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얼마나 나이 들었는가를 절감한 여행이었다.   -   기행문 [紀行文]

인터넷으로 티케팅하고 좌석까지 지정 예약해 가지고 갔지만, 복사한 예약확인증으로
비행기표와 보딩패스 받는 일이 내게는 생각처럼 간단하지가 않았다. KAL 로고를
찾으면서 훌로어를 끝까지 누비다 카운터의 로고가 바뀐것을 뒤늦게 알았을 때는
이미 기운이 반은 빠져버렸다. 시간이 남아 커피한잔 마시고 천천히 보딩하는데,
보딩패스는 핸드백속에 넣어놓고 비행기티켓을 내밀던 참으로 바보 같은 나, 정말
창피해서 죽는 줄 알았다.  

도쿄는 처음도 아니고, 말도 그런대로 통할 터라 그다지 걱정을 안했는데, 막상
공항을 빠져나와 안내 카운터에 서니 입이 안 떨어진다. 요코하마행 고속버스 티켓
한장 사고 타는 곳과 시간 묻는 게 이렇게 힘드니 앞으로 닷새를 어떻게 보낸단 말인가.
애써 물으면  목소리가 어찌나 작고 말이 빠른지 번번이 되물어야 했다.
두번째도 못 알아들으면 패닉상태에 돌입, 횡설수설로 겨우 난관을 돌파하고 나면
팔다리에 힘이 쭈욱 빠진다.

버스터미널에 마중 나온 분은 초면이었지만, 수년간 메일 교환을 해서일까 조금도
어색하거나 낯설지 않았다. 서로가 내성적인 성격임을 진즉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에
택시 속에서의 대화는 매끄럽지 못했어도, 그런대로 편안하게 조금씩 이야기를
나누며 호텔에 도착할 수 있었다.



호텔 방에 짐을 올려다 놓고 손만 씻고는 급히 신관의 교류회장으로. 곧 회의가 시작되고, 9월초에 갑자기 타계하신 전 한국측 회장을 추모하는 의식이 거행될 때는 코끝이 시큰해진다. 일본측 회장의 한국어 인사는 비록 종이에 적은 것을 읽는 것이었지만 한국에 대해 예의를 갖추는 모습으로 보여 흐믓했다.

컴퓨터 교류회답게 간단한 에니메이션 제작을 배우면서 실제로 제작하는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었다. 4명이 한조가 되어 강의를 듣고 나름대로 제작을 하게 되었는데, 등장인물 설정, 몸 동작, 대화, 움직임 등을 일일이 기입하는 과정이 까다롭고 어려웠지만 흥미롭기도 하고 예상외의 신이 연출되어 폭소를 자아내기도 했다. 우리 팀은 능력 있는 여사를 팀장으로 모셨기 때문에 아주 훌륭한 작품을 완성하여 큰 박수를 받았다.

호텔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고 다시 신관 간친회장으로 가는데 가랑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내일 하코네 여행길에 재수 없게 비가 쏟아지면 어쩌나 슬그머니 걱정이 앞선다.


주최측이 입구에 붙여 논 테이블 좌석배치도를 아무리 찾아도 내 이름이 없다.
엉? 초면의 안내역 횐원과 함께 도면을 하나하나 훑어 내려가고 있는데 친분 있는 회원이 다가왔다. ‘제 자리 없어요’ ‘없긴요, 맨 앞 테이블입니다, 제가 안내하지요’

여성회원의 일본무용은 오랜 수련을 말해주듯 우아하고 멋졌다. 오도리와 무용은
엄연히 구분되어 있다더니 게이샤들의 오도리와는 과연 품격이 달라 보였다.
남자회원의 매직쇼도 재미있었고, 무엇보다 회원이 리더로 있는 재즈밴드의 연주가
일품이었다. 맨 처음에 흘러나오는 스타더스트는 나를 50년 전으로 끌어다놓아
달콤했던 추억들을 곱씹게 해주었다.
가지고 간 일본회원 선물을 앞으로 나가 회장에게 전달하면서 얼마나 쑥스러웠던지.
CD 48개가 어지간한 무게는 아니어서 트렁크가 천근덩어리였는데, 진심으로 고마와
하는 모습들을 보니 마련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측에서 따로 선물을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에 내 선물이 체면을 세워 준 셈이다.  

