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閑古鳥ってどんな鳥?   -   자율학습 [自己流學習]/語源,俗談

* 閑古鳥ってどんな鳥? 
「閑古鳥」라도 울고 있을 때는 그래도 괜찮다. 정말 쓸쓸한 상황일 때는
閑古鳥 소리 마져 들리지 않는다면 더 이상 쓸쓸할 수 없을거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렇다, 閑古鳥가 운다는 것은 쓸쓸하다는 것, 사람이 없다는 것을 표현하는 말이지만
때로는 어떤 새든 울어주는 편이 나을 때가 있다. 다만 閑古鳥는 그저 있기만 하면
좋다는 게 아니라 「閑古鳥가 울고 있다」는 것으로서 비로서 쓸쓸한 모양을 나타내는
말이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우는 소리가 쓸쓸한 새라는 것.
그럼「閑古鳥」란 어떤 새인가. 과연 실제로 존재하는 새인가?

우는 소리가 쓸쓸하다면 우선 까마귀가 떠오른다. 확실히 저녁무렵의 까마귀 소리는
서글프게 들린다. 하지만 까마귀는 무리를 짓는 수가 많은데, 역시 한마리의 울음소리가
어디에선가 들려온다면 최고로 쓸쓸할 것이다. 바로 이 조건에 맞는 새가 뻐꾸기이다.
閑古鳥라는 이름은 カッコウ(뻐꾸기)의 옛 이름이다. カッコウ는 숲이나 초원 등에
생식하는 두견과 새로, 일본 전토에서 볼 수 있다.

인기척 없는 숲 속에서 울려오는 「カッコー…カッコー…(뻐꾹... 뻐꾹...)」하는 소리는
확실히 적막한 분위기를 한층 더 쓸쓸하고 허전하게 만든다.
松尾芭蕉의 句에「憂きわれを さびしがらせよ 閑古鳥」라고 읊은 게 있는데、
閑古鳥는 울수록 쓸쓸함을 더해주는 것임을 잘 알 수 있다.

작은 가개는 손님이 전혀 없으면 눈에 띠지도 않는다. 그런데, 그 곳에 한사람쯤
손님이 있으면 오히려 「어、손님이 없네」라고 한다. 가개 앞에서 고양이가 낮잠을
자거나 점원이 우두커니 있는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물론 한사람이건 두사람이건 손님이 있어주는 게 고맙다. 그런 의미에서는 역시
閑古鳥라 해도 울어주는 게 낫지 않을까.

*「ドジ」を踏む - 뭘 밟았다는 건가?
「실수가 많은 사람」「실패를 많이 하는 사람」이라고 말하면 화가 나거나
풀이 죽겠지만、「ドジな人」라면 웃어넘길 것이다.
스스로를 「ドジなもので」라는 식으로 가볍게 자조하면서 말하는 수도 있다.
「ドジ」에는 실패는 하였지만 용서해버린다, 웃고 넘긴다, 그런 뉴앙스가 담겨있다.
그런데, 이게 「ドジを踏む」라 했을 때는 약간 느낌이 달라진다.
「あいつはまたドジを踏んだ」「仕事でドジを踏んだ」와 같이 약간은 가시가 섞인
말이 되어버린다. 역시「ドジ」는 밟으면 좋지 않은 모양이다. 그렇다면 밟으면 안될
「ドジ」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ドジ」는「土地」라는 말이 변한 것이라 한다. 예전에는、스모(相撲)에서
土俵 밖으로 발이 닿아 패했을 때「土地を踏む」라고 했다. 그것이
ドチを踏む―ドジを踏む、라고 변해버린 것이다. 이 말이 바뀌어 실패하는 것을
ドジを踏む 라고 말하게 되었다.

* 「村八分」ってなにが八分?
요즘은 그다지 사용하지 않지만 얼마 전만해도 「村八分にされる」혹은 줄여서
「八分にする」 라는 식으로 곧잘 돌려 말했다. 이는 따돌림 당하다, 붙여주지 않는다
같은 의미이다.
이 말은 농촌의 오랜 관습에서 생겨났다고 한다. 마을에는 冠、婚礼、葬式、建築、火事、
病気、水害、旅行、出産、年忌(回忌), 이렇게 열가지 관습이 있었다. 그리고 마을 사람이
죄를 범했을 때는 마을 전체에서 이 가운데 8가지를 끊었다고 한다. 남어지 두가지는
장례식과 불인데 불은 본인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주위로 불이 퍼질까봐서 였을 것이다.
장례는 죽으면 더이상 죄가 없다는 것이리라. 그러니까 실질적으로 살아있는 한
모든 게 끊겨버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말할 수 없이 엄한 제도이나, 이러한 제도에 의해 마을사람들의 동지의식이 지극히
강해졌다고 할 것이다.

