다. 기가 막히게도 애써 찍은 사진이 한장도
안나왔다는 사실에 저자신 아연실색입니다. 이유는 간단하지요. 깜빡하고 먼저 찍은
사진을 지우지 않아 용량이 모자랐기 때문입니다. 드디어 치매증상이 나타났구나 걱정되는
건 뒷전이고, 우선은 속상하고 친구들에게 미안한 마음 뿐입니다.
하지만 이미 엎지러진 물, 다른 친구들이 찍은 사진을 기대해 볼 수 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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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l reply | del   2007.09.18 22:16 신고
    ㅎㅎㅎ최선생님
    즐거움 속 에 실수가 겹치는 헤프닝도 있으셨네요.
    그러나 초가을의 일본 곳 곳 의 정취와 맛있는 요리 환상적인 노천 온천등 만족과 아쉬움...
    너무 좋아요 부럽따~~앙.
  2. yoohyun reply | del   2007.09.19 09:13 신고
    cl 님, 여행하면서 실수하는 일, 많으면 많을수록 추억거리가 늘어나지요 ^-^
    일본 여관은 아침저녁 포함이지만 그때마다 식권 내야하잖아요. 그걸 룸에 두고
    내려오지 않았겠어요. 룸은 제4관인데 1관의 식당 앞까지 갔다가 되돌아가려면
    그 거리가 장난이 아니어서.... 그래도 룸메이트하고 킬킬거리며 왕복을 했답니다.
    일본 이야기하면 cl님 더더욱 지난날이 그립겠지요?
  3. ???? reply | del   2007.09.19 17:48 신고
    헹!!!???
    일등 기사 믿고 나 이번에는 아주 편히 쉬어 했는데

    사진 찍기 싫다해도 그것이 곧 "히스토리"니까
    잘 했다 이왕 저지른 일 ㅎㅎㅎ
    사진 정리하려면 힘 들었을텐데

    거 툭하면 " 치매" 소리만은 하지 마슈우^_-
  4. yoohyun reply | del   2007.09.19 18:33 신고
    카메라 가지고 이런 실수한 건 생전 처음이라 저절로 치매 소리가 나오네요.
    진짜 어이없어 말도 안나오더라니까-_-; 전여사가 골라서 보내주길 목 빼고
    기다리는 수 밖에.... 어찌되었거나 죄송하와요 (__)
  5. 수안 reply | del   2007.09.21 10:31 신고
    역시 靑森이네요. 이름이 이와같은데 단풍 구경울 할 수 있겠어?
    글 잘 쓰는 친구가 있어 참 좋다. 가만이 않아서 그 정취까지 맞볼 수 있으니...

    공연히 치매 운운하며 노인 행세 할 것 없고 직효 처방 소개합니다.(경험자 가라사되...)
    1. 사진 싸이즈를 너무 큰 것으로 설정해 놓았을 거야, 아마도.
    ---물론 정확도는 최고인데 몇 장 안 찍어 다 차니까, 너무 욕심내지 말고 중간 크기로 찍을 것.
    2. 매번 먼저 시진 지워야 한다면, 몇 주일씩 여행하는 사람은 계속 지우면서 다시 찍남?
    ---열이한테 이야기 해서 '메모리 칩(카드?)'을 용량 좀 큰 것으로 바꾸어 달라고 할 것.
    ---아니면 용량만 의논하서 인터넷으로 직접 구입하면 되겠네.
    ---세월이 좋아 그 쬐그만 것도 다 배달해 준다네요. 좀 큰 용량이면 몇 백장도 끄떡 없다니까요.

    전에 내가 하도 투덜거렸더니 항영이 녀석 제 것 빼서 나를 주고 지는 엄청 큰 것으로 바꾸어서는
    유럽 여행 내내 찍은 사진 수백장을 한꺼번에 내 컴에 쏟아놓고 정리시켰지 않아? 고이얀 녀석!
    요즘은 그 치매 걱정 않으니 살 것 같다.
  6. yoohyun reply | del   2007.09.21 11:03 신고
    그런 방법이 있었구먼. 우리집 남성 싹싹한 구석이라곤 눈씻고 봐도 없어
    뭘 물어보려다가도 지레 기분이 나빠져 그냥저냥 넘어가려니까 이런 실수가
    자꾸 생기네. 이번만은 밸 접어 가슴 밑바닥에 처박아놓고 도움을 청해야겠어.
    아무튼 고마워, 안녕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