잊지못할 해프닝은  ‘테네시왈츠’ 연주에 맞춰 일본측 총무와 왈츠를 췄다는 사실.
왈츠만은 자신있게 출줄 알았는데 반세기만에 스텝을 밟으려니 자꾸만 발이 꼬인다.
라스트에 한국회원과 폴카를 추고 나서는 진짜 심장마비 일으키는 줄 알았다.
모두들 일어서서 박수로 리듬을 마춰주는 가운데 정신없이 후로어를 맴돌고 나니
온몸이 후둘후둘 떨렸다. 칠십 넘은 노녀가 폴카라니, 기도 안찬다.


하코네(箱根) 여행은 두번째지만 근 십년만이고 동행이 다르니 출발부터 들뜬다.
드높이 푸른 하늘, 두둥실 뜬 뭉게구름, 가을나들이 하기에 더할나위 없는 쾌청한
날씨였다.  
중형버스 3대에 나눠 타자 어린애들 소풍처럼 간식 봉지에 녹차 병을 하나씩 안겨준다.
집에서 늘 끓여 마시는 녹차와는 월등히 다른 맛에 과연 본고장이구나 실감한다.
곁에 앉은 교양미 넘치고 한국말 잘하는 여성회원과는 꾸준히 메일교환을 하면서
친해진 사이로, 함께 이틀을 보내면서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조신하면서도
절도있고 지적이며 사려깊은 전형적인 일본여성이다.

하코네 세키쇼(關所)라는 말하자면 옛날의 검문소 같은 곳을 돌아보고, 유람선으로
하코네호수를 돌고, 오와쿠다니(大湧谷)의 40만년 전 화산활동의 잔재를 볼수 있는
분연지(噴煙地)를 가까이서 보게 되는 게 여행스케줄이었다.
날씨가 좋아 잠깐 후지산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것도 행운이라 할 수 있겠지.
유람선 승착장에서 기다리는 동안 전에 딸아이와 묵었던 호텔이 어디였던가
두리번거리기도 하고, 나리가와(成川) 미술관에 들렀던 일들을 머리에
떠올리며 잠시 추억에 잠겼다.....

한일교류회에서 여러 회원들과 가까와지면서 나는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운다.
양국인이 섞인 가운데서 새삼 눈에 거슬리는 한국인들의 특이한 행동을 보면서
스스로를 되돌아보기도 하고, 개개인의 느낌은 전혀 다른데도 어느 면에서는
동일한 행동을 취하는 일본인들에게서 문화적 차이를 엿보기도 한다.

이틀간의 교류회를 아무런 사고 없이 끝내고 나서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워낙 건강이 시원치 못한데다, 다른 회원들과는 달리 당일 교류회에 참석하느라
새벽부터 부산을 떨며 강행군을 했기 때문에 몸이 견디어내려는지 걱정스러웠기
때문이다.
고령자들의 모임인데, 한치의 착오도 없이 완벽하게 치러 낸 주최측에게
깊은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수안 reply | del   2006.10.19 18:45 신고
    국제 회의에 내놓고도 안심이 되는 친구를 두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비록 나이를 절감하며 힘들었다 해도 당분간 "頑張って下さいね!"
    애국하는 길도 여러가지랍니다.
    사진으로 보는 얼굴은 젊고 활기있어 보여 좋기만 하구먼.
    We are proud of you, Yoohyun!!
  2. yoohyun reply | del   2006.10.21 12:34 신고
    친구 잘 두면 늘 기분 좋은 소리만 듣게 되지 ^<^
    당신과 조여사 덕에 낯을 세우고 왔는데, 그 고마움 어떻게 표하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