*「こけし」의 슬픈 어원
나이 많은 사람이 있는 집이거나 오래된 집안에는 한두개씩 「こけし」가 놓여있다.
이 「こけし」에는 단발머리 소녀 모양의 것이 많지만, 「こけし」다운 것은 역시
머리가 조금밖에 나지않은 어린아이를 모델로 한 것이리라. 그런데 왜 이걸
「こけし」라고 하는가?

「こけし」는 동북지방에서 생겨났다고 한다. 어원에 대해서는 겨자꽃이 진 뒤의
겨자머리와 머리가 닮았기 때문이라거나, 방언으로 귀엽다는 뜻을 지닌 「こけしい」
에서 온거라는 설이 있다. 그러나 가장 신빙성이 있는 건 다음 설이다.

こけし는「子消し」라는 말인데, 그 옛날 가난한 농촌 사람들은 기근이 오면
먹을 것이 없어 입을 줄이기 위해 갓 태어난 아이를 죽였다는 것이다. 이것이
「子消し」로서, こけし는 인생을 살아보지 못하고 죽은 아이들을 가슴 아프게
생각하면서 만들어진 것이라니 너무나도 슬픈 이야기이가 아닌가.

* グレープフルーツ、와 グレープ(ぶどう)는 어떤 관계?
グレープフルーツ를 직역하면 「포도 과일」, 그러니 필경 양자에 관연이 있을 것인데
그러나 보는 느낌으로는 자몽(グレープフルーツ)과 포도(グレープ)는 전혀 닮지 않았고
종류도 다르다. 도대체 어디에 공통점이 있는 것일까.

이건 과일가게에서 판매하는 것만 봐서는 알 수가 없다. 收穫전의 グレープフルーツ를
보면 일목요연한데, 즉 グレープフルーツ는 포도처럼 송이 모양으로 열매가 여는 것이다.
보통 밀감은 하나하나 가지에 열리지만 グレープフルーツ는 거대한 포도처럼 열매를
맺는다. 그래서 グレープフルーツ 라는 이름이 생겨난 것이다.
 
* おじゃんになる ― おじゃん이란 도대체 무엇?
디지털화 시대에서는 데이터를 축적하는 것도 용이하지만 잃는 것 또한 간단하다.
애써 작성한 원고들이 자칫 잘못하여 「おじゃん」되는 일이 드물지 않다.

おじゃん이란 아는 바와 같이 사물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는 걸 말한다. 듣는 것
만으로도 「ああ、なんかおじゃんだな」하는 이미지가 전달되는 말인데,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의미가 불분명한 언어임을 알 수 있다. おじゃん의「お」는 접두어라고 치면
남는 건「じゃん」뿐이다.

실은 이「じゃん」은 擬音語로서 鐘, 그것도 半鐘의 소리이다. 반종은 불이 났을 때
쾅쾅(じゃんじゃん) 치는 그 종을 말한다. 그러니까 이 じゃんじゃん이라는 소리에서
「おじゃん」이 태어난 것이다. 모든 것을 無 로 만들어버리는 불, 그것을 연상시키는
것으로서 반종 소리가 대표적이었던 모양이다.
 
* 呉越同舟란 실은 좋은 말!
사람들은 사이가 나쁜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로서 ‘犬猿之間’ ‘吳越同舟’라는 말을 쓴다.
그때 「呉越同舟」가 무슨 뜻이냐고 물으면, ‘같은 배에 사이 나쁜 오나라 사람과
월나라 사람이 타고 있어 최고로 사이가 나쁜 모양‘ 이라고 대답하지는 않을는지.
확실히, 같은 배에 오나라와 월나라 사람이 타고서, 서로 으르렁거리고 있는 말인데
이 이야기에는 계속이 있는 것이다.

이 사자성어는 손자병법 제11편 「九地」에서 유래된다.
그 문장을 요약하면 「呉人과 越人은 서로 으르렁대고 있으나、만약 함께 탄 배가
돌풍을 만난다면 배가 뒤집히는걸 막기 위해 마치 좌우의 손처럼 서로 힘을 합쳐
일에 대처한다」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故事는 ‘보통은 서로 미워하고 있지만 위기에 직면했을 때는 단결하여
일에 대처한다‘는 상황을 나타낸 것이다. 말하자면 보통 사용하고 있는「呉越同舟」라는
말은 잘못 해석된 것이다.
영화 같은데서 처음에는 서로 적이었던 인물이 위기를 넘기면서 친밀해진다는 신이
곧잘 나오는데,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呉越同舟」라고